[박형주의 내일의 풍속] 치앙마이 여행기 - 3 - 장기여행의 맛

M스토리 입력 2025.03.17 19:19 조회수 787 0 프린트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보통 휴가를 내거나 퇴사하고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일상에서 벗어나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기 때문에 그 비중이 빠진 것만으로 큰 변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여유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일상의 틀은 변함없다. 해가 진 어느 시점에 잠에 들고, 해가 뜰 즘 혹은 그 시점이 훨씬 지나서 잠에서 깬다. 배가 고플 때 식사하고,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고, 산책이나 운동을 하고, 누군가와 만나거나 누군가와 연락한다. 하루를 구성하는 큰 덩어리는 내가 머무는 공간인 주거, 먹는 음식, 타인과의 관계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이 빠진 하루의 일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므로 내게 중요한 루틴이 무엇인지 더 쉽게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나 자신보다 환경에 집중하기가 쉽다. 단기 여행이라면 한정된 짧은 시간 동안 관광이나 쇼핑에 몰두할 수밖에 없겠지만 장기 여행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나의 루틴과 주변 환경의 탐색 사이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지난 몇 년간 나에게 중요한 키워드는 건강이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꾸준한 운동을 놓지 않았다. 언뜻 생각하면 여행 중에 운동하는 것이 쉬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낯선 환경에서는 어디로 운동을 하러 갈지, 어떻게 갈지 등의 일상에서라면 어렵지 않게 했을 과정들이 모두 몇 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매일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도록 미리 정보를 알아본 것이 도움이 되었다. 여행을 앞두고 한국에서도 계속해 온 운동인 크로스핏 체육관의 위치를 미리 알아보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숙소를 예약했다. 체육관까지는 이륜차로 10분 정도 걸렸는데, 택시를 매번 부르는 것도 일이라 이륜차가 없었다면 매일 운동하러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한 달 동안 운동을 다녔던 CFCNX(크로스핏 치앙마이)는 모든 수업이 영어로 이루어지고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눈치와 바디랭귀지만 있다면 큰 문제 없이 소통할 수 있었다. 치앙마이는 어디를 가나 외국인 절반, 현지인 절반이기 때문에 많은 프로그램이 영어로 이루어진다. 당신이 어떤 운동을 하고 싶더라도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는가이다. 태국 음식은 달고, 짜고, 기름지기 때문에 자극적인 음식이 많다. 외식만 하다가는 금세 건강이 나빠질 것 같아 하루에 한 끼는 직접 요리해 먹기 시작했다.

치앙마이 곳곳에 재래시장이 많은데 상설로 열리는 곳도 있고 특정 시간이나 요일에만 여는 시장이 있는 등 운영시간도 다르고 파는 물건도 달라 시장 구경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2~3일에 한 번씩은 이륜차를 타고 새벽에 열리는 도매 시장에 가서 야채와 과일을 저렴하게 사 왔다.

 

이렇게 운동과 요리라는 루틴을 지키면서 빨래하거나 생필품 쇼핑을 가는 등의 그날그날 소소하게 해야 할 일을 하면 금세 오후가 되었고,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숙소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해가 지면 저녁을 먹으러 나갔고, 숙소에 돌아와 씻고 잘 준비를 하면 금세 하루가 지나갔다. 평일에는 이렇게 특별히 한 것 없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주말에는 나들이를 가는 날이 많았다. 여행 중에는 평일이나 주말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그래도 여기 사는 사람들의 일정에 맞추어 주말에만 열리는 수공예 시장이나 골동품 시장, 각종 주말의 이벤트 등에 참여하다 보면 주말이 알차게 채워졌다.

 

내게 장기 여행의 맛은 쌀밥이다. 매일 먹는 밥인만큼 우리는 밥맛이 다름을 쉽게 알아챈다. 산 위에서 먹는 밥과 집에서 먹는 밥의 맛이 다르듯, 일상이라는 밥을 달라진 풍경 속에서 먹으면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것이 장기 여행의 맛이다. 그리고 잘 된 이 밥을 어떤 반찬과 곁들여 먹을지는 여행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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