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륜차를 타다 보면 불가피하게 운행이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 연료가 떨어지는 경우가 가장 흔할 것이다. 변명은 다양하다. 기름 게이지가 없는 이륜차를 타거나, 기름 게이지가 고장 났거나, 그저 남은 연료의 양에 신경 쓰지 않는 터프한 라이더일 수도 있다. 가까운 거리에 주유소가 있다면 바이크를 끌고 가서 주유하면 간단한 일이다. 주유소가 닫았다면 좀 귀찮지만, 바이크를 잠시 주차해 두고 버스나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돌아와 주유해도 된다. 하지만 당신이 국도에 있다면? 그것도 한밤중에, 차 한 대도 다니지 않는, 아무런 건물도 없는, 국도 한복판에서 찾은 마지막 주유소가 닫혀있다면? 이것은 그냥 막연하게 하는 상상이 아니다. 작년 이맘때, 나는 주행 중 핸드폰을 떨어뜨려 핸드폰 액정이 완전히 깨져버렸고 그로 인해 내비게이션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도로에 있는 초록색 표지판만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기로 했다. 내가 지금 정확히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저 하염없이 북쪽으로 향했다. 익산 어딘가의 산기슭에 있는 국도를 올라가고 있을 때, 연료 등이 켜졌다.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좁은 왕복 2차선 오르막 도로가 이어졌다. 지나가는 차가 보이지 않은지는 30분 정도 된 듯했다. 이 산속을 벗어나기 전에 엔진이 멈춘다면 어떻게 할지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르막이기 때문에 침착하게 브레이크를 잡아서 안전하게 주차하는 게 첫 번째 과제였고, 가장 가까운 센터에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까지 밤을 지새울 수 있는 쉼터는 방금 지나오면서 본 버스정류장이 전부일 것이었다. 그러면 첫차가 다닐 때까지 버스정류장에서 쪽잠을 자다가 버스가 오면 그걸 타고 시내로 나갔다가 용달을 불러 시내에 있는 주유소까지 바이크를 옮긴다는 계획을 세우면서도 마음은 착잡했다. 심란한 마음을 뒤로하고 정속주행을 되뇌며 브레이크 한 번 밟지 않고 운전한 덕일까, 나는 다행히도 논산의 허름한 모텔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찾아간 주유소의 입구 2m 전 지점에서 연료가 소모되어 시동이 꺼졌다.
이런 쓸데없는 불안과 감정 소모가 꼭 필요한 일인가? 이점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바이크를 탄다면 꼭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륜차 운전자들을 생각해 보라. 무슨 일이 생기면 보험사에 당연히 전화한다. 나도 보험사에 전화하고 싶었지만, 감히 꿈꾸지 못했다.
올해부터, 많은 보험사에서 이륜차 보험에도 긴급출동 서비스 특약이 신설되었다. 올여름 CRF 250L의 보험을 갱신할 때 나도 삼성화재의 긴급출동 서비스인 애니카 서비스를 특약으로 넣을 수 있는 것을 보고 서비스 내용을 살펴보았다. 애니카 서비스는 6회의 긴급출동 서비스를 기본으로 제공하고, 그 중 비상 급유 서비스는 2회로 제한된다. 급유량은 배기량에 상관없이 1L로, 대배기량 오토바이에는 충분하지 않은 양이다. 그래도 연비가 20km 이상 나오는 CRF를 타는 나에게는 적절한 양이었다. 특약 금액은 2-3만원대로, 1만원대인 사륜차에 비해 2배이상 비싼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견인금액을 생각해보면 저렴하게 느껴져 흔쾌히 가입을 결정했다.

그렇게 애니카 가입이 잊혔을 때쯤의 지난 10월, 바이크의 상태가 이상했다. 잠시 정지신호에서 대기하던 중 시동이 꺼졌고, 셀 버튼을 누르면 계기판 화면이 먹통이 됐다. 평소 다니던 센터에 전화해서 용달을 부탁했지만, 알아보고 연락해 주겠다는 센터에서는 며칠째 연락이 없었고 그렇게 바이크를 방치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다른 센터에 연락했다. 두 번째 센터에서는 따로 용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고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용달 트럭 기사님의 연락처를 건네주셨다. 정말 가까운 거리인데 5만 원이나 내야 하는 게 너무 아까워서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번뜩, 하고 애니카가 떠올랐다. 그런데 긴급출동을 불렀는데 일반 견인차가 오면 어떡하지? 일단 상담사에게 이륜차인 것을 확실히 말씀드려야 하나? 우선 문의라도 하려고 전화했는데 상담사에게 연결되는 대신 긴급출동이 신청되어 버렸다. GPS 추적으로 지금 있는 곳이 바이크 위치로 신청이 되어버려 당황했지만 조금 뒤 중간 업체에서 다시 한번 차량의 위치를 확인하는 전화를 주셔서 시간과 장소를 말씀드리고 매칭된 견인 기사님과 연락이 닿았다. 긴급출동 서비스 중 견인의 기본 거리는 10km로, 초과하는 거리에는 추가 요금이 붙지만, 시내에서의 이동이라면 기본 거리로도 충분하다. 리프트 트럭을 몰고 오신 기사님은 능숙하게 바이크를 실으셨다. 알고 보니 순천에는 이륜차 긴급출동 기사님이 딱 한 분만 계셨다. 얼마나 자주 긴급출동을 가시냐는 질문에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일주일에 한 대도 없을 때도 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