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제자님 잘못했습니다

M스토리 입력 2024.09.13 14:36 조회수 965 0 프린트
교감이 무단 조퇴를 막자 폭행하는 초등학고 3학년생. 지난 6월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올 여름은 더위가 유난스럽다. 장마가 지나가는가싶더니 6년 만에 다시 겪는 긴 열대야란다. 한 달 동안이나 밤이 뜨겁다.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덩달아 뉴스도 뜨거운 것 같다.

영국에서 활약하는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씨가 개설한 ‘손축구아카데미’에서 훈련받던 한 아이가 훈련과정에서 빚어진 이해충돌로 금전적 다툼이 있었는가 하면,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가 금메달을 딸 동안 겪어야했던 부상(負傷)의 고난을 언론에 공개해 연일 뜨겁다.

그런가하면 서울에서 발생한 초등학교 교사 폭행사건과 자살사건, 친구Y의 초등학교교사인 아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뜨거운 시절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Y의 아들 사연은 그랬다. Y의 아들은 교육대학 졸업 첫해에 임용이 되지 않아 잠시 바닷가 도시 L시의 모 초등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근무를 하였다고 한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생실습도 다 마친 교사가 초등학생 교육에 어려움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실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소연을 하더란다.

어린학생의 상스러운 언행뿐 아니라 비열하고 난폭한 일부 학부모들의 언행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악몽이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런 사태를 교사 홀로 감당해야만 했다니 실로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친구Y는 교사인 아들이 가해학생에게 <제자님 잘못했습니다>하고 무릎 꿇고 빌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이끌어갈 한국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개탄도 했다.

다행히 친구 Y의 아들은 다음해 임용이 되어 강원도 C군의 모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지역정서가 L시와 달라서 그런지 ‘이제 살 것 같다’고 하더란다.

그의 말을 듣다보니 그에 못지않게 학생과 학생 폭력문제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때 직장동료였던 L과 S의 자녀 경우는 왕따를 견디다 못해 L의 아들은 인도로 유학을 가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왔고, S네는 가족이 모두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것이다. 또 그와는 반대로 어느 지인의 아들은 같은 반 학우를 심하게 폭행해 그 벌로 타지방 소재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는데 자기 아들을 두둔한다며“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 아닌가요?”라고 변명을 해서 당혹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그런가하면 언젠가 동네친구 K가 미국으로 이민 간 큰형님네 조카들이 방학 때 한국에 놀러 와서 ‘미국에는 교사들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무참하게 린치를 당하는 사례가 많다’고 하여 몹시 놀랐었다. 그랬던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니 너무나 안타깝다.

물론 그러한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올바로 아름답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감동적인 경우도 있을 테니까.

한 예로 비록 픽션이긴 하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서부 와이오밍 주의 작은 목장 마을을 무대로 한 미국영화 <끝나지 않은 삶(An Unfinished Life)>에서 주인공 로버트 레드포드가 아빠 없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착하게 자라준 손녀딸을 바라보며 며느리 제니퍼 로페즈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다.

“착한 아이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손녀에 대한 며느리의 가정교육을 칭찬한 말이다.

또, 한 지방신문의 칼럼에서 읽은 내용도 마음에 와 닿는다.

늙은 인디언 추장이 손자에게 말했다. “얘야, 우리 마음속에는 두 마리 늑대가 싸우며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착한 늑대로 용기, 희망, 자신감, 신념 같은 걸 먹고 살고 다른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 분노, 좌절, 공포, 짜증 같은 걸 먹고 산단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손자가 묻자 추장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그렇듯이 친구Y는 일찍이 먹이를 잘 받아먹은 늑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학창시절에 로버트 레드포드의 손녀처럼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했었다. 그랬던 그가 “라떼는 말야, 하루도 선생님께 야단맞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잖아, 기억 나냐?”
하고 말을 맺는다.

그랬다. 그는 선생님께 야단을 맞으며 자란 우등생이었다. 마치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인디언처럼 담임선생님은 그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인물이 되길 기대하며 야단을 치셨던 것이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여 그는 어느덧 대과(大過) 없이 공직생활을 마치고 낙향하여 부모님이 물려주신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깨 농사를 망쳤다고 푸념이다. 초보자도 짓는다는 들깨 농사를 농부나 다름없는 그가 망쳤다니 믿어지지 않아 이유를 물었더니 장마 탓이란다. 장마 때 일기예보를 들어가며 모종을 심었는데 그만 비가 연일 쏟아져 모종이 완전 녹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고추는 들깨보다 일찍 심어서 장마를 잘 견뎌냈고 벌써 두 번째 빨간 고추를 수확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이다.

그의 경우처럼 어쩌면 교육과 농사는 사람의 의지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싶다. 튼실한 모종(학생)은 적기에 유능한 농부(선생)를 만나 사회의 동량(棟梁)이 될 것이고 불량한 학생은 선생(농부)의 손을 벗어나 자연에서 제멋대로 자라나 속물(俗物)이 될 것이기에 말이다.

이젠 생각하는 것도 덥다. 시원하게 식혀줄 뉴스 곧, 일본 교토국제고등학교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꿈의 무대’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같은 시원한 뉴스가 그립다.

잠시 로버트 레드포드가 한 말을 살짝 패러디해본다.

“사람 농사는 우연히 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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