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자들의 도시, 베네치아를 더 멋지게 여행하는 법

M스토리 입력 2022.10.18 14:33 조회수 2,508 0 프린트
[김경우 여행사진 작가와 함께하는 세계 여행]
 

물의 도시 베네치아(Venazia).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 부르는 이 도시를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터.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심’을 자극하기로 1순위로 꼽힐 베네치아는 118개의 섬으로 이뤄진 이탈리아 북동부의 작은 수상 도시다. 도시의 인구는 20만 명 정도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한해 평균 무려 2,2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니 어쩌면 인구 대비 관광객의 비율로 세계 최고의 순위를 자랑할지도 모르겠다.

베네치아란 도시는 어떻게 바다 위에 생겼을까?
 
베네치아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바다 위에서 탄생한 베네치아의 이색적인 모습 때문이다. 얕은 석호 위에 옹기종기 마을이 생기고, 이 마을들을 잇는 미로 같은 수로들. 육지의 도로를 대신하는 이 수로를 따라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곤돌라와 그 위에서 ‘산타루치아’를 부르는 곤돌리에(뱃사공)의 모습은 어찌나 매력적인지. 그래서 이 수상하고도 매혹적인 도시는 죽기 전에 꼭 한번 가 볼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 “베네치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기 힘든 바다 위에 그것도 흩어져 살고 있는 걸까?”

얼마든지 살기 좋은 곳이 많을 텐데 굳이 이렇게 불편하고 힘들게 바다 위에 도시가 탄생한 이유가 궁금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사실 베네치아는 쫓겨나거나 도망친 자들의 도시다. 로마를 떠나 밀라노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정복을 떠나던 로마 제국의 병사들 중 탈영병들이 험준한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이곳으로 도피했으며, 5세기 훈족의 아틸라에게 쫓겨난 사람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시가 생겼다. 이후로도 유럽에서 자기 고향에서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이 도망쳐 은둔하고 정착한 도시가 베네치아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 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렇기에 카사노바 같은 바람둥이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자유분방하고 퇴폐적인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쫓겨난 자들이 누린 번영, 그 속의 빛과 그늘
 
쫓겨나고 도망치고 숨고 싶은 자들의 도시인 베네치아는 세월이 흘러 엄청난 번영을 이루었다. 16~17세기 베네치아는 르네상스 시대에 무역과 금융업이 발달했고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 대변되는 ‘베니스의 상인’들은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유럽의 경제를 주물렀다고 한다. 현재도 북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공업 도시 중 하나로서 생각보다 공장이 무척 많은 도시다. 그래서 의외로 베네치아 사람들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높지 않으며 수익적인 부분도 크지 않다. 관광업종은 현지인보다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온 자본 비중이 높다고.

그래서 현재 베네치아는 심각한 ‘오버 투어리즘(Over Tourism)’의 몸살을 앓고 있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라고도 부르는 오버 투어리즘은 관광객들로 인해 현지인들의 삶이 방해를 받고 심지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는 현상. 얼마 전 베네치아 시민들은 “크루즈는 꺼져라!”라는 피켓을 들고 대형 크루즈가 항구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뜨내기 관광객들. 그들이 관광 오는 것이 실상 지역 경제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고 베네치아 사람들의 삶의 질만 저해시키고 있다는 것. 실제로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베네치아를 떠난 주민들의 수가 꽤 되어 관광객들로, 그것도 낮에만 북적일 뿐, 베네치아의 인구는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어디에선가 쫓겨난 선조들을 둔 베네치아 후손들은 이제는 그들의 고향인 베네치아에서 쫓겨나게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베네치아를 보다 더 멋지게 여행하는 방법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베네치아를 가 본 사람들은 많겠지만 베네치아에서 하룻밤 이상 자 본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대부분 대형 여행사의 서유럽 패키지 프로그램으로 베네치아를 방문했기 때문. 베네치아 외곽의 메스트레에 버스를 세우고, 수상버스 타고 산 마르코 광장에 갔다가 “2시간 뒤에 모여주세요”란 가이드의 지시를 받고 광장에서 기념사진 한 컷 찍고 다시 우르르 버스 타고 다른 도시로 가는 패턴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봐서는 베네치아를 여행했다 이야기할 수 없고, 또 오버 투어리즘의 위기를 더 가중시킬 뿐이다.

지역에도 도움 되고, 여행도 더 즐겁게 하는 방법은 베네치아에서 여유롭게 2박 정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숙박도 주변보다 베네치아 본섬이나 더 바다 쪽에 위치한 무라노나 부라노 같은 작은 섬에서 하면 좋다. 그렇게 섬에서 묵으며 바포레토(수상버스)를 타고 이 섬 저 섬을 구경하고 미로 같은 베네치아의 골목을 헤매보면 전혀 새로운 모습의 베네치아를 만날 수 있다. 사실 베네치아를 도보로 구경할 때 어디서 어디까지 가겠다는 목적의식을 버리는 것도 괜찮다. 도시 자체가 문화재기에 발 닿는 곳마다 오래된 유적을 만날 수 있고 기대치 않았던 현지인들과의 소소한 만남도 있을 것이요. 활기찬 일상도 만나게 될 것이고, 좁은 수로 사이를 지나가는 근사한 곤돌리에 아저씨의 인사도 받을 지 모를 일이다. 걷다가 지치면 자주 나타나는 노천카페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 하며 휴식을 하면 그만이다.
베네치아의 골목골목에는 벽마다 주요 랜드마크인 산타루치아역, 페로비아 정류장, 산 마르코 광장, 리알토 다리 등의 이정표가 화살표로 그러져 있으므로 방향을 잃어버릴 일도 없으며 어디든 와이파이가 되는 시대. 정 불안하면 스마트폰의 구글 지도를 켜면 된다. 하지만 베네치아에서는 외려 “길을 잃어버리면 좋겠다”라는 심정으로 미로 같은 골목을 누벼보자. 그럴 때야 비로소 바다 위에 태어난 수상한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진짜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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