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④ 이륜차 주차 문제

김은솜 기자 입력 2021.08.12 08:55 조회수 6,188 0 프린트
 

글쓴이 : 노노

# 지하주차장에 이륜차를 주차하는 법을 설명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① 이륜차를 타고 주차장에 간다 ② 주차를 한다 ③ 이륜차에서 내린다
‘누워서 떡 먹기’ ‘식은 죽 먹기’와 비견될 일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웠다.

#1 아파트 차량 등록 스티커를 얻기 위한 여정
작년 가을, 나는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온 뒤 근 한 달간은 야외 주차장에 주차했다. 지하 주차장 이용이 번거롭다고 생각했고, 들어가 본 적도 없어서 입구가 어디 있는지 조차 몰랐다. 그러다 비가 오는 날들이 잦아졌고, 요즘엔 늘 지하주차장에 주차한다는 동거인의 말을 듣고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기 시작했다. 

물론 동거인은 사륜차 운전자이다. 내가 사는 동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도 자리가 꽤 있어서 지하주차장 이용은 생각보다 번거롭지 않았다. 아니, 아주 편했다. 비가 오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겨울에 너무 추운 환경에서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30년 된 내 바이크도 지하주차장에 있을 때면 시동이 바로 바로 걸려 더는 야외 주차장으로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바이크에 스티커를 붙였다가 뗀 끈적한 자국을 보았다. ‘설마 주차하지 말라는 경고장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마침 지나가시던 경비원분께 혹시 바이크에 주차금지 경고장을 붙였냐고 여쭤보았다. 본인은 붙이지 않으셨다고 해서 더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하여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바로 다음 날, 동거인이 귀가하자마자 경비원에게 바이크를 주차 칸에 대지 말라고, 등록되지 않은 차량은 주차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해주었다. 왜 내가 직접 물어봤을 때 얘기하시지 않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이크도 입주자 등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입주자 등록을 하기만 하면 주차장에 주차해도 된다는 얘기로 이해하고 등록을 결심했다.

다음날. 입주자 등록을 하러 사무실에 갔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는 놀라웠다. 바이크는 입주자 차량으로 등록해줄 수 없으니 그냥 적당히 구석에 대라는 말이었다. 아니, 처음에는 나에게 등록하지 않은 차량이라서 주차하면 안 된다더니, 등록하러 온 사람에게는 퇴짜를 놓는 게 이상했다. 왜 등록이 안 되냐고 묻자, 보통 바이크는 등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대로 주차 칸에 주차하지 않으면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주차장 내 사고-뺑소니라던지-에 주차장 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으니, 사고가 난다면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묻자 그런 건 없다며 허허 웃으시더니 갑자기 여기에 인적사항을 적으라며 종이를 내미시고는 등록을 해주셨다. 찜찜한 마음으로 스티커를 받아들고 바이크에 붙이려고 했다. 그런데 사륜차 전용 스티커라 앞 내용 부분에 테이프가 있었다. 그러니까 앞 유리 안쪽에 붙일 수 있도록 디자인된 스티커였다. 그래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집에서 양면테이프를 가지고 와서 가장 잘 보일만 한 바이크 계기판 위에 스티커를 붙였다. 그게 작년 12월이었다.
 
바이크 시트 위에 올려져 있던 종이
#2 차량 등록을 했지만 이륜차는 주차칸이 아닌 곳에 주차하라는 ‘양해의 말씀’
약 반년이 지난 오늘, 5월 25일. 2-3일 동안 바이크를 타지 않다가 오랫만에 날씨가 좋아 바이크를 타러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더니 A4 종이 한 장이 바이크 시트 위에 놓여 있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주차를 항상 차량 있는 곳에 하신 것을 봅니다. 장애인 주차라인 옆에 보시면 입주자님의 오토바이 정도는 충분히 주차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여러 곳 있습니다. 그곳에 주차하시면 어떨까요?’

느지막한 오전에 나가 저녁 즈음에 돌아오는 나의 생활 패턴 덕분인지 지하주차장에 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 나는 의아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주차 가능한 차량 수는 가구당 1.7대이고, 1세대당 2대까지 차량 등록이 가능하다. 시간대에 따라서 지하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때도 있겠지만 아파트 입구 근처가 아닌 칸은 여유로운 편이다. 또, 지하주차장에 주차할 칸이 부족했다면 본인이 야외 주차장에 주차하면 될 것이 아닌가?

#3 라이더에게 주차거부는 흔한 일
이륜차가 지하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오히려 주차를 거부하는 것에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위법적인 일이라는 것은 몇 년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4년 전, 한 라이더가 성동구의 카페의 야외주차장에서 오토바이 주차 거부를 당했던 적이 있다. 그는 SNS에 그 내용을 올리며 항의하는 의미로 라이더들이 함께 그 카페에 모여줄 것을 부탁했다. 모이자고 한 시일에 내가 카페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열 명이 넘는 라이더들이 주차장에 바이크를 착착 주차해두고 카페에 가장 큰 테이블에 주르륵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헬멧을 들고 들어가니 그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고 인사를 했다. 특별히 무언가를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바이크 얘기를 하고, 누군가가 단체 사진을 제안해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누다 집의 방향이 같은 라이더가 있어서 그분들의 제안으로 함께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당시에 바이크를 탄 지 오래되지 않아 대교를 건너는 게 무서웠는데, 함께 속도를 맞추어 앞뒤로 달려주는 바이크들 덕분에 든든했다. 집에 도착할 때 즈음 손을 흔들며 내 앞으로 지나간 두 대의 바이크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4 이륜차의 지하주차장 주차는 정당한 행위
다시 오늘로 돌아와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인터넷 창에 ‘이륜차 지하주차장’을 검색했다. 이륜차를 지하주차장 칸에 주차하는 것을 아니꼬워하는 것은 나의 이웃뿐만이 아니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이륜차를 지하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을 이기적인 일로 생각하는 듯했다. 아파트 온라인 커뮤니티에 주차된 바이크 사진을 찍어 올리며 이런 행동은 ‘양심 불량’이며 ‘상식적인 입주민’이 되자는 글이 있었다. 또, 3일째 오토바이가 차량 칸에 주차하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없느냐’는 글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으나 직접 바이크 주인에게 연락해서 이동을 부탁드려보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5 주차장 주차 시 리스크에 대한 보험
그 댓글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일이 하나 있었다. 지난달쯤에 주차한 내 바이크를 옮긴 흔적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바이크 뒤 박스에 헬멧을 넣어두었었는데 바이크를 들어 옮기는 바람에 헬멧이 박스에 긁혀서 상처가 났었고, 보험처리를 하기 위해 CCTV를 확인하여 범인을 색출하려 했으나 CCTV 사각지대라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헬멧이 약간 긁힌 정도여서 넘어가기로 했으나, 만약 바이크에 직접적인 큰 손해가 있었다면 경찰서에 재물손괴를 신고하고 절차를 밟아 주차장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차량 칸에 주차하지 않았더라면 받지 못하는 정당한 혜택이다. 이륜차 운전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올바르지 못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륜차를 사륜차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을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사항이라 생각해서 이런 식의 ‘배려’를 부탁한다고 생각했으나, 이륜차가 사륜차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았다. 상식과 양심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것이 늘 법과 동일 선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법은 최저의 기준으로 합의된 라인일 것이다. 정당한 권리로 주차를 하는 이륜차 운전자에게, ‘늘 봐왔는데 지하주차장에 주차하시더라. 구석에 적당히 대주시길 부탁드린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프린트해서 오토바이 시트 위에 올려두고 가는 그 친절로 포장한 압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것이 모두 사륜차 운전자와 이륜차 운전자 사이의 사회적 권력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개인의 문제일까? 무시해야 할지, CCTV를 뒤져서 누구인지 찾아볼지, 답장할지 고민이 되어 이런저런 옵션을 생각하다 결국 펜을 들었다.
 
‘양해의 말씀’에 대한 답장
#6 ‘양해의 말씀’에 대한 답장
‘안녕하세요. 얼마 전 두고 가신 편지는 잘 읽었습니다. 우선, 제가 이 아파트의 주민이고, 아파트의 차량 등록에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저에게 ‘부탁’을 하신 이유는 이륜차가 구석에 주차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시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얼마 전, 누군가 제 바이크를 억지로 옮긴 적이 있었습니다. 재물 손괴죄로 신고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CCTV 사각지대라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뒤 박스에 실린 헬멧에 스크래치가 좀 생긴 정도로 끝났지만, 언제든지 비슷하거나 더 최악의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CTV 부재뿐만 아니라 뺑소니 등의 이유로 가해자를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저는 주차장에서 가입한 보험으로 보험처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제가 정확히 주차 칸에 정당하게 주차해야지만 받을 수 있는 보상입니다. 따라서 ‘주차 칸에 주차하는 것’은 ‘굳이 할 필요 없는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 저의 권리이자 제 바이크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한 것이지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다음부터는 ‘바이크를 지켜봤는데 계속 지하주차장에 주차하더라’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쓰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저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일을 그만둬 주신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친절로 포장한 압박을 친절로 포장한 무식함에 대한 조롱으로 반박하는 것이 유치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은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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