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여행기] 자이로X와 함께한 1박2일 모토캠핑

M스토리 입력 2021.08.11 15:19 조회수 4,359 0 프린트
 
 
 
 
 

자이로 X, 레트로의 로망
이번에 여행을 함께 한 바이크는 혼다의 자이로X. 바이크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때때로 어렵지만, 이 바이크를 처음 시승하고 나서는 이름이 바로 떠올랐다. 느리게 뽈뽈뽈 달린다고 해서 ‘뽈뽈이’.

국내에서는 정식 수입이 중지된 지 오래되어 상태가 좋은 매물은 구하기가 어렵고, 특이한 구조와 귀여운 디자인으로 마니아층이 형성되어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후륜이 2개인 3륜 바이크이고, 뒷바퀴와 차체 앞부분이 분리되어있기 때문에 차체를 기울이면 뒷바퀴는 그대로 있고 앞바퀴와 차대 앞부분만 움직인다. 자이로 X는 국내에 2행정과 4행정 버전 모두 수입되었지만 뽈뽈이는 2행정 바이크다. 2행정만의 엔진소리도 귀엽고, 수시로 2T오일을 확인하며 채워야 하는 것도 정겹다.

 

뽈뽈이와 함께 한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소배기량이라고 해서 투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국내 여행은 어디든 거뜬히 가능하던 100cc와는 다르게 50cc는 제약이 많다. 오늘의 목적지는 광양에 있는 ‘백운산 자연휴양림’으로, 출발지인 순천 시내에서 휴양림까지 편도 거리는 24km이다. 웬만한 바이크로는 순식간에 갈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때는 햇볕이 내리쬐고 아스팔트가 절절 끓는 한여름의 한낮. 주행 중간에 바이크가 멈추는 짜릿함을 피하고 싶다면 짐을 가득 실은 92년식 2행정 50cc 바이크에게는 30km 내외가 딱 적절한 어드벤처라고 할 수 있다. 나름의 운치와 로망을 느끼며 여행을 시작해보자.

 

 

여행의 시작
순천 시내를 빠져나오자 논과 밭을 낀 작은 왕복 2차선 길이 이어졌다. 햇볕은 뜨겁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바람에 땀을 식히며 가다 보면 금세 광양에 진입한다. 잠시 광양 시내를 가로지르면 다시 작은 시골길로 들어온다. 이제 완만한 오르막 커브 길이 시작되는데, 차들도 천천히 달리고 양옆에 나무들의 그늘 덕분에 선선해져서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도 조금 누그러졌다.

 

 

백운저수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뽈뽈뽈 도로를 달리는데, 저 멀리 강인지 호수인지로 내려갈 수 있는 샛길이 있길래 차가 없는 틈에 후다닥 내려가 본다. 궁금해서 지도 앱을 켜보니 이것은 강도 호수도 아닌 백운저수지. 백운산 아래에 시원하게 자리한 저수지의 물빛을 바라보니 햇볕은 뜨거워도 왠지 시원한 것 같은 기분이다. 백운 저수지 바로 옆에는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운영이 중단된 듯 보였지만 <초록 기운 공원>이 있다. 그렇게 한참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물멍'을 때리다 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나선다.

 

 

백운산 자연휴양림
백운 저수지에서 백운산 자연휴양림까지는 8km만 가면 되는데, 예고도 없이 엄청난 커브+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스로틀을 당겨도 20km/h나 나갈까? 풀 스로틀을 당겨 보지만 큰 차이가 없다. 오르막길에서 오랫동안 풀 스로틀을 당기다가 바이크가 멈춰버렸던 악몽이 떠올라 스로틀을 풀었다 감기를 반복하니 드디어 오르막의 끝에 도달하고 내리막이 시작된다. 내리막의 경사가 제법 심해서 스로틀을 전혀 당기지 않아도 자이로X 평지 최고속을 훌쩍 넘는 60km/h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길 끝에서 좌회전을 한번 하면 휴양림 입구가 보인다. 매표소에서 예약했음을 알리자 신분증을 요구한다. 예약 확인이 끝나면 전화 방문 등록과 체온 체크만 하면 입장 절차가 완료된다. 매표소에서 쭉 직진하면 야영장이 보일 거라고 말씀해주셔서 일단 도로를 따라 쭉 직진한다. 먼저 오토 캠핑장과 카라반 전용 캠핑장이 먼저 보였다. 더 올라가면 일반 야영장이 나온다. 나는 제2 야영장으로 예약했는데, 먼저 도착한 캠퍼들을 보니 캠핑 사이트 바로 옆에 차를 주차해 둔 것이 보인다. 아마 코로나로 인한 거리 두기 때문에 캠핑 사이트 공간이 많아서 가능한 것 같다. 나도 뽈뽈이를 끌고 캠핑장 안으로 향했다.
 

 

솔캠의 단점? 솔캠의 매력!
내 사이트인 55번 데크를 확인하고, 데크 바로 옆에 오토바이를 바짝 주차했다. 돌이 많고 가파른 길이라 주차가  까다로웠다. 무겁고 높은 시트고를 가진 바이크를 운전한다면 너무 무리해서 주차하지 않기를 권한다. 짐을 풀어서 데크 위에 차곡차곡 올려두고, 제일 먼저 타프를 설치하기 위해 타프 스킨을 데크 위에 펼치고 스트링을 꺼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헥사 타프가 너무 크고 설치가 어려워서 비교적 설치가 간단하고 크기가 작은 렉타 타프를 새로 구매하여 가져온 참이었다. 그런데 분명 어제 타프 치는 법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10개쯤 보고 왔는데 도저히 설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 더워서 제대로 자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막판에 사 온 타프인데도, 낑낑대며 설치하고 열몇 시간 뒤에 바로 해체하려니 더더욱 망설여진다. 스트링을 펼치고 팩을 몇 개 박아봤지만 앞으로 캠핑할 시간이 24시간도 남지 않았고, 빽빽한 소나무 숲에 있는 캠핑장이라 제법 그늘이 많아서 타프는 빠르게 포기하기로 한다. 뭐든지 혼자 해결하고 혼자 결정해야 하는 것이 단점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소박하게 필요한 것만 세팅하고 최대한 오랜 시간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솔캠(솔로 캠핑: 혼자서 하는 캠핑의 준말)의 매력이 아닐까? 텐트와 테이블, 의자 등 대략 세팅을 마쳤으니  근처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옥룡점 하나로 미니 (운영 시간 평일 9:00~18:00 주말 8:00~17:00)
백운산 자연휴양림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는 옥룡점 하나로마트인데 막상 도착해보니 상상했던 커다란 마트가 아닌 편의점처럼 작은 <하나로 미니>로 신선 식품의 종류는 극히 적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았다. 과일이나 한 팩 살까 생각했지만 과감히 포기하고 꼭 필요한 물, 종량제 봉투와 간식거리를 한두 개 사서 나온다. 나오자마자 바로 건너편의 세븐 일레븐을 발견하고 방앗간에 온 참새처럼 내일 아침에 먹을 빵을 하나 사서 들고나왔다.
 

 

숲속의 밤과 아침은 일찍 온다
저녁을 먹고 의자에 앉아 멍하니 생각하다가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봤더니 머리를 맞대고 위로 자라있는 소나무 풍경이 장관이었다. 점점 해가 지자 소나무 사이사이 보이는 하늘에 부분부분 빨갛게 물이 들었다. 빨간빛이 물감처럼 이리저리 번지다가 순식간에 사방이 어두워졌다. 저녁 시간인데도 오랫동안 하늘이 밝다고 생각했는데 숲의 밤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식기를 정리하고 텐트에 들어와 일찍 잘 준비를 한다.

 

한여름에 폭염주의보가 계속되는 날씨지만 산은 춥다는 말에 침낭도 두꺼운 거로 챙겨오고 겉옷까지 챙겨왔건만 민소매로 있어도 적당히 시원할 뿐 추울 정도는 아니었다. 텐트 안 공기는 바깥보다 습하고 후덥지근했다. 특히 에어매트에 닿아있는 몸이 굉장히 뜨겁게 느껴져서 챙겨온 휴대용 선풍기를 틀고 텐트 문 하나를 약간 열어두어 통풍을 시켰더니 한결 났다. 챙겨온 침낭은 필요 없어서 옆으로 치워두고 잠을 청했다. 가만히 누워 풀벌레 소리를 듣는데 톡톡톡 비가 오는 소리가 나서 텐트에 나가보니 비는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소나무 잎들이 톡톡톡 떨어지는 소리였다. 바람 소리와 벌레 소리, 소나무 잎이 텐트 위로 떨어져 톡톡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반복되다가 잠이 들었다.

 

위에 한참을 뒤척이다 잠들었는데, 새벽에 추위로 깼다. 옆으로 밀어둔 침낭을 덮고 다시 달콤한 잠을 청했다. 안대가 잠시 벗겨졌는데 세상이 환해서 시간을 봤더니 6시 30분. 침낭을 대충 덮고 있는데도 별로 덥지 않아서 해가 떠도 선선하려나 하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더니 텐트 안이 찜통처럼 후덥지근하다. 아직 7시 30분이다. 역시 타프를 쳤어야 했나 후회하며 반쯤 감긴 눈으로 텐트에서 나왔다.

 

캠핑 의자에 앉아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만끽한다. 어젯밤엔 뻐꾸기가 울더니 아침에는 까악대는 까마귀에, 도시에 있는 비둘기와는 다른 산비둘기 소리에, 밤과 다른 풀벌레 소리에, 그밖에 알지 못하는 소리로 노래하는 새소리가 들린다. 데크 위는 땡볕이 내리쬐지만, 텐트가 만드는 그늘이 있어 의자를 당겨 그늘 안으로 쏙 들어오니 딱 좋다.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곧바로 텐트 안으로 들어가 매트와 침낭 등을 정리한다. 11시까지 나가면 되지만 더운 여름날에는 체력을 분배해서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더는 쓰지 않을 짐들을 1차로 정리하고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천천히 휴양림 안을 둘러보며 산책을 하고 어제 산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캠핑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다시 짐을 뽈뽈이 짐대에 싣기 시작한다. 짐을 싣다 보면 딱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 이렇게나 많은 짐이 필요하다는 게 새삼스럽다.
 

 

캠핑의 매력
주변에서 캠핑의 매력에 대해 물어보면 늘 대답하기가 어렵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고, 깨끗한 공기도 좋고, 차 소리에서 멀어지는 것도, 불멍도 좋은데.. 결국엔 머뭇거리다 ‘가끔은 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것도 좋잖아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내 침대에 눕자마자 깨달았다. 캠핑의 즐거움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낯섦과 불편함이 빛나는 순간은 내 방, 내 침대에 누웠을 때가 아닐까?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서 잊고 있던 쾌적함을 증폭해서 느꼈던 그 찰나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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