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추와 말복이 지나자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가을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한 주일이나 지났을까, 기온이 다시 37, 8도를 오르내린다. 출산을 앞둔 딸아이가 걱정이다. 무더위에 열대야에 얼마나 견디기 힘들까! 나 역시 지방 근무지 아파트에 에어컨이 없다보니 거실 바닥에 드러눕자마자 마치 닭띠인 몸뚱이가 삼계탕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납자(衲子)가 선사(禪師)에게 물었다. “날씨가 더운데 어디로 피해야 합니까?” 그러자 선사 왈(曰)
“끓는 가마솥으로 피해라.”
그 말씀은 곧 이열치열(以熱治熱)하라는 가르침이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인생을 ‘고(苦)’라고 진리를 말한 것처럼 가마솥 속 같은 현실을 잘 적응하고 극복하여 삶의 자유를 얻으라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주위 환경에 적합하도록 형태적 생리학적으로 변화하여 생존하는 동물을 흔히 ‘적응동물’이라 한다. 흰곰이 북극의 동토(凍土)에서 눈보라를 헤치며 살아가듯이, 낙타가 열사(熱砂)의 사막을 뚜벅뚜벅 걸으며 생존하듯이 나 역시 가마솥 속 여름을 두 눈 부릅뜨고 견뎌내라는 것이다. ‘적응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하여 하루는 밤에 웃기는 코미디라도 들으면 열대야를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노트북을 켜고 유튜브를 훑어보았다. 마침 ‘컬투쇼’ 코미디프로에 출산에 대한 어린 여자아이들의 대화가 흥미를 끌었다.
“엄마, 아기는 어떻게 생겨?”
“…” 엄마가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하자 놀러왔던 두 살 더 많은 사촌언니가 대신 대답을 해준다.
“바보, 그것도 몰라.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하면 생기는 거야.”
“정자와 난자는 어떻게 만나?”
“너, 친구하고 만날 때 어떻게 만나니. 약속하고 만나잖아. 약속…”
비록 어린 여자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대화였지만 은근히 미소 짓게 하는 꽁트였다.
약속. 그렇다. 누구나 약속을 하고 만난다. 약속을 하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다. 그런데 만날 예정일은 있지만 언제 만날지 몰라 꿈을 꾸며 기다리다 불쑥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외손녀 담비(태명)가 그랬다. 다음 달 중순이 예정일인데 보름하고도 한 주일 먼저 태어나 반갑게 일찍 만나게 된 것이다.
오후에 사위에게서 문자가 왔다. 새아기 사진과 함께 우렁찬 울음소리가 담긴 동영상도 보내왔다. 새아기의 울음소리가 판소리의 ‘아니리’처럼 싱그러웠다. 나는 무더위를 잊고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해가 저물 무렵, 텃밭에 나가 채소밭에 물을 뿌려주었다. 배나무에도 방충용봉투를 씌워주었다. 새아기는 아직 배 맛을 볼 수 없겠지만 아기의 엄마인 딸아이는 곧 다가올 가을에 시원하게 한입 맛볼 수 있으리라!
땀을 뻘뻘 흘린 탓에 샤워를 하고 잠시 쉬는데 이번엔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밝지가 않았다. 아기가 ‘신생아 생리적 황달’이 심해 퇴원하다말고 다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었다. 수치는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입원할 정도라니... 심히 걱정스러워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신생아의 경우 보통 혈중 빌리루빈이 증가하여 황달증상이 나타나는데 대부분 5∼7일 정도 지나면 별 문제없이 좋아진다고 한다. 다행이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고된 ‘인생훈련소 훈련병’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혼자 웃었다.
이튿날 아침, 출근하다 보니 김씨네 농장 귀퉁이에 황금빛 ‘겹삼잎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눈이 부셨다. 축하 꽃다발 대신 휴대폰으로 사진을 한 컷 찍어 산모인 딸아이에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더 무엇인가 자꾸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혹시 내가 아둔해서 신(神)께서 하달하신 미션을 알아차리지 못하나 싶기도 했다.
일단 누나들에게 전화로 출산소식을 알려드렸다. 모두들 기뻐하신다. 카톡 프로필 방에도 새아기 눈뜬 얼굴모습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어느새 알아보았는지 시인 J에게서 축하메시지가 날아왔다. 뒤따라 동창생들의 축하 메시지도 여러 개 날아들었다.
그 가운데 고교동창생 C가 “할배가 되면 해주어야할 일이 많아지는데, 할배의 욕심인가 아니면 사회적 인식인가?”라고 던진 의문형 메시지가 눈동자를 찌른다. 또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인 듯 죽마고우 K는 전화로 “할아버지의 도리야”라고 격려 겸 역할을 정리해준다. 하지만 “누가 그러는데 돈이나 많이 준비하래요.” 란 아내의 한마디가 격하게 어깨를 잡고 흔든다. 그렇다. 사회적으로 ‘도리’를 다 하려면 ‘돈’이 필수다. 그러나 가진 게 빈주머니뿐인 나로선 돈 대신 ‘축시’만 우선 한 꼭지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담비의 탄생을 축하하며>
단꿈 깨어나니 덥디 더운 여름날/제비 날아간 자리에/담비야 네가 얌전히 와 앉았구나//거리엔 단비 내리고/숲에는 향기 청초한 꽃들과 새들의 합창소리 짱하구나//너의 고고성(呱呱聲) 독창에 놀라셨나!/하늘님이 뭉게구름 낀 산 능선에 무지개 댕기 하나 곱게 달아주셨구나!/사랑 하자고
일순, 무더위가 다 달아난 것만 같다. 담비가 고마웠다.
새아기 역시 이제 고고성(呱呱聲)을 지르며 태어났으니, 고(苦)의 운명을 건강하고 예쁘게 잘 적응해 나갈 것이라 믿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