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의 내일의 풍속] 여름을 나는 법

M스토리 입력 2025.08.19 14:13 조회수 2,012 0 프린트
 

계절마다 하는 말이 있다. 봄에는 생각보다 춥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가을에는 생각보다 덥다고 말하다가, 좀 시원해지는가 싶으면 다음 날 겨울이 되어 있다. 겨울에는 낮이 짧고 추위가 너무 길어진다며 불평하다가, 긴 겨울을 잠시 떠나 여름 나라로 도망치기도 한다.

그런데 올여름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의 연속이다. 매년 여름에 비가 오는 패턴이 점점 예측 불가능하게 바뀌고 있지만, 올해는 특히 한 달에 두 번씩 미니 장마를 내리고, 지난주와 이번 주의 에어컨 설정 온도와 옷차림이 완전히 다르다. 지난주는 숨 막히게 더웠다가 이번 주는 선선했고, 그 기세에 얇은 긴팔을 꺼내 입으면, 다음 주에는 핸드폰 알림창에 폭염주의보가 연달아 뜬다.

라이더로서 기후 위기로 매년 더 심해질 극한의 여름을 어떻게 현명하게 날 수 있을까? 비가 연속해서 오지 않는 날이라면, 숨 막히고 따가운 열기에 대비해야 한다. 시원한 아침에 출발해도 오후가 되면 아스팔트 위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온몸을 휘감고, 풀 페이스 헬멧 안은 사우나가 된다. 주차해 둔 바이크 시트는 햇볕에 달궈져 엉덩이를 태울 기세고, 신호 대기 중에는 엔진 열이 종아리를 지글지글 달군다.

그래서 여름 라이딩에는 나만의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쿨토시와 메시 재킷, 통풍이 잘되는 라이딩 팬츠는 필수고, 물병은 핸드폰보다 더 가까운 곳에 둔다. 30분마다 휴게소나 카페에 들러 몸과 장비를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많은 비가 예고된 날에는 과감히 일정을 미루는 것이 안전하다. 폭염과 폭우 속에 ‘근성’만 믿고 달리는 건 건강과 직결된 문제다.
 
 
하지만 고충만 있는 건 아니다. 여름의 새벽은 라이더에게 가장 긴 주행 가능 시간을 선물하는 때이다. 조금만 부지런하게 일찍 일어난다면 해가 길어 아침 일찍부터 마음껏 달릴 수 있고, 산속 계곡길을 달리다 보면 습도 높은 도심과는 다른 공기가 반긴다. 비 온 뒤 갓 말라가는 도로 위의 흙냄새, 들판을 스치는 바람, 가장 밝은 초록색으로 빛나는 산에 둘러싸여 달리는 순간은 다른 계절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호사다.

가장 뜨거운 한낮에는 계곡이나 바다, 혹은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카페에서 피서를 즐기다가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스로틀을 당기는 것도 여름의 묘미다. 

올여름 날씨는 변덕스럽고, 체감온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달릴 이유는 충분하다. 여름의 불편함을 견디게 해주는 건, 모든 것이 한 톤 밝아진 여름만의 색, 그리고 달릴 때 느껴지는 묘한 해방감이다. 땀을 훔치고 물 한 모금을 들이켠 뒤, 다시 시동을 걸 때의 설렘. 어쩌면 그게 여름을 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박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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