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은 대체로 무언가의 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이 커리어의 끝일 수도 있고, 관계의 끝일 수도 있으며, 혹은 진정한 의미의 ‘끝’, 즉 가까운 이의 죽음일 수도 있다. 죽음을 경험한 이후의 삶은 더욱 선명해지고, 남겨진 이들 사이의 연대는 때로 더 끈끈해진다. 영화 『올 더 플레이스(All the Places)』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중년이 되어 아버지마저 떠나보낸 남매가 상실을 계기로 오래전 약속을 떠올리며 이륜차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남매인 페로와 가보는 어릴 적 아빠로부터 똑같은 자전거 한 대씩을 선물받았고, 십대가 되어 어린이 자전거가 작아진 어느날에는 똑같은 중고 이륜차를 선물받는다. 발명과 정비에 관심이 많았던 가보는 자연스럽게 정비사의 길을 걷게 되고, 페로는 유학을 선택하면서 두 남매는 각자의 길을 걷는다. 페로는 런던에서 유학생활을 마친 뒤 싱가포르에서 은행원으로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점차 가족과 멀어진다. 그 사이 가보는 고향집에서 병든 아버지를 간병하며 가족의 곁을 지킨다.
그러나 페로는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집을 찾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에조차 늦게 도착해 가보를 실망시킨다. 서로에게 쌓인 감정은 쉽게 풀리지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함께 즐기던 탁구를 매개로 두 사람은 조금씩 거리감을 좁혀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탁구대 아래에서 어린 시절 두 사람이 함께 계획했던 여행 지도를 발견하게 된다. 그 지도는 남매가 이륜차를 타고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었고, ‘서로의 소원을 반드시 들어줄 것’이라는 규칙까지 적혀 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바이크, 그리고 그 바이크로 함께 꾸었던 꿈. 페로는 가보에게 그 바이크가 아직도 있는지를 묻고, 정비사인 가보는 기적처럼 멀쩡하게 관리되어 있는 바이크를 꺼내온다. 그들은 거의 20년 만에 함께 바이크를 타고 고향의 밤거리를 달리며, 멕시코의 고즈넉한 야경 속에서 조심스레 잃어버린 시간을 되짚는다. 그렇게 여행의 출발점으로 표시되어 있던 장소에 도착한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의 약속을 다시 떠올리고, 마침내 늦게라도 그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영화 『올 더 플레이스』는 가족이란 이름 아래 너무도 달라져버린 두 사람의 재회와, 그들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따뜻한 여정을 담고 있다. 이륜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이륜차를 선물해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 함께 이륜차를 타고 있는 서로의 관계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륜차는 두 사람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엔진 소리를 따라 흐르는 감정들, 멀어졌던 마음의 거리, 그리고 여행이라는 ‘멈추지 않는 회복’의 시간. 바이크 위에서 다시 이어진 남매의 이야기는, 당신이 잊고있던 꿈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