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나의 향촉성

입력 2025.07.15 16:21 조회수 1,293 0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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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손이나 줄기를 가진 식물은 줄기나 덩굴이 다른 물체에 닿을 때 자극에 의하여 그 자극에 관계된 방향으로 굽어지는 성질이 있다.

그런가하면 바퀴벌레처럼 좁은 공간, 가령 냉장고나 박스 밑 같은 비좁고 무언가로부터 눌려지는 환경을 좋아하는 곤충이나 동물도 있다.

이러한 성향을 향촉성(向觸性)이라 하는데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도 어쩌면 그 향촉성에 의한 작용은 아닐까 싶다.

어느 드라마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사랑이고 사랑으로 안 되는 게 결혼이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것도 어쩌면 돈과 사랑을 향해 굽어지는 향촉성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요즘 나는 매일 하모니카를 연습하고 있다. 산토끼, 따오기, 꽃밭에서… 어린 시절에 동무들과 입이 부르트도록 불렀던 동요다. 그 동요를 부르면 피곤이 파도를 타고 시원스레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버리는 것 같다. 그것도 인생이 저물어가면서 동심을 향해 굽어지는 마음의 향촉성 탓인가?

며칠 전, 캐나다에서 사는 친구C에게서 문자가 왔다.

“난 내일 미국 워싱터주 서부 올림픽 국립공원에서 캠핑하러 여행을 떠나네. 깊은 숲속과 바닷가에서 자연을 접하며 조용한 시간을 가져보려 하네.”

하여 나도 답신을 보냈다.

“오호, 그림이 그려지네. 부럽네. 명상 잘 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되시길…”

그리고 며칠 후, 나도 서울 송파구에 있는 서울올림픽공원 사진을 한 장 찍어 C에게 보냈다.

“88올림픽공원 몽총토성에 왔네. 자전거 타고… 그대는 캠핑 잘 하시나? 거기도 여름이겠지…”

캐나다는 땅이 넓은 나라다. 언젠가 꽤 오래 전에 선배 O박사가 농업이민을 갔는데 불하받은 농장이 얼마나 넓은지 이웃에 사는 농부와 연락을 할 때 소총을 쏜다고 했다. ‘두 번 쏘면 만나자. 세 번 쏘면 급한 일이다.’라는 등…

그런데 친구C는 그 멀고 넓은 나라에서 더 멀리 더 넓게 미국으로 캠핑을 간다고 하니, 그의 열정 역시 심오하고 넓은 자아성찰을 향한 향촉성이 아닐까 싶다.

하루는 아내가 친목모임에 다녀와서 뜬금없이 ‘단독주택에 사는 어느 지인이 1층 거실에서 2층 서재에 있는 남편과 휴대폰으로 대화를 나눈다.’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여 나도 캐나다 선배의 경우와 또 어느 날 젊은 커플이 카페에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있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런데 왠지 무언가 2% 부족한 듯 아니 넘치는 듯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무슨 연유일까?

물론 통신매체가 발달해서 그런 거겠지만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멀어져서 빚어지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사촌은 물론 사돈에 팔촌까지도 수시로 오고가며 살았고 특히 설 명절 때는 차례를 지내고 나서 세배 드리러 이웃 마을까지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추석 때는 영화관을 향해 함께 몰려다녔던 추억도 있다. 허나 이제는 사촌 간에 아니 형제간에도 안부문자조차 주고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사는 일에 바쁘고 지쳐서 그렇겠지만 그에 따라 삶의 가치관이 변하고 향촉성의 방향이 확 달라진 것 같다.

지난달 말에 넷째매형 팔순이라 다녀왔다. 지난 시절에는 친지와 이웃 지인들까지 모두 초대해서 성대하게 치렀을 잔치를 매형과 누나는 완전히 축소해서 치렀다. 우리 부부와 매형의 막내 여동생 부부만 불러 한정식 음식점에서 점심만 먹고 주변 유원지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그래도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 하실까 싶어 축시 한 편 낭독해 드렸다.

<팔순생신을 축하드리며>
산은 말이 없습니다/강도 소리 없이 흐릅니다//그 곁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포담마을>을 사랑하고/사람을 아끼며/땅을 깎아, 낮게/마을을 품으신 분/이슬 맺힌 새벽을 깨우고/둘레길을 돌며 들꽃 이름을 부르시던/그 마음/누구보다 먼저 짐을 들고/누구보다 늦게 걱정을 놓으시던 그 손길//사람이 그리워 모인 마을/그 중심에 늘 당신이 계십니다//여든 해를 돌고 돌아/오늘/당신은 향기로운 나무가 되었습니다/그늘은 넓고/열매는 마을 가득 웃음이 되어 맺혔습니다//산은 허리를 굽히고/강은 흐름을 멈추었습니다/당신의 오랜 사랑 앞에/우리 모두, 고개를 숙입니다

<포담마을>은 매형이 이름을 짓고 20여 년간 직접 조성한 전원주택단지다. 매형이 촌장이다. 하지만 남한강변에 위치한 한적한 그 마을에는 도시를 떠나온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세컨하우스와 농막을 짓고 사는데 대부분 남자 혼자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가 아니라 강변 ‘포담마을’에서 꿈꿔왔던 각자의 행복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축시를 읽는데 왠지 울컥 눈물이 솟아서 참아가며 겨우 읽었다. <팔순잔치>라는 제목의 단편영화를 한 편 끝마친 것 같은 감회랄까, 아니 영화의 마지막 화면에 나오는 <The End> 라는 자막을 본 것처럼, 이제 영화가 끝났으니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을 향해 돌아가라는 지시어를 읽은 것처럼...

나는 지금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진정 <가족과의 행복>을 향해 가고는 있는가? 잠시 눈을 감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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