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역사 속에서 태어난 러시아의 사이드카, Ural 모터사이클

입력 2020.06.26 09:01 조회수 4,684 0 프린트

모터사이클 브랜드 스토리
<URAL>편

지금의 러시아가 ‘소련’이던 시절로 회귀해본다. 제 2차 세계 대전을 계획 중이던 1939년 우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은 ‘몰로토프-리벤 협정’에도 불구하고 독일 나치군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이에 조셉 스탈린(소비에트 연방 지도자)은 소비에트 군대가 독일 전차와 보병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련을 방어할 지상군을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지역에서 철저한 준비를 하도록 명령했다. 이전에 있었던 핀란드와의 ‘겨울 전쟁’에서 자국의 붉은 군대의 노후화 사실과 구식이었던 모터사이클 장비에 관해 깨달으며 현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소련 국방부 회의에서 러시아의 거친 지형과 기후에 맞지 않는 형편없는 성능의 모터사이클로는 전쟁을 대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붉은 군대에 군수용으로 적합한 모터사이클을 고안하라고 요구하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우랄의 ‘M-72’ 사이드카 모델이다.

모방으로 시작 BMW R71

우랄의 시작은 독일의 BMW의 R71 모델이 전투용 모터사이클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을 내려, 당시 중립국인 스웨덴 중개인을 통해 BMW R71 5대를 은밀하게 소련으로 밀수하는 데 성공하면서부터다. 반입된 바이크를 분석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엔지니어들이 투입되었고, 5대의 BMW R71을 리버스 엔지니어링(객체에서 지식을 추출하기 위해 해체되는 프로세스)을 통해 분해하고 모든 세부 사항을 파악한 후 엔진과 기어 박스를 생산하기 위해 금형과 다이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1941년 초 스탈린의 허락으로 ‘M-72’ 모델의 프로토타입이 대량 생산에 들어가게 되었다. 밀수했던 BMW 5대 중 한 대는 복원되어 ‘IMZ-우랄 공장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41년 BMW는 R71의 생산을 종료하고 R75 시리즈 생산을 시작했다. 

전쟁을 위한 준비

생산이 확대되면서 모스크바에 공장이 설립되었고, 수백 대의 러시아 M-72 사이드카 모터사이클을 생산했다. 소비에트의 군사 전략가들은 만약 모스크바 공장을 독일이 폭격했을 경우 폭격기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하여, 공장을 자원이 풍부한 우랄 산맥 지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때 선택된 장소가 우랄 산맥의 시베리아 프린지에 위치한 이르빗(Irbit) 마을의 양조장 건물이었다. 양조장은 M-72 모터사이클을 대규모로 생산하기 위해 시설을 구축하고, 연구 개발을 위한 공간으로 개조되었다. 1942년 10월 초도 물량이 생산되었고, 제 2차 세계 대전 중 정찰 부대와 이동 부대를 위해 총 9,799대의 M-72 사이드카가 군대로 인도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우랄의 공장은 확장되었고, 1950년에 30,000번째 모터사이클이 생산되었다. 애초 우랄의 태생이 ‘전쟁을 위한, 군대를 위한 것’이었으나, 전후에는 군대에 공급하는 임무 외에 국내 소비자를 위한 내수용 모터사이클 제작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 우크라이나의 KMZ 공장은 군대 납품을 위한 공급을 맡고, 이르빗 모터사이클 웍스(Irbit Motorcycle Works : IMZ)는 민간 소비용 제작을 맡았다. 결국 1960년대에는 공장의 전체 생산시설이 비 군사용으로 전환되었다. 1957년 M-72의 생산라인이 중국에 판매되었고, 중국으로 건너간 우랄의 금형과 도면을 기반으로 ‘중칭 750’이라는 사이드카를 제작했다. 중국에 의존하던 북한으로 군수 물자들을 지원하여 ‘천리마’라는 이름을 달고 한국 전쟁 때 사용하게 되는 역사의 히스토리가 있다. 

우랄 수출의 역사

우랄이 최초로 수출을 한 것은 1953년, 주로 개발 도상국으로의 수출이었다. 이후 1960년대 후반에는 선진국으로의 수출도 성공하면서 점점 많은 대륙에서 우랄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우랄이 찾은 틈새 시장은 바로 미국 시장이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사이드카는 레트로 느낌을 풍기며 스릴과 스피드가 아닌 유틸리티적 관점을 추구하는 라이더들에게 인기를 누렸다. 우랄은 1990년대에 해외로 판매 전략을 전환하면서 러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생산량의 60%를 미국으로 수출하였다. 1992년 11월 우랄은 100% 국유기업에서 경영진과 직원에 40%의 지분을 주고 민영화 바우처를 통해 38% 민영화 법인에 넘겼다. 나머지 22%만 정부가 보유했다. 2000년에 들어서서 회사의 주식은 투자자에게 재분배되면서 3명의 기업가에게 매각되었다. 

군수용에서 모토캠핑의 상징이 되기까지

우랄의 사이드카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사이드카 제조업체 중 하나가 되었다. 러시아 유일의 대용량 모터사이클 제조업체로써 전쟁 속에서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지금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거나 캠핑을 하는 모토캠핑의 용도로 변모되었다. 넉넉한 수납과, 동승자의 안정감 있는 승차는 우랄 사이드카의 최대 장점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와 비포장 도로에서도 운행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차량은, 우랄을 즐기는 현대인들에게는 눈밭 위에서도, 야산이나 들판의 오프로드를 주행하는 액티비티 차량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장르가 되었다. 결코 대중적일 순 없지만, 소수를 만족시키며 명맥을 길게 이어갈 만한 가치를 지닌 브랜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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