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에서 모터사이클로
MV Agusta는 시칠리아의 한 왕자에게서 그 계보를 추적할 수 있다. 그 왕자의 이름은 지오반니 아구스타 백작으로 이탈리아 항공 분야의 개척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1907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고 1923년 사마라테(Samarate) 마을에 항공기 공장을 설립하여 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항공사는 지금까지도 이탈리아의 주요 헬리콥터 제조업체이기도 하다. 1927년 그의 나이 48세에 사망하면서 그의 아내 조세피나와 자식들이 가업으로 항공산업을 물려받게 된다. 자녀들 중 첫째 아들인 도미니코 아구스타(Domenico Agusta) 백작은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항공 사업이 순탄하지 않아, 이에 사업을 다각화하면서도 그들의 엔진 기술과 노하우를 십 분 발휘할 수 있으면서 평화로운 채널로 전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터사이클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전쟁으로 불황을 겪는 시기에 간단하고 저렴하면서 효율적인 탈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한 몫 했다. 그렇게 하여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MV Agusta이다. “M”은 기술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mechanica”이고, “V”는 회사가 태어난 북부 이탈리아 도시인 “베르가라(Vergara)”를 의미한다.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더해 회사명을 만들었다.
최초의 MV Agusta의 모터사이클은 1945년 가을에 ‘Vespa 98’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 공개되었는데, 도미니코가 Vespa라는 이름이 이탈리아 스쿠터 회사인 피아지오에 의해 이미 등록된 모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하여 MV Agusta 첫 모델의 이름은 간단히 ‘MV 98’이라고 명명되었다.

50, 60년대의 붐… 163개의 월드 챔피언
아구스타 가문이 모터사이클을 생산하던 최초의 25년간은 그 누구도 MV 아구스타의 성공과 승리에 감히 범접할 수 없었다. 1952년부터 1973년까지 레이싱에서 MV의 기록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이 기간 동안 163개의 월드 챔피언쉽을 거머쥐었다. 아구스타 가문의 항공 사업 부문이 캐쉬 카우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는 반면, MV의 레이싱 모터사이클은 바로 그들의 열정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도미니코 아구스타의 가장 큰 능력 중 하나가 바로 훌륭한 레이싱 라이더들을 영입하는 것이었는데, 많은 레이서들이 MV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렸지만, 그 중에서도 역대 최고의 라이더는 바로 당시에 아마추어였던 지아코모 아구스티니(Giacomo Agustini)였다. 1966년부터 아구스티니는 연속으로 7번 월드 챔피어쉽 우승을 따내면서 일약 세계적인 수준의 스타 레이서로 인정받게 되었고, 이러한 결과가 바로 MV Agusta의 모터사이클을 탔기에 가능했다는 공식을 만들게 되면서 선수와 브랜드 모두 성공 가도를 달리는 계기가 되었다. 아구스티니는 MV Agusta와 함께 총 13번의 월드 챔피언쉽 우승을 하고 18개의 이탈리아 챔피언, 아일 오브 맨TT 경기에서 10번의 우승을 획득했다.
70, 80년대 자동차 확산에 몰락
1971년 도미니코 백작이 사망하고, 자동차의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리면서 자동차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자동차 시장의 성장은 모터사이클 시장의 급격한 둔화를 초래했고, 회사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아구스타의 항공 사업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지만, 백작의 사망으로 리더쉽을 상실한 회사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1975년 MV Agusta는 더 이상 모터사이클을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30년간 이어졌던 영광과 성공을 뒤로한 채 공장은 문을 닫게 되었고, MV 브랜드는 공식적인 종말을 선언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1년, 전설의 귀환
MV Agusta가 사라진 지 26년이 지나도 이탈리아인 특유의 정열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던 그들의 유산은 오랜 시간 잊혀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가문의 브랜드였던 MV를 역시나 이탈리아의 가문이면서도 모터사이클을 사랑하는 클라우디오 카스티글리오니(Claudio Castiglioni)와 그의 아들 지오반니 카스티글리오니(Giovanni Castiglioni)가 1991년 MV의 권리를 사들이면서 MV Agusta의 두 번째 오너가 되었고, MV Agusta는 다시금 부활하게 되었다.
“MV Agusta 브랜드를 가져오게 된 나의 궁극의 목표는 바로 MV가 보여주었던 기술과 레이싱 역사의 영광을 고스란히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나의 목표다.”라고 클라우디오는 말했었다. 잠들어있던 MV Agusta를 깨워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클라우디오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모터사이클 디자이너인 마시모 탐부리니(Massimo Tamburini)에게 시선을 건넸다.

전설적인 디자이너 마시모 탐부리니와의 만남, F4
비모타와 두카티의 천재 디자이너 탐부리니가 MV와 만나 또 하나의 걸작을 창조해냈으니, 지금까지도 완벽에 가까운 모터사이클 디자인이라고 회자 되는 4기통 750cc 엔진의 F4라는 모델이다. F4를 만들어내기 위해 클라우디오와 탐부리니는 모터사이클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길 원했고, 각자의 열정과 상호 존중의 기반에서 태어난 모델이다. 당시 300대가 처음 생산되고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왕과 같은 재력가들에게 팔리면서 즉시 매진되었다. F4는 최고의 현대 스포츠 모터사이클이었으며 MV Agusta가 탄생시킨 가장 오랜 시간 사랑받은 모델 중 하나였다. F4는 1998년 6월 26일부터 9월 20일까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모터사이클 예술 전시회에 오른 4개 모델 중 하나였다. 탐부리니와 클라우디오는 각각 2014년과 2011년에 사망했다.
모터사이클의 미학, 브루탈레
2011년 아버지인 클라우디오의 사망으로 아들인 지오반니가 MV를 이끌어 나갔다. 그는 피렐리와 포뮬러 원(F-1),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과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들과의 파트너쉽을 적극 모색하고 개발하면서, MV의 대표적인 네이키드 모델인 ‘브루탈레’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직렬 3기통 엔진에 역 회전식 크랭크 샤프트가 장착된 최고의 미들급 스포츠 바이크인 F3와 F4의 진화뿐 아니라 ‘드래그스터’와 ‘투리스모 벨로체’ 같은 다른 주목할만한 모델들을 만들어내면서 비평가들과 바이크 애호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새로운 로드맵을 제시한 CEO 티무르 사르다로프
2017년 MV는 룩셈부르크 기업인 콤사르 인베스트에 의해 새로운 자본이 투입되었으며, 카스티글리오니 가문의 파트너쉽 단계 이후 2019년에는 러시아의 석유 재벌 가문인 사르다로프의 ‘블랙 오션 그룹’의 설립자 티무르 사르다로프가 MV의 지분을 100프로 인수하면서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그는 업계 최고 수준의 경영진을 구성하여 MV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과 기술에 더하여 안전성과 고객 관리, 서비스 확장 및 제품군의 다양화에 중점을 두고 최첨단 디지털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모터사이클을 사랑하는 거대 자본가의 운영 아래 MV Agusta의 미래는 더는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모터사이클 아트’의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다가오는 6월 20일은 MV Agusta의 75주년으로 이탈리아 바레세에서 기념식이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