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의 내일의 풍속] '타이거 로드' 백두대간을 달리며 만난 분단의 그림자

M스토리 입력 2025.06.18 11:19 조회수 1,484 0 프린트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등줄기라고 불릴 만큼, 우리 땅의 지형과 생태, 그리고 문화를 잇는 중요한 축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이 산줄기는 단순한 산맥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과 얽히고설킨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강줄기가 갈라지고, 산맥에 따라 기후와 생태, 문화가 나뉘었듯, 이 산줄기를 따라가는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한반도’를 관통하는 시간 여행처럼 느껴진다.

2025년 5월, 지난달에 개봉한 영화 〈타이거 로드〉는 이 백두대간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백두대간을 굳이 영어로 옮기면 ‘Baekdudaegan’이 되겠지만, 영화는 이를 ‘타이거 로드’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른다. 한국을 상징하는 호랑이와 길(Road)을 결합해 만든 이 표현은, 산맥을 단순한 지형이 아닌 ‘이야기가 흐르는 길’로 해석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다큐멘터리는 세 명의 인물이 이륜차를 타고 백두대간을 따라 이동하며 각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탈북민, 재일교포, 해외 입양인, 우크라이나 출신의 이주민 등 모두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좀 낯설었다. 인터뷰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거나 길 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형식도 아니고, 인물 세 명이 백두대간 비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지역과의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다 보니, 산과 사람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건지 감이 안 잡혔다. 더군다나 강원도의 어느 산속 장면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서울 연희동에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 식으로 흐름이 이어지다 보니, 구성이 다소 억지스럽고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반부엔 세 인물의 대화도 꽤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만약 한국에 전쟁이 난다면 어떡할 거야?”, “근데 누나, 전쟁 나면 누나도 입대해야 해요.” 이런 식의 대화가 뜬금없이 튀어나오는데, 처음엔 맥락을 몰라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여러 장면을 지나 영화가 끝날 무렵, 이 다큐멘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천천히, 그리고 묵직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타이거 로드〉는 결국, 우리가 ‘남의 일’이라고 느끼기 쉬운 전쟁과 분단의 현실을,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전쟁은 단순히 정치적·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가족을 잃게 하고,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아주 구체적인 고통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륜차라는 이동수단 역시 단순한 상징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터뷰이들 대부분은 원하지 않았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다.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바이크는, 그들의 현실과 대조되는 ‘자유의 상징’으로 영화 속에 자리 잡는다. 그래서 ‘타이거 로드’라는 제목이 단순히 백두대간의 길이 아니라, 뿌리를 떠나오고도 그 뿌리를 잊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정을 의미한다는 걸 마지막엔 깨닫게 된다.

〈타이거 로드〉는 아주 화려하거나 정교한 연출로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탈북민, 입양인, 이주민 등 분단과 전쟁의 그림자를 지닌 사람들의 목소리를 차분히 담아낸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충분히 묵직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전쟁과 분단이 그렇게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아직도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실은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분단된 이후였던 지금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분단의 미래에 대해서 더 고민하고, 가까운 이웃들의 이야기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형주
M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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