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봉선화 노을

M스토리 입력 2024.12.16 15:14 조회수 1,010 0 프린트
Photo by blayne spires on Unsplash
 
 











화창한 가을날, 주중에 낀 공휴일이라 집에 가지 않고 혼자 무심히 선친의 고향마을을 찾았다. 아파트를 나설 때는 자전거로 그저 운동 삼아 이웃마을 저수지나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저수지를 지나 그리로 페달을 밟았던 것이다. 한 세기 전이고 선친이 소싯적에 떠난 곳이라 나하고는 이렇다 할 추억이 없는데도 이끌린 것은 DNA가 그렇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때 족친 집성촌이었던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빨간기와집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햇살에 반짝인다. 게다가 마침 지난봄에 누님들과 지나다 들여다보았을 때는 안계시던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하여 자전거를 세우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 신분을 밝히고 인사를 드렸더니 마당에 고추를 널어 말리다말고 환하게 웃으신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같은 종씨(문패가 할머니 함자였음)라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항렬(行列)을 따져보니 나에게 할머니뻘이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었는데 아들 둘은 창원에서 살고 있고 딸 둘은 서울과 여주에서 행복하게 잘 산다고 했다. 거리가 멀고 일이 바쁜 관계로 가족이 자주 모이지 못하지만 <가을동창회> 때만은 빠짐없이 모인다고 했다. 이유인즉 연세가 83세인 할머니와 아들과 딸들 모두가 인근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라 그렇다고 하여 함께 웃었다.

동창생은 아니지만 나도 가끔 찾아오겠다며 대문을 나서는데 가을인데도 담 밑에 소담스럽게 핀 봉선화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하여 내가 “봉선화가 많이 피었네요. 보기 좋습니다.”라고 하자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며 빙긋이 미소를 지으신다. 그 미소 속에 은근히 어떤 애틋한 느낌이 묻어났다.

화창한 하늘과 봉선화꽃밭을 배경으로 할머니와 함께 셀카를 찍고 헤어졌다.

아파트에 돌아와 휴대폰 갤러리를 열어보았더니 할머니와 내 얼굴만 덩그러니 나오고 배경인 봉선화는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소 띤 할머니와 내 얼굴이 마치 방금 전에 핀 봉선화 두 송이 같아 혼자 웃었다.
봉선화는 봉숭아라 불리기도 하는데 꽃말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 한다. 그 말은 역설적으로 ‘건드려 달라’는 것으로 들린다. 건드려서 터져야 씨앗을 퍼트릴 수 있기에… 그렇듯이 건드리면 터지는 속성의 그 꽃을 이야기하거나 노래하는 사람은 또 그로인해 한방 빵 터져 대박 나는 감동을 맛보게 되지 않나싶다. <봉선화 연정>이란 노래가 그랬다.

<손대면 똑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라~>로 시작하는 그 노래는 23년간이나 무명으로 지내던 가수 현철(향년 82세)을 일약 가요대상 수상자로 스타덤에 올려놓은 노래였던 것이다.

그 이전에 홍난파가 작곡한 <봉선화>역시 일제 강점기 때 우리 국민의 애환을 달래주고 가슴 속 응어리를 말끔히 터뜨려준 노래였던 것이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김형준이 작사한 그 노래 가사 가운데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라는 대목은 <손톱 꽃물들이기>를 말하는 것 같다. 봉선화 꽃물들이기는 우리네 여인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미풍 가운데 하나로 지금은 ‘메니큐어’와 ‘네일아트’, ‘네일스티커’ 등 다양한 손톱 미용이 성행해서 그 풍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는 봉선화가 피면 여자들은 으레 손톱에 꽃물들이기를 즐겨 하였었다. 하여 학교 교정뿐 아니라 집집마다 꽃밭에다 봉선화를 심었고 화장대 서랍에는 누나들이 꽃물 들이는데 쓰던 백반이 보관되어 있었다.

우리어머니도 소녀시절에는 손톱에 곱게 봉선화꽃물을 들이셨다 했다. 하여 꽃밭에다 매년 봉선화를 심으셨고 봄부터 피는 그 꽃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작은 오빠가 봉선화꽃잎을 돌로 찧어서 무명실로 손톱을 꽁꽁 묶어주었던 동화 같은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런데 그 오빠가 불행하게도 어느 날 강가에 물놀이를 나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고 가슴아파하셨다.

그 이후, 어머니는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들이지 않았다며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셨다. 오빠를 기다리듯이…
어떤 꽃이든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게 하는 사연이 있을 것이다. 장미든, 매화나 국화든… 그런데 봉선화는 특히 그런 것 같다.

차제에 나도 봉선화 같은 모습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가, 마음속을 꼬누어 본다.

아울러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으려나싶어 한 꼭지 소망도 그려본다.
M스토리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