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엉이’와 ‘올빼미’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아세요?” 하루는 아들이 물었다.
나와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그러는데 부엉이는 머리에 ㅂ자처럼 귀가 달려있어 ‘부엉이’고 올빼미는 머리에 ㅇ자처럼 귀가 붙어있어 ‘올빼미’래요.”
아내와 나는 아들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이웃에 사는 K선생이 도다리는 두 눈이 오른쪽에 있어서 세 글자인 ‘도다리’고 광어는 왼쪽에 있어서 두 글자인 ‘광어’라 하여 웃었던 적도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이름이 있다. 무명씨 혹은 무명초도 사실은 다 이름이 있다. 그런데 누구나 알다시피 이름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알게 모르게 사연이나 유래가 있게 마련이다.
<으아리>란 꽃이 있다. 하얀 십자 모양의 야생화다.
옛날 중국 상주란 곳에 수족이 마비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전국의 명의를 다 찾아다녀도 고치지 못했다한다. 절망한 가족들은 혹시나 하고 그를 고쳐줄 명의를 만날까 싶어 큰길가에 데려다놓았는데 마침 신라에서 유학 온 스님이 그곳을 지나다 그를 보게 되었다. 스님은 “이 병에는 한 가지 약밖에 없다오.”하고는 온 산을 헤매어 마침내 ‘으아리’란 꽃을 찾아내어 병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그 설화처럼 꽃말이 <고결>, <아름다운 마음>인 그 꽃이 북아메리카에 20종, 동아시아에는 50종, 한국에도 38종이나 있다고 하는데, 운 좋게 여름 어느 날 휴일에 아내와 남한산성 둘레길을 걷다가 그 꽃을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위례신도시 개발지역 빈터에 핀 <개망초>란 꽃도 보았다. 여름 내내 온 들판에 팝콘처럼 흐드러지게 피는 야생화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그 꽃은 우리나라 개화기(19세기) 때 들어온 외래종으로 <화해>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철도를 따라 퍼졌고, 6.25 전쟁 때 미국에서 보내온 원조물자에 붙어 들어와 전국적으로 퍼졌다는 꽃이다.
개망초란 왠지 서글픈 이름의 그 꽃은 이름과는 달리 보면 볼수록 서양등골나물과 들국화처럼 앙증맞고 정겹다. 하지만 농작물보다 더 빨리 자라나 김매기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하여 부득불 그 꽃이 아깝고 안쓰럽지만 매년 낫으로 베어내 텃밭농작물들이 잘 자라도록 정돈을 하곤 한다.
유래뿐 아니라 나라마다 이름 짓는 법칙이 있는데 아메리카 인디언은 정형적이면서도 화사하다.
‘용감한 바람의 기상’ 이나 ‘푸른 늑대와 함께 춤을’ 또는 ‘백색 태양의 악마’ 등 언뜻 영화 제목 같은 이름이지만 사실은 태어난 연도의 뒷자리 수와 태어난 달, 태어난 날에 정해진 말과 수식어를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가령 ‘용감한 바람의 기상’이란 이름은 태어난 년도가 2017년처럼 끝자리가 ***7년생의 수식어 ‘용감한’에 12월의 정형 어 ‘바람’ 그리고 2일의 ‘∼의 기상’을 조합한 이름이다. ‘푸른 늑대와 함께 춤을’은 ***1년생의 수식어 ‘푸른’과 1월의 정형 어 ‘늑대’ 그리고 1일의 ‘∼와(과) 함께 춤을’을 조합한 이름이다. 향후 2025년 1월1일에 태어날 아이는 모두 ‘하얀 늑대와 함께 춤을’이 될 것이다.
그렇듯이 인터넷에서 검색한 인디언식 내 이름은 ‘용감한 달빛은 맨 날 잠잔다’인데 음력생일로 하면 ‘용감한 말의 고향’이다.
우리는 인디언보다 좀 더 다양하게 이름을 짓는 것 같다.
집안 마다 돌림자를 써서 세대구분을 하고 있고 조선시대에는 자호(字號)를 별도로 지었는가 하면 특별히 현몽(現夢)하여 짓거나 스님이나 작명가에게 의뢰하여 성명학에 따라 짓기도 한 것을 보면 그만큼 이름에다 인간적 기대와 소망을 담으려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남존여비(男尊女卑) 시절에 여자이름은 관행을 무시하고 사소하게 짓는 경우가 많았다. 딸은 그만 낳고 아들 낳으라고 ‘말자’, ‘끝순’이라 지었는가하면 화장실에서 낳았다고 ‘분녀’, 피난길에 낳았다고 ‘피란’이라고, 시절과 상황에 따라 지은 이름도 많다. 그런가하면 실수 아닌 실수랄까, 간혹 사무착오로 인해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호적상 이름이 다른 경우도 있다. 바로 우리 어머니 이름이 그랬다.
어머니의 이름은 <오씨>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일찍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슬하에 12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질병과 사고로 모두 일찍이 여의어서, 외할머니는 매일 새벽마다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삼신할머니께 ‘건강한 아이를 점지해주시옵소서’ 하고 빌었다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꿈속에 삼신할머니가 나타나 달님이 품고 있는 계수나무가지를 꺾어주어 어머니를 낳았고 <계순>이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다. 농사일이 한창 바쁜 때라 마침 면사무소에 나가는 이장에게 호적등재를 부탁했는데 안타깝게도 이장은 개울을 건너다 그만 깜박 어머니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런데다 면서기도 그날따라 업무에 바빠 정신이 없었던지 오씨란 성씨만 이장에게 전해 듣고 대충 호적을 정리해버렸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는 <오씨>와 <오계순> 두 이름으로 보름달 속 계수나무처럼 살면서 토끼 같은 우리 오남매 공부시켜 시집·장가보내고, 90세까지 사셨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모든 이름은 사람이 존재할 때까지만 이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안만 나에게 존재할 것이다.
낯익은 얼굴들이 티 없이 맑은 가을하늘에 구름처럼 그려진다. 어떤 얼굴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가을바람에 날아간 낙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