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같은 도로를 공유하는 모터사이클(스쿠터 포함-이하 바이크)의 전기화는 다소, 아니 많이 늦다. 이제 시작 단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벼운 스펙의 소형 전기이륜차가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보급되고 있지만 근거리 이동 및 상용 시장이 주된 타겟이라 승용 및 레저로 즐기기에는 아직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무리가 있다.
그 와중에 BMW모토라드가 프리미엄 전기이륜차 CE04를 선보였다. 사실 출시일은 2021년이지만 2023년인 현재에도 CE04의 사양에 근접하는 시판용 고사양 전기이륜차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최신 모델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BMW모토라드가 CE02를 출시했지만 라이트한 스펙에 국내에는 정식 출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제외했다.)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이동 수단이라 하면 미래지향적이고 최첨단이라는 느낌이 든다. 차세대, 친환경 동력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기차는 이러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세일링 포인트로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전기차들의 디자인 및 연관된 여러 기능이 대부분 깔끔하고 수려하다.
하지만 아직 전기를 동력으로 쓰는 시판 바이크들은 깔끔한 면은 있지만 소형 스쿠터 위주이다 보니 수려함이나 고유의 존재감, 아이덴티티가 부족하고, 무엇보다 주행거리가 짧은 것이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었다. 그런데 CE04는 이런 부분들을 상당히 해소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는 미래 전기이륜차의 이미지. 그 이미지와 상당히 부합하는 디자인과 기능들로 출시된 것이다.
우선 디자인을 보자. SF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나올듯한 선과 곡선이 잘 어우러진 쉐이핑과 깔끔하고 산뜻한 하이그로시 느낌의 외장의 질감. 그리고 낮게 쭉 뻗은 차체는 최신 전기차의 엣지있는 디자인 또는 미래지향적 슈퍼카 이미지와 닮았다.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리는 영역이지만 길에서 마주치면 한 번씩 돌아보게 되는, 하이엔드 전기이륜차의 일반적이 이미지를 무난하게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하이엔드 전기이륜차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스마트키와 함께 와이드형 태블릿이 장착된 듯한 넓은 LCD 계기반과 유려한 그래픽의 UI가 첨단전자기기의 느낌을 더욱 강조하는데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키온했을 때 계기반 부팅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계기반 화면이 켜지기 전에도 주행모드로 스쿠터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빨리 출발해야 하는 급박한 출퇴근 등의 상황에서 라이더에게 불필요한 짜증을 주지 않는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운동성능은 “역시 전기, 연시 하이엔드, 역시 BMW”라는 작은 감탄이 나온다. 정지상태에서 50km/h 까지의 가속력은 느낌상은 여느 최신형 리터급 레플리카에 못지않다. 배기음 대신 의도적으로 확장시킨 우주선 작동하는 듯한 작동음은 최신의 새로운 탈 것을 운행하는 느낌을 준다. 배기음이 없어져서 밋밋하다고 생각하는 라이더들도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서 만족감을 주는 작동음과 짜릿한 가속감이 배기음의 아쉬움을 상당부분 커버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높은 가속 성능을 의도한 것이지 매우 긴 휠베이스가 가속감의 안정감을 더해줘 부담없이, 기분 좋게 스로틀을 쥐어짤 수 있게 해준다.
제동성도 합격점이다. 이륜차에서 ABS 도입의 선두주자였던 BMW 인지라 최신세대의 ABS가 적용된 브레이크는 안정성과 함께 제동력도 향상됐다. 이륜차 ABS는 프론트 슬립 방지에 중점을 두다 보니 이른 ABS 개입으로 인해 제동거리가 예상보다 많이 늘어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런데 CE04는 BMW의 ABS 노하우를 잘 이어받아서 프론트 락업으로 인한 슬립 직전까지 ABS 개입을 늦게 하여 제동거리를 줄였다. 물론 락업으로 전도할 정도까지는 절대 아니다. 이렇게 안전과 제동성능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았다.
선회 및 저속에서의 밸런스는 차체의 특징을 알고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좋다. 무거운 배터리를 바닥에 깔 듯이 길게 배치해 직진 안정성이 좋다. 또한 휠 베이스가 긴데도 불구하고 선회 안정성이 우수하다. 다만 저중심 지향 설계로 40km/h 이하의 저속에서 기울임은 빠르고 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유턴이나 지하주차장 등 저속 운행 때에는 이를 잘 감안해서 미리 안쪽 디딤발로 바이크 지탱할 준비를 하는 등의 맞춤 운행법을 몸에 익히는 것이 좋다. 단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잘 사용하면 저속 선회력이 향상되고 익숙해지면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빨리 적응해야 하는 특징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고속은 계기반상 128km/h에서 멈춘다. 모드를 바꾸어도 같은 것을 보면 배터리 성능이나 안전 관련 이유로 제한을 걸어둔 것 같다. 아쉽긴 하지만 전기이륜차는 가속성능이나 주 사용환경, 그리고 아직 개선될 여지가 많은 장르임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급가감속을 자주하고, 풀스로틀로 과격한 주행을 했을 때 약 90km 안팎이며, 일상 주행 시에는 107km 정도가 나왔다. 기존의 소형 전기이륜차에 비하면 좋은 편이지만 장거리 보다는 도심주행 중심으로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충전은 220V 가정용 전원을 사용하는 충전기를 기본으로 제공하며, 전기차용 완속 충전기를 사용할 수 있어 충전 인프라는 의외로 좋은 편이다.
주행모드는 총 4가지인데 초중반 가속을 제외하면 최고속은 비슷했다. 또한 회생제동 기능으로 인해 감속 시 백 토크가 많이 걸려서 어색할 수 있다. 회생제동이 불편하다면 레인 모드가 회생제동이 가장 적으므로 일반 스쿠터 느낌으로 사용하고 싶다면 레인 모드를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수납공간은 측변 버튼을 눌러서 열 수 있는데 하프 페이스 헬멧까지는 무난하다. 풀 페이스는 어렵지만 수납 공간 자체는 작지 않아서 라이딩 중의 웬만한 개인용품을 편하게 보관할 수 있다. 시트는 메모리 시트로 쿠션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하드한 편이라 30분 이상 주행하면 엉덩이가 약간 불편했다.
편의기능 중에 아주 좋았던 것은 후진 기능과 사이드 스탠드를 내렸을 때 자동으로 파킹 기능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둘 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생각보다 시트고가 높고 무겁기에 후진 기능이 편리했고, 언덕길에서 정차가 덕분에 한결 쉬워졌다.
전기차 시대의 도래에 따라 이륜차도 전기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BMW CE04는 전기이륜차의 근미래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1800만원대로 스쿠터 치고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금액과 100km 남짓한 배터리 주행거리는 분명 제약사항이 있지만, 현존하는 전기이륜차 중에 그 외적으로, 디자인적으로 분명한 매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동일 사양에 주행거리만 200km 이상 늘어난다면 1800만원의 가격 이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평점은 5점 만점에 4.2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