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 살던 내가 전라남도 순천으로 이사 온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시대에 혼잡함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이사 온 2020년도 가을부터 바이크를 타고 사람이 없는 시골길들을 유유자적 달리곤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규제가 많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축제의 시대가 다시 열렸다. 이왕 전라도에 살고 있는 김에 일정이 허락하는 대로 바이크를 타고 여러 축제에 참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작은 광양부터 구례까지 이어지는 매화 축제였으나, 엄청난 차량 행렬을 보고는 초입부터 포기하고 화개장터에서 국수를 사 먹고 돌아왔다. 하지만 봄은 꽃의 계절만은 아니다. 바로 전주 국제 영화제의 계절이다. 4월 27일부터 5월 7일까지 열리는 전주 국제 영화제(이하:전국제)는 올해로 24회를 맞이하는 영화제로, 상영되는 일부 작품만 경쟁작인 부분 경쟁 시스템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작품이 수상 되는지보다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감상하고, 토론하고, 즐기는 축제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타 영화제에 비해 실험적인 작품이 상영되는 경향이 있어서 평소 큰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영화 혹은 OTT에서 크게 홍보하는 콘텐츠와 상반되는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어린이날을 전후로 비 소식이 있었지만 비를 피해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 바이크를 타고 전국제에 다녀왔다.


영화제가 오랜만이어서 영화제만의 암묵적 에티켓을 잊고 있었다. 우선 전국제의 모든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다 끝나고 나서 불이 켜진다. 그래서 어두컴컴한 곳에서 급히 상영관을 나오다가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당신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엔딩 크레딧을 보고 있는 관객들을 위해서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또 영화를 제작한 사람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의미로 박수를 치는 것도 일반적이다.
마지막 영화를 보고 나오니 벌써 6시가 되어간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복귀하기 위해 서둘러 보호대를 입고 다시 순천으로 향했다. 따뜻한 봄 날씨 덕에 라이딩자켓 하나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햇빛이 스러져 가는 시간대의 라이딩은 아직 손이 시리다. 방한 토시가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가끔은 이렇게 라이딩이 목적이 아닌 목적지가 있는 여행도 좋다.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영화를 보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도 해본다. 방금 봤던 영화의 몇몇 장면들을 회상하며 노을 지는 국도를 달려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가을에는 부산 영화제를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