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베트남 여행기 (4) 역사속의 도시 판랑-탑참

M스토리 입력 2022.12.30 11:22 조회수 3,076 0 프린트
메인 타워와 비아 탈콜 왕비를 위한 타워

판랑탑참의 베트남어 정식 표기는 판랑-탑참(Phan Rang–Tháp Chàm)으로 판랑과 탑참이 합쳐진 말이라는 것을 표기에서부터 짐작 할 수 있다. 

판랑(Phan Rang)은 참파 왕국의 수도인 판두랑가에서 온 말이다. 참파 왕국은 2세기부터 현재의 베트남 중남부 지역에 존재했던 참족의 왕국이다. 하지만 15세기부터 계속된 베트남의 공격으로 참파는 19세기에 멸망했다. 1917년, 베트남 정부는 지금의 판랑땅에 판랑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판랑에 비행장을 세웠고 이후 프랑스군이 그 비행장을 사용하였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베트남 공화국 기간 판랑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공군의 판랑 공군기지로 사용되었다. 판랑은 동쪽의 판랑과 서쪽의 탑참으로  나뉘었고, 이 두 곳은 1992년에 다시 결합되어 지금의 판랑-탑참이 되었다.  

판랑-탑참을 줄여서 흔히 판랑이라고 부르는데, 그것 자체가 판두랑가를 기리고 기억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이 도시를 여전히 판두랑가에서 따온 이름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참파 왕국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판랑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비록 지금은 참파 왕국이 멸망하여 다른 나라의 다른 도시가 되어버렸지만 몇백 년 전 까지만 해도, 천년이 넘도록 그들이 이곳에 있었더라고, 저 탑은 그들의 탑이었더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탑참(Tháp Chàm)은 어떤 뜻일까? 공교롭게도 베트남어인 탑(Tháp)은 한국어로도 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참은 참파 왕국의 주인이었던 참(Chàm)족을 가리킨다. 합쳐서 번역하면 참족의 탑이 된다. 그 참족의 탑이 바로 참파 왕국의 유산이자 판랑-탑참의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인 뽀끌롱 자라이(Poklong Garai)이다. 
판랑-탑참의 뽀끌롱 자라이

판랑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단연 바로 그 탑, 뽀끌롱 자라이 (Poklong Garai)였다. 뽀끌롱 자라이는 판랑-탑참의 타워라고도 하고, 사원이라고도 한다. 숙소 주인인 민덕이 첫날 판랑에 대해 설명했을 때도 빠지지 않았고, 판랑에 오기 전에 인터넷 서치를 했을 때도 정보가 가장 많던 곳이었다. 베트남은 국교가 없지만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어떻게 힌두 사원이 베트남에 있나, 하면 처음에 설명했다시피 뽀끌롱 자라이는 지금의 판랑이 판두랑가였을때 세워진 곳이기 때문이다.

전날, 새로운 잠자리때문인지 늦게 잠들었지만 숙소 주인인 민덕이 뽀끌롱 자라이에 가려면 일출 시각에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기에 아침 6시에 숙소를 나섰다. 해변 쪽인 숙소에서 뽀끌롱 자라이까지는 약 20km 떨어져 있어서 제법 거리가 되었다. 판랑의 택시 가격은 매우 높은 편이기 때문에 바이크를 빌리는 것이 좋다. 숙소를 나왔을 때부터 일출이 시작되어서 새벽의 어스름한 어둠이 반쯤 걷혔다. 포끌롱 자라이에 도착하니 완연한 아침이 되어 일출에 맞추어 나온 의미가 있었나 싶었다. 바이크를 타고 주차장에 들어서니 주차 요원처럼 보이시는 직원분께서 분필로 바이크에 번호를 적고, 그 번호와 같은 주차표를 내미셨다. 주차장에 아무도 없었던 걸로 미루어 보아 아마 첫 손님이었나보다.
 

티켓가격은 여느 동남아의 도시처럼 외국인 전용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베트남 현지인보다 30% 비싼 가격임에도 뽀클롱 자라이의 입장 티켓은 단돈 한화로 1000원. 문화유산치고는 합리적인 가격이다. 뽀끌롱 자라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어서 입구에서부터 돌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해가 포클롱 자라이를 직방으로 비추고 주변에 그늘이 없어서 완전 땡볕이다. 별로 멀지도 않은데 숨이 가빠온다. 쉬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웅장한 돌탑들이 위풍당당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뽀끌롱 자라이로 올라가는 돌계단

뽀끌롱 자라이는 힌두교 사원으로 13세기에서 14세기초에 건설되었다. 현재 3개의 탑이 남아있는데, 8.56m의 게이트 타워와 9.31m의 불의 타워 그리고 20.5m의 메인 타워로 이루어져 있다. 뽀끌롱 자라이는 1151년부터 1205년까지 통치했다고 알려진 참족의 왕, 뽀끌롱 자라이 왕을 섬기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그래서 메인 타워는 바로 그 뽀끌롱 자라이 왕을 모시는 곳이고 메인 타워 뒤에 있는 작은 타워는 그의 아내인 비아 탈콜 왕비를 섬기는 곳이다. 

탑이 있는곳까지 올라가니 예상대로 아무도 없고 그저 오래된 돌과 나뿐이었다. 탑을 지나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내려다 보다가 다시 세개의 탑이 모두 보이는 중앙으로 돌아와 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베트남의 사원은 대부분 불교 사원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등 동아시에서 볼 수 있는 절과 비슷하다. 하지만 붉은색을 띄는 이 탑들은 베트남의 다른 사원들과는 완전히 달라보였다. 뽀끌롱 자라이는 베트남 절보다는 오히려 앙코르와트와 비슷해 보였다. 둘이 무언가 공통점이 있는걸까? 궁금증에 핸드폰을 꺼내들어 검색해보니 앙코르 와트도 힌두 사원이다. 뽀끌롱 자라이가 건설되었던 시기는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와트가 건설되고 있던 시기와 겹친다. 1177년 참파왕국의 공격으로 크메르 왕이 죽고 수도가 파괴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참파 왕국과 크메르 제국은 라이벌이었지만 동시에 교류가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위치지 않았을까?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남겨진 것일지도 모른다. 참파 왕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판랑-탑참에 와서 뽀끌롱 자라이를 바라보며 1600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끝내 베트남에 패배한 그 왕국을 알아간다. 여전히 굳건히 서 있는 이 탑이 건네는 말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평소 역사는 소수의 중요한 사람들만 기록되고 그래서 평범한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몸으로 직접 느끼고 실체를 눈앞에서 마주하니 시간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탑이 왕과 왕비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은 글자로 남겨진 역사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왕과 왕비보다 이 타워를 만든 사람들을 생각한다. 돌을 캐고, 다듬고, 옮기고, 쌓았던 사람들은 결국 나처럼 평범한 노동자였을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점점 더 강해지는 햇빛을 견디기 힘들어 돌계단을 내려오는데 옆의 경사로에서 관광객들을 여럿 태운 카트가 엔진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왕을 위해 지어진 건물에서 오래된 관광명소가 되어도 과거의 노동 현장은 여전히 현대의 노동 현장이구나. 나는 머지않아 다시 이곳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햇빛에 달궈지고 있는 바이크를 향해 걸어갔다.
  by. 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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