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다. 인도란 나라는 무엇인가를 줄 것이란 기대. 현장 법사나 혜초 같은 승려들은 경전을 얻기 위해, 바스코 다 가마나 콜럼버스 같은 상인들은 황금을 얻기 위해 인도로 떠났다. 인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콜럼버스는 결국 인도를 못 찾고 아메리카를 찾았지만 고생 끝에 인도를 찾은 이들은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었음은 우리가 역사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나라
1,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인들이 먹고 살 만해지자 이번에는 부와 명성이 아닌 다른 것을 찾아 인도로 가는 발길이 이어졌다. 남부러울 게 없었던 영국의 팝 그룹 ‘비틀즈’를 필두로 풍요로운 삶에 지친 서구인들이 또 인도를 찾았다. 옆 나라 일본만 해도 <인도방랑(1972)>을 쓴 후지와라 신야 같은 젊은이들이 달랑 칫솔 하나만 들고 인도를 찾았다.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인도를 찾는다. 이제 인도를 찾는 사람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도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돌아와서 뭔가 “삶의 교훈을 얻고 왔노라!” 인도에서의 일화들을 군대 다녀온 듯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단편적인 무용담들을 듣고, 인도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인도에 대해 막연한 신비주의를 갖게 된다. 류시화 시인이나 한비야 작가의 글들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지금에도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포장되는 인도의 모습은 여전히 신비주의다. 그러나 이제 인도여행을 하면 고생만 하고 온다는 생각은 편견이요. 고생 끝에 깨달음이 온다는 기대 또한 버리는 게 좋다.
우리나라에서 인도로 떠나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기까지 모든 이동편과 숙박편이 다 인터넷으로 예약이 되고, 아주 시골이 아니고서는 와이파이도 잘 터지기에 인도 맛집까지 검색해 찾아갈 수 있는 시대다. 도시의 사람들은 류시화 시인이 만났던 거지처럼 심금을 울리는 우문현답을 던지지 않는다. 이제 정말 책에서 읽었던 인도다운 인도를 만나보려면, 그리고 뭔가 ‘인도다운’ 깨달음을 얻으려면 정말 지역을 잘 골라서 여행 계획을 짜야 한다.
자이살메르사막
마지막 남은 진짜 인도, 라자스탄
21세기에도 인도다운 인도를 만나고 싶다면 북서쪽으로 가 보자. 29개의 주와 7개의 직할지로 이뤄진 드넓은 인도에서 가장 넓은 주인 라자스탄.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자스탄 주는 우리가 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인도인들의 이미지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마지막 보고다.
중동 쪽에서 건너온 아리아 계열의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라자스탄 주는 영토 대부분이 척박한 사막이라 예로부터 유목 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기골장대하고 호전적인 무사들의 땅이라 인도를 통일한 무굴제국이 마지막까지 정복에 가장 애를 먹었던 곳이 이 라자스탄이었다. 라지푸트(무사)의 후예라는 당당한 자부심을 갖고 사는 터에 이 지역은 인근 구자라트 주와 더불어 인도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다.
라자스탄 전통복장을 입은 노인
덕분에 옷차림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인들의 모습에 가장 가깝다. 커다란 붉은색 터번에 근사한 카이젤 수염을 기르고, 새하얀 셔츠와 바지에 알라딘이 신었을 것 같은 뾰족한 가죽구두를 신은 인도인의 모습은 지금도 고수되고 있는 라자스탄 주의 전통복장이다. 또한 라자스탄 주는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에서 “라자스탄을 떠나는 당신의 수첩에는 연락처가 빼곡할 것이다”라고 기술할 정도로 여행자에 대한 호감과 친절이 강한 지역이다. 물론 인도 전역에 넘치는 사기꾼이야 왜 없겠냐마는 라자스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인도인들에 비해 유독 친절하고 정이 넘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이살메르 사막
라자스탄 주는 인도여행의 관문이 되는 수도 델리에서 접근성이 좋다. 심지어 이제는 고속도로까지 생긴 인도에서 가장 잘 닦여 있는 도로가 라자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자이푸르와 델리를 잇는 구간이다. 자이푸르로부터 시작해 조드푸르, 우다이푸르까지 라자스탄을 대표하는 3대 도시를 비롯, 낙타를 타고 사막 사파리를 할 수 있는 황금도시 자이살메르 등 라자스탄 주만 다 둘러보려 해도 보름 정도가 걸린다.
블루시티 조드푸르
온 건물이 파랗게 칠해진 블루시티 조드푸르
라자스탄 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한 곳 꼽으라면 조드푸르다. 그리고 인도를 처음 가는 사람에게 꼭 한곳만 가보라고 추천한다면 추천할 곳 또한 조드푸르다. 라자스탄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조드푸르는 척박한 타르사막의 한 가운데에 세워진 유목민의 왕국이다. ‘마르와르(Marwar)’라고 불린 이 강성한 왕조의 15대 왕 라오 조다는 1459년, 요새와도 같은 메헤랑가르성을 건설했고 이 성을 중심으로 지금의 조드푸르가 생겼다.
메헤랑가르 성
헐리우드 영화인 <다크 나이트>,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비롯해 한국영화인 <김종욱 찾기>에까지 많은 영화에 등장한 조드푸르가 유명한 것은 온건물이 파랗게 칠해진 올드 시티 덕분이다.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신은 몸이 파란데 옛날에는 시바신을 모시는 브라만들만이 집에 파란색을 칠할 수 있었다고. 바위산에 지어진 메헤랑가르 성에 올라 이 블루시티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파란색 물결이 춤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도를 찾은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장 좋았던 곳으로 이 블루시티를 꼽는 이유다.
신으로 분장한 아이
조드푸르와 연계해서 찾으면 좋은 곳은 차로 사막을 끝없이 달려 5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자이살메르다. 자이살메르는 황토빛 사암으로 지어진 진정한 사막 도시. 해가 뜰 때나 질 때 도시의 성과 건물이 황금빛으로 빛난다고 해서 골든 시티라고도 불린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자이살메르 성도 매력적이지만 저렴한 비용에 사막 사파리도 즐길 수 있다. 21세기에도 색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인도 라자스탄주에 꼭 가보도록 하자. 참고로 라자스탄주를 비롯한 인도 여행 최적기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11~2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