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다보니 출장을 자주 다녀야 했다. 따라서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지만 다년간 전국을 두루 돌아보며 각 고장의 특색을 살필 수 있었다.
해산물이 많이 나는 어느 고장은 마치 곰삭은 젓국 맛이라고나 할까, 음식 맛만큼이나 인심도 구수하고 좋았다. 또 어떤 지역은 지날 때마다 마치 바다의 파도 같은 역동적인 기상이랄까 그런 힘찬 기운이 느껴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깨춤이 절로 났다.
그런가하면 어느 지역은 오래된 고택(古宅) 툇마루에 앉아 녹차를 마시는 듯 담담한 멋이 있어 좋았고 또 어디는 원두막에서 수박과 참외를 깎아 먹거나 외갓집에 다니러 가서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장대로 툭툭 따는 것 같은 한적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바라볼수록 가슴이 탁 트이는 동해바다, 하염없이 낙조를 밟으며 걷던 서해 갯벌, 다도해 남해는 또 얼마나 수평선 위에 내 조급한 마음을 섬처럼 평안하게 앉혀주었던가!
진달래와 들국화, 개망초…… 어디든 향기롭고 정겨운 들길이 있어 좋았는데 그 다정한 풍경들이 모두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싶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감격적이었던 곳은 겨울철인데도 창문을 열어놓고 사는 남해 바닷가의 어느 따스한 마을이었다. 지금은 매연과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했다지만 당시만 해도 내 고향 춘천은 겨울에 보통 영하 20도를 오르내려 집집마다 이중창을 달아야했고 창문마다 비닐이나 모직커튼까지 두껍게 쳐야 겨우 겨울을 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따스한 마을에서 살고 싶어 몇 번인가 그 마을을 다시 찾아갔고 아예 고향을 바꿀까도 생각해봤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접게 된 것은 남도의 어느 노시인(서정춘)의 시 한 편 때문이었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전국적으로 내 고향 춘천을 ‘막국수와 닭갈비 그리고 호수가 있어 좋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것 같다. 막국수와 닭갈비라는 별미와 수심 깊은 호수의 고요하고 한가로움이 그들의 여행을 의미 있고 즐겁게 하는 것이리라. 내가 어느 출장지에서 절경을 감상하며 별미를 배불리 먹었던 감미롭고 즐거운 감정을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렇다. 닭갈비와 막국수로 하루를 즐겁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 춘천은 그들이 머무는 동안 또 그들이 먼 훗날 그 추억을 그리워하는 순간, 그들의 고향인 셈이다.
내가 한때 부지런히 출장 다녔던 고장에서 바로 그런 마음이 생겨났듯이!
오늘도 미국에서 귀국한 친구를 만나러 천안에 가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 기억 속 천안의 국밥집과 호두과자를 회상하고 맛을 음미해보며 어느새 여름기운이 완연한 거실창문을 열어둔다. 창문 안으로 불어드는 바람은 천안, 아니면 또 다른 어느 내 마음의 고향에서 불어오는 별미의 향기일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