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여행기] 때로는 낯선 여행지처럼, 전남 순천 여행기

M스토리 입력 2022.04.01 10:41 조회수 3,034 0 프린트
순천시 해룡면 와온 해변에서 본 낙조.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산다고 이야기하면 보통은 그 도시의 특산품에 대해 잡담을 하게 된다. 반응은 거기서 거기지만 가장 머쓱한 버전을 소개해보겠다.  

(상대) “순천이요? 고추장?” 

(나) “아니요 그건 순창이고요.. 전라남도 순천이요. 여수 옆에요.”

그리고 가장 많이 듣는 반응은 단연 “저 순천만 가봤어요!”을 뽑을 수 있다. ‘당신이 42번째로 그 대답을 하는 사람이에요.’하는 말은 할 수 없으니 무척이나 우연이라는듯이, 약간은 가식적인 “와 정말요?” 로 답하게 된다.

순천만을 가봤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는 했지만, 순천만의 인기를 몸으로 실감하게 된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친구가 서울에서 순천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이상하게 주말 KTX 표가 금방금방 매진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갈대 철이라 주말에는 순천만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평소보다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갈대에도 철이 있다고? 그러고 보니 지난봄에 순천만에 갔을 때, (이것도 물론 수도권에서 방문한 다른 친구가 순천만에 가고 싶다고 해서 동행한 것이었다) 내가 아는 갈색의 그 식물 대신 초록색의 풀들이 심어져 있었다. 물론 정말로 교체된 것은 아니고 다른 식물들과 똑같이 갈대도 봄에는 초록색의 싹이 올라오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친구는 순천에 온다면 순천만은 들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순천만까지는 오토바이로 이동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뒤에 태우는 일은 책임감에 부담스럽지만 함께하는 즐거움도 그만큼 크다. 이왕 친구를 텐덤하는 김에 아예 종일 순천투어를 하기로 했다.  
'카페 와온'에서 내려다 본 풍경.
첫 번째 목적지는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와온 해변이다. 가까이서 보면 뻘밭이긴 하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바다다운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잠시 바다 앞을 산책하고, 전망이 좋은 ‘카페 와온’으로 이동했다. ‘카페 와온’은 와온 해변 바로 앞에 있는 대형 카페로 전 층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바다뷰를 감상하기에 딱 맞다. 한옥 건물과 양식 건물이 한 채씩 있는데, 인기자리는 단연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본 건물의 3층 옥상 테라스 자리인 듯했다. 운 좋게도 남아있는 한 자리를 발견해서 풍경이 훤히 보이는 테이블을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데, 부드러운 바람이 지나가며 멀리 바다에서 윤슬이 반짝였다.

몇 시간이고 바라봐도 지겹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었지만, 해가 지기 전 순천만에 도착하기 위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북적댐을 감수하고라도 가장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가장 사람이 많은 시간인 일몰 직전에 순천만에 입장했다. 많은 공공 이용시설들에서 이륜차의 주차장 진입을 거부하곤 하는데, 순천만의 주차장 입구에는 이륜차 주차요금이 적혀져 있어 자연스럽게 주차요금을 결제하고 안전하게 주차를 할 수 있다. 이륜차 주차요금은 500원으로 저렴하다.
학창시절 배웠던 것처럼 만은 바다가 육지 속으로 파고들어 와 있는 부분을 칭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내에서 외곽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 양옆으로 갈대가 빽빽이 심어져 있는 데크 길을 걸으면 걸어도 걸어도 갈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일몰이 다가오면 하늘빛이 점점 부드러워지며 갈대 위에 조명이 드리워지는 것 같다. 일몰이 시작되면 팔레트에 붉은색을 한 방울씩 섞는 것처럼 천천히 하늘은 붉어지고 갈대와 하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풍경이 된다. 
갈대가 흐드러지게 핀 순천만.

순천만의 갈대는 흙바닥 아닌 펄에서 자란다. 갈대 사이사이의 펄에는 조그만 구멍들이 잔뜩 나 있는데, 만의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추운 날씨가 아니라면 작은 게와 망둥이들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순천만은 철새/텃세들의 쉼터이기도 해서 대포만 한 카메라를 들고 새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인파로 가득해 주변인이 없는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당해서일까, 그저 행복했다. 해가 져서 어둑해질 때쯤 저녁을 먹기 위해 순천만에서 나와 다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순천에서 유명한 먹거리는 무엇일까? 대부분 지역에서는 그 지역 하면 생각나는 먹거리가 한두 가지씩 있지만, 순천은 순천만이 가장 유명할 뿐 먹거리는 애매하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순천을 끼고 있는 바다는 수산물이 약한 바다라고 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농사가 잘되는 농산물을 꼽기도 어렵다. 최근 생산량이 늘고 있는 매실을 꼽기에는 바로 옆 동네 광양의 ‘광양 매실’이 더 유명한 식이다.
 
꼬막정식
하지만 그런 애매함이 싫지는 않다. 덕분에 근처 동네의 미식을 순천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왔으니 해산물을 먹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꼬막정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꼬막은 벌교가 유명하지만, 꽤 가까운 거리 덕분인지 순천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꼬막으로 만든 갖가지 요리가 나왔다.
꼬막 떡갈비, 꼬막 그라탱, 꼬막 전까지! 바닷가에서 시작한 투어를 해산물로 마무리하니 통일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유명한 여행지에 산다고 해도 그곳이 여행지가 아닌 ‘우리 동네’가 되어버리는 순간,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풍경을 찾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때로는 낯선 동네에 온 외지인처럼 내가 사는 동네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진짜 외지인 동행과 함께라면 더 그럴듯한 여행이 될 것이다.    
by. 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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