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륜차 운전자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끈끈하게 자리하고 있다. 안장 밖에서 만날 때엔 그저 지나치는 사람이다가도 안장 위에서 만나게 되면 친구인 것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척인 것처럼 서로를 대하게 된다. 대체 우리 사이엔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쉽게 마음의 벽을 허물고 스스럼없이 다가가게 되는 걸까?
몇 달 전, 부슬비가 오는 이른 아침에 에이프 100을 운전 중이었다. 날씨와 시간 때문인지 도로에는 차가 얼마 없었다. 별생각 없이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가 출발했다. 사거리를 막 지나치자마자 3차선이 2차선으로 합류되어 없어지는 포켓 도로인 것을 보고 설마 싶었는데 역시나. 3차선에서 나와 같이 신호를 받고 출발한 택시가 내가 있던 2차선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경적을 울리며 비어있던 1차선으로 피했다. 빗길이라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으면 속절없이 미끄러졌을 것이고, 1차선에 차가 있었다면 피할 길도 없이 무조건 택시와 차 사이에 끼어 사고가 났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던 참에 앞서가던 빅스쿠터 운전자가 택시에게 엄청 화를 내기 시작했다. 경적을 울리고 뒤돌아서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나 대신 택시 운전사에게 경고하고 잘못을 알려주려고 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사고가 나진 않았으니 무시할 법도 한데 대신 화내주는 모습을 보니 놀란 마음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위협한 택시에 대한 화보다도 자기 일인 것처럼 대신 화내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도 다른 이륜차 운전자가 위협 운전을 당했을 때, 위의 운전자처럼 행동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같이 경적을 울려주곤 했다. 위 운전자의 마음을 가늠해보자면 지금의 위험한 상황을 막을 수는 없었을지라도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확실히 표현해서 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픈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이륜차 운전자들 사이의 무언의 유대감은 사고 시에도 두드러진다. 누군가 사고를 당해 도로 위에 쓰러져 있을 때 주변의 모든 오토바이가 모여드는 경험을 주변에서 왕왕 봐왔고 나도 종종 그래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가던 길을 멈추고 가야 하는 배달을 미루고 사고처리를 돕는다. 112에 전화해 신고하고 일어날 수 있는지, 의식은 있는지 확인해준다. 박살 나버린 바이크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기도 하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함께 자리를 지켜준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이만큼 고마운 것이 있을까. 평상시엔 헬멧으로 가려진 얼굴들이 쉴드를 열고 한마음으로 사고처리를 돕는 것을 보면 우리 사이의 유대감이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라고 느껴진다.
또 다들 처음 바이크를 타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 안달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허술한 체계 안에서 면허를 위한 면허를 딴 뒤 무작정 도로 위로 뛰어든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발판삼아 다른 사람들은 더 나은 입문을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고민 없이 여분의 기어를 나누어주고, 같이 헬멧을 구매하러 가주고, 센터를 소개해주는 등 사소하지만 큰 도움이 되는 행동들은 단순한 정보와 물질적 도움 이상이다. 이런 도움들은 어떠한 안전망처럼 역할 하기 때문에 바이크를 단순히 탈 것 이상으로 여기게 되곤 한다.
유대감의 근원은 이륜차 운전자들이 같은 곳에 서 있고, 서로의 상황을 내 것처럼 느끼기 때문인 걸까 싶다. 언제나 사고가 날 수 있는 도로 위에서 사륜차보다 작다는 이유로 종종 말도 안 되는 위협을 당해보지 않은 이륜차 운전자는 없을 것이다. 이런 위협은 어쩌다 일어나는 특이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몇 번이고 겪는 일상이다. 위에서 대신 화를 내준 빅스쿠터 라이더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었거나 사고를 목격했으리라 생각한다. 얼마나 위험한지, 그럼에도 얼마나 이해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하는지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자기 일인 것처럼 나서서 화내고, 사고를 수습하게 된다.
라이더들뿐만 아니라 언제나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소수자들에게 연대하고 공감하며 함께 행동하곤 한다. 아직도 무척이나 남성 중심적인 바이크 문화이지만, 어쩌면 이러한 유대감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이륜차 문화의 발전에 대한 기대를 멈출 수 없다.
치맛바람라이더스 by 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