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철들기의 어려움

M스토리 입력 2021.07.16 08:44 조회수 4,069 0 프린트
Photo by Ashkan Forouzani on Unsplash
“나이가 들어도 철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개그맨 안일권이 어느 월간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장래 희망을 기자가 묻자, 던진 조크다. 개그맨은 어떻게든 사람을 웃게 만들어야 하는 게 직업이다. 하여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도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굴거나 엉뚱하게 행동을 하여 부단히 관객을 웃기겠다는 의지이지 싶다.
“너, 언제 철들래.”
사춘기 시절에 자주 듣던 말이다. 그러다 군대에라도 갔다 오거나 취직을 하면 동네 어른들이
“그 아무개네 말썽꾸러기가 인사를 잘 하는 걸 보니 이젠 철이 들었어.”하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철들다’는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줄 알게 되다’란 뜻이다. 제주도 말로는 ‘철알다’이고 전라남도에서는 ‘속들다’, 경상도에서는 ‘시다’, ‘쎄다’ 함경북도에서는 ‘혜미들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철’은 ‘때’ 곧 ‘계절(季節)’과 같은 의미라, 봄철이 지나면 여름철이 되듯 때에 맞춰 소년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인격과 교양을 갖춘 어른으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과거에는 그랬다. 농경문화 시대에나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철이 들어 어른이 되었고 어른은 매사에 지혜롭고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존경받는 당당한 리더였다. 사시사철 절기에 맞춰 파종하고 김매고 추수를 선도하였고, 예법에 따라 집안 가족들의 대소사와 생계를 책임지며 행복한 문화생활을 여유롭게 이끌었다. 하지만 현대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가? 
과연 어른이란 존재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나이가 들수록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웃음거리가 되거나 매사를 후배에게 핀잔을 들어가며 물어봐야하기 때문이다. 전산 전공자가 아닌 보통사람들은 컴맹이 되지 않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눈을 뜰 수가 없고 모델이 매년 바뀌는 스마트폰조차 제대로 조작하지 못해 창밖으로 내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하루에도 몇 번 씩 경험하지 않는가.
물론 존경받는 철든 어른의 존재를 지식이나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는 능력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보의 홍수 시대에 즈음하여 다양한 정보를 빅데이터에서 검색하여 활용하거나 자신의 신상문제조차 스마트폰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처지에 존경받을 수 있다고 자신하겠는가?
아무튼 개그맨 안일권은 철들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철들기 어려운 4차 산업혁명과 AI 시대의 초인간적 환경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나이가 드는 사람들은 모두 개그맨 안일권이 되어 갈 것이다. 웃기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웃길 수밖에 없는 존재.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 두렵다.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digital transformation) ; 사회전반에 적용하여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혁신하는 디지털 기술사용 방식.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됨. 전자상거래, 원격의료, 온라인 교육 등
* 4차 산업혁명 ; 인공지능(AI)기술 및 인터넷,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생산성 및 서비스 향상 혁명
* AI(Artificial Intelligence) ; 인공지능
 
권혁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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