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한민국 이륜차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이 있었다. 이륜차 자동차전용도로 통행 허가 요청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성사된 것이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 기적을 이끌어낸 주역인 청원팀은 이제 단발성 이벤트를 넘어 지속 가능한 변화를 위해 ‘이륜차실사용자협회(이하 이실협)’라는 깃발 아래 뭉쳤다.
이실협 전창욱 위원장을 만나 그들이 꿈꾸는 대한민국 이륜차의 미래와 이실협의 설립 및 이후의 로드맵을 들어보았다.
“라이더를 위한 구심점 필요했다”
전창욱 위원장을 비롯한 청원팀이 이실협 설립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정치권의 되물음이었다. 전 위원장은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이 대표성 있는 단체가 있느냐, 전체 라이더를 대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기존에도 이륜차 관련 협회는 존재했으나 꾸준히 활용 중인 협회는 없다시피 했다. 활동 중인 협회가 있더라도 이륜차 운전자를 위한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고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전 위원장은 “기존 협회들은 활동이 전무하거나 등록만 되어 있는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국민동의청원 과정에서 보여준 라이더들의 열망을 조직화하여, 정부와 국회에 실질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진짜 사용자들의 단체가 절실했다”고 설립 배경을 밝혔다.
레저와 배달의 구분을 넘어… 라이더유니온과 연대
이실협의 가장 큰 특징은 실사용자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 이륜차를 타는 모든 이를 아우른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레저용 라이더와 생업용(배달) 라이더를 분리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 위원장의 생각은 확고했다.
“용도가 무엇이든 도로 위에서 차별받고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똑같은 라이더입니다. 배달 라이더 때문에 인식이 나빠진다며 선을 긋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실제로 협회는 설립 준비 과정에서 배달 라이더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과 간담회를 갖고 연대를 약속했다. 전 위원장은 “라이더유니온과 함께 사회적 약자를 돕는 안전 지킴이 활동이나 SOS 캠페인 등을 구상 중이다. 레저와 배달이 아닌 라이더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안전과 권리를 위해 함께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우선 과제는 ‘이륜차 교통 선진화 법안’… 면허 체계 고쳐야
이실협 준비 중인 정책의 핵심은 ‘이륜차 교통 선진화 법안’이다. 전 위원장은 그중에서도 면허 체계 개편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전 위원장은 “현재는 자동차 면허만 있으면 125cc 이하 오토바이를 탈 수 있습니다. 조작법도, 대처 방법도 모르는데 도로에 나오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과 주행 시험을 거쳐야만 이륜차 면허를 발급하는 체계가 도입되어야 라이더도 안전하고, 보행자와 자동차 운전자도 안전해진다”며 이를 위해 국토부와 정치권을 설득할 구체적인 데이터를 축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비현실적인 지정차로제 개선과 이륜차 자동차전용도로 통행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숙원 사업임을 재확인했다.
라이더는 소음 유발자가 아닌 지역 경제의 활력소
전 위원장은 이륜차에 씌워진 부정적 인식을 걷어내는 것 또한 이실협의 중요한 미션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이슈가 된 이륜차 소음 문제 등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라이더들이 지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지방 소도시나 인구 소멸 지역에 라이더들이 찾아가 밥을 먹고, 특산물을 사고, 숙박을 하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됩니다. 지자체와 연계하여 스탬프 투어나 라이더스 데이 같은 행사를 유치해 라이더를 시끄러운 불청객이 아닌 반가운 손님으로 여기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500여 명의 발기인, 수만 명의 회원으로
지난해 12월 25일 설립 허가 신청을 마친 이실협은 현재 약 500명의 회원이 뜻을 모으고 있다. 전 위원장은 회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투명한 회계 운영과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싱크홀 사망 사고에서 이륜차라는 이유로 보험 지급을 거절당한 사례처럼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는 협회 차원의 성명서 발표와 공동 대응을 통해 회원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인터뷰를 마치며 전창욱 위원장은 “이륜차를 탄다는 것이 죄가 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선택한 교통수단을 당당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환경 누군가 뒤에서 불평만 할 때 앞장서서 그 환경을 만드는 구심점이 되겠습니다. 많은 라이더 분들이 방관자가 아닌 주인공으로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