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드디어 완연한 가을이다. 추석을 전후로 여름의 기운은 이제 싹 빠져나가고, 다가오는 겨울의 기운을 느껴가는 가을이 되었고, 동시에 라이더의 일년 중 가장 하이라이트 시즌이 되었다.
내 여행기를 즐겨 보시던 독자 분이시라면 내가 지난 해에 기추한 트라이엄프 스크램블러로 뭘 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하셨겠지만, 스크램블러400X 기추의 최종 목적은 인도 히말라야 투어를 다녀올 연습용 바이크인 셈인데, 어느덧 스크램블러로 2.4만km를 넘게 요기조기 돌아다니면서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투어준비를 나름 착실히(?)하고 있다.
히말라야 바이크 투어는 열악한 도로환경 뿐 아니라(포장도로도 제대로 된 포장도로라고 보기 어렵고, 온전한 오프로드의 비중도 20% 이상이라고 한다), 혹시나 조난 또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느 정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력구제 능력을 갖추고 가야하는 곳이다. 그래서 만만한 스크램블러400X로 임도부터 자갈밭까지 난이도를 살살 조정하면서 경험해보고 있지만, 실제 인도 현지에서 만날 도로는 아마도 이 정도는 일상이고 이것 보다 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아무튼, 지난 해부터 운탄고도, 서운리임도, 맹동임도, 덕산기계곡, 당진임도, 이름모를 동네방네 오솔길 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준비의 일환이라 하겠다.
이와 결을 같이해서 올해 9월에는 가을을 맞아서 춘천의 오지라는 문배마을, 이포보 임도, 조경철 천문대 등을 다녀왔다(위에 언급한 코스들을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번에 다녀온 곳들의 난이도는 앞에 언급한 덕산기계곡 수준을 넘지 않는다. 내가 지금껏 다녀온 곳 중에는 덕산기계곡이 가장 힘들었다). 투어는 두번으로 나누어 이포보 투어, 문배마을/조경철천문대 투어로 다녀왔다.
이포보는 예전에도 여러번 다녀왔지만 늘상 진창길이 많아서 진창 앞에서 돌려나오곤 했던 곳인데 이번 가을엔 비가 거의 안와서 나름 거의 바짝 마른(그래도 웅덩이는 있다) 임도를 달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포보만 하루 종일 달리며 나름 중고속 임도주행 연습을 했다(내 반려드론이 따라올 수 있는 최대속도인 40km/h까지만 달리며 마치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느낌을 살짝 만끽했다고나 할까?). 살짝 남아있는 웅덩이는 잘 피하며 스크램블러를 사길 잘했다는 셀프칭찬까지 곁들이며 달렸는데 뒤에 언급하겠지만 역시 어드벤처 바이크의 뽐뿌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그동안 저속 임도주행에선 크게 어드벤처 바이크가 아쉽지 않았지만, 속도가 올라가니 스크램블러와 어드벤처는 그 장르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더라). 이포보까지 판교에서 대략 왕복 130km 였고, 임도주행 연습 2시간쯤을 더하니 대략 6시간을 달린 날이었다).
그 다음 투어는 최근 장마로 물골이 깊어져 난이도가 올라갔다는 춘천의 오지마을인 문배마을을 거쳐서 조경철 천문대를 다녀오는 코스다. 요 코스 역시 판교 기준 대략 280~300km 정도로 순수 라이딩 시간이 6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다. 문배마을은 예전에 차량으로 다녀온 적이 있는데 급코너에 급경사가 있는 코스로 최근에 지인에게 듣기로는 올해 폭우로 물골이 깊어져서 고생했다기에 난이도 점검차 고른 곳이다. 들은대로 예전보다 물골이 깊어져 임도주행 경험이 없는 라이더라면 상당히 고전할 수 있겠더라. 문배마을은 춘천에서 진입하는 초입은 별 무리가 없지만 도착 2km 정도 전부터 길이 많이 험해지는데 거의 다 도착한 마지막 코너가 경사와 급코너와 깊은 물골이 함께 있어서 겁을 먹으면 자빠지기 딱 좋아 보였다. 물론 스크램블러400X로는 어려운 코스가 아니라 나는 무난히 통과했지만 지인이 왜 고생했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먼지투성이가 된 채로 화천의 조경철 천문대로 이동. 문배마을에서 고생하면 조경철 천문대는 다음으로 미루려 했지만 생각 외로 무난하게 통과한 덕분에 화천까지 투어를 연장한 것인데 이 천문대도 참 오랜만에 다녀온 곳이다. 예전엔 당연히 비포장 구간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 포장했겠거니 했으나 아직 비포장 구간이 군데군데 남아있어 더 좋았다.
이렇게 가을을 맞이해서 흙길과 친해지는 연습을 하며 달려보니,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와 트라이엄프 스크램블러400X의 사이에 뭔가 묵직하면서 요모조모 다 할 수 있는 팔방미인을 끼워 넣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게 이번 투어의 부작용이다. 임도와 포장도로를 모두 편하게 장거리 이동할 수 있고, 필요시에는 충분한 짐을 싣고 장거리투어를 다녀올 수 있으며, 너무 무겁지 않아서 임도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으며, 여유있는 출력과 유연한 서스펜션으로 임도에서 중고속 주행도 불안감이 없는 그런 바이크를 생각하다 보니 준리터급인 900cc 내외의 어드벤처 바이크로 후보가 좁혀졌다.
현재, BMW F900GS, 트라이엄프 타이거900 랠리프로가 매일 밤 꿈에 나오는 종자들이고, 간혹 트라이엄프 스크램블러1200XE와 BMW R12 G/S도 등장하곤 한다(이쯤이면 중증이라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자가진단 해본다. 치료법은 모두가 알다시피 기추/기변 뿐이다). 가장 끌리는 타이거 랠리프로는 내년에 타이거950으로 풀체인지 된다는 소식에 풀체인지 모델의 개선점을 보고 결정하려고 기다리고 있지만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면 그냥 지를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심신상태다. BMW F900 GS과 R12 G/S는 좀 더 터프하게 임도를 달려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아직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무엇이 되었든 행복한 고민이고 좀 더 묵직한 녀석들로 연습을 하다보면 인도 히말라야 투어에서 만날 로얄엔필드 히말라얀450을 오프로드에서 훨씬 편하게 다룰 수 있을테니 기추는 정당하다고 자기합리화 중인 셈이다.
올해로 나는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었고, 누적주행거리도 25만km를 넘어섰지만 아직 내가 여전히 동네방네 싸돌아 다니며 흥미를 읽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고갈되지 않는 ‘버킷리스트’를 계속 업데이트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독자 여러분도 마르지 않는 버킷리스트를 적어가며 새로운 바이크의 기추/기변과 동행하며 안전하고 즐거운 바이크 라이프를 즐기시기 바란다.
[들려볼 만한 곳]
여주 이포보 아래에 펼쳐진 대규모 비포장지대로 국내에서 보기 드문 규모의 비포장 평원이다. 다만, 장마철이나 비가 온 후에는 물이 쉽게 빠지지 않아서 진창이 많아 바이크가 미끄러지기 쉽다. 초보자와 중상급자 모두가 비포장도로 주행을 연습하기에 좋은 곳으로 저속, 중속, 고속 임도주행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임도주행이 처음이라면 혼자 가는 것보다 둘이나 셋이 가는게 좋다.
구곡폭포 주차장을 통과해서 비포장 도로를 제법 달리면 도착한다. 마을 형태가 짐을 가득 실은 배모양이라고 해서 문배마을이라고 한다는데 옛 화전민 마을이라고 한다. 구곡폭포 주차장에서 들어오는 임도 초입은 난이도가 높지 않으나, 문배마을 표지판을 통과해서 내려오는 내리막부터가 난이도 있는 임도의 시작이다. 막판에 급경사와 급코너, 최근 폭우로 깊어진 물골이 한번에 있는 난이도가 높은 코너가 한군데 있는데 후기들을 보면 여기서 많은 분들이 고전한다. 바이크는 클래식 바이크에 듀얼타이어(이게 중요하다)를 끼운 정도면 무리없이 통과가 가능하지만 일반도로용 타이어라면 제꿍하기 쉽다. 마을 안에는 생태연못과 토속음식점들이 있는데 음식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투박한 토속음식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가격은 특별하게 비싸지는 않아 식사하기에도 무난하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 분들에게 ‘아폴로 박사님’이라고 불리우던 조경철 박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2014년에 화천군 주도로 건립된 천문대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민간천문대로 어른 입장료도 3천원으로 매우 저렴하며 경관이 탁 트여 가 볼만 하다. 올라가는 길은 폭이 좁아 차량의 경우 교행이 어렵지만 바이크라면 문제가 없다. 올라가는 중간에 짧은 구간의 비포장 도로가 있으나 험하진 않아서 일반 바이크들도 무리없이 오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