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륜차 산업을 논할 때 우리는 보통 거대한 내수 시장을 장악한 대형 제조사들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시선을 밖으로 돌려 유럽과 미국의 도심을 달리는 스쿠터들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바로 저장성 타이저우시에 본사를 둔 중능자동차그룹(China Zhongneng Vehicle Group, 이하 ZNEN)이다.
우리가 도로에서 흔히 마주치는 소위 ‘가성비 좋은 스쿠터’의 상당수는 직간접적으로 이 기업의 손길을 거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륙의 질주’ 두 번째 순서는 중국 스쿠터 제조의 거인을 넘어, 이탈리아 명문 브랜드를 인수하며 글로벌 종합 이륜차 그룹으로 진화한 ZNEN을 조명한다.
가전 부품에서 시작된 ‘수출 DNA’
ZNEN은 중국 내수 시장 점유율보다는 해외 수출 물량과 방대한 OEM 네트워크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기업이다. 이들의 성장 방정식은 전형적인 중국 제조업의 루트를 따르면서도, 시작부터 ‘글로벌’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1988년 ZNEN은 냉장고 등 소형 가전 부품 제조사로 출발했다. 이후 90년대 광전 부품과 전기자전거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기초 체력을 다졌고, 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이륜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진입 초기부터 내수 출혈 경쟁 대신 해외 시장, 특히 진입 장벽이 높은 선진국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서구권 인증을 뚫어낸 ‘수직 계열화’의 힘
중국의 수많은 제조사 중 ZNEN이 두각을 나타낸 핵심 경쟁력은 바로 ‘규제 대응 능력’이다. ZNEN은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 EPA(환경보호청)와 유럽 Euro 규제를 충족하며 선진국 시장의 문을 열어젖혔다. 현재 해외 매출의 50% 이상이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들이 단순한 저가 공세가 아닌,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족하는 기술력을 갖췄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경쟁력의 원천은 철저한 수직 계열화에 있다. ZNEN은 엔진과 프레임은 물론 용접, 도장, 케이블 생산까지 제조의 거의 모든 공정을 자체 소화한다. 이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바이어가 원하는 디자인과 사양을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했다.
덕분에 ZNEN은 자체 브랜드 수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유통사들의 요구에 맞춘 ODM/OEM 파트너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를 누비는 수많은 스쿠터가 사실상 ZNEN의 타이저우 공장에서 태어난 형제들인 셈이다.
ZNEN의 승부수, ‘모토 모리니’를 품다
이는 단순한 브랜드 사냥이 아니었다. 소형 스쿠터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가진 ZNEN에게 모토 모리니는 미들급 이상의 대형 모터사이클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티켓이었다. 인수 후 ZNEN은 디자인·R&D는 이탈리아, 생산은 중국이라는 실용적인 전략을 채택했다. 밀라노 본사의 R&D 역량을 흡수하면서 400cc에서 1200cc에 이르는 대배기량 엔진 기술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단숨에 기술적 도약을 이뤄냈다.
생활밀착형 ZNEN과 프리미엄 모토 모리니 투 트랙 전략
현재 ZNEN 그룹의 전략은 명확한 ‘투 트랙’ 전략이다.
그룹의 캐시카우인 ZNEN 브랜드는 철저히 대중적인 스쿠터와 커뮤터 시장에 집중한다. 유러피언 감성을 입힌 스쿠터 모델들은 50~175cc 공랭 엔진을 기반으로, 환경 규제를 충족하며 전 세계의 ‘이동 수단’ 수요를 담당한다.
반면 모토 모리니는 브렘보 브레이크, 마르조끼 서스펜션 등 최상급 파츠를 무장하고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한다. 엑스케이프(X-CAPE)와 같은 어드벤처 모델이나 대배기량 네이키드 모델은 중국 자본과 이탈리아 감성이 성공적으로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에 탄소 중립 시대를 대비한 전기이륜차 라인업을 기존 수출 네트워크에 태워 B2B 및 라스트마일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내연기관과 전기차, 대중성과 프리미엄을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포석이다.
중국 이륜차 산업의 진화를 보여주는 거울
물론 과제는 남아있다. 모토 모리니의 유럽 내 판매 실적과 수익성은 시장별로 편차가 있어 장기적인 성과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ZNEN은 화려한 마케팅보다는 인증, 생산, 수출이라는 제조업의 본질에 집중하며 성장해 온 기업이다. 저렴한 부품을 조립해 팔던 과거의 중국 공장이 이제는 유럽의 헤리티지 브랜드를 인수하고, 글로벌 기준을 선도하는 기술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ZNEN의 행보는 중국 이륜차 산업이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도약’의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단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