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명의 서명, 침묵하는 국회... 라이더 입법으로 답하다

M스토리 입력 2025.12.16 14:12 조회수 329 0 프린트
 

“국민청원 5만 명이 달성됐지만 국회는 조용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습니다.”

지난 11월 28일 서울 독산동의 한 회의실. 마이크를 잡은 프로레슬러이자 국민동의청원단으로 활동해 온 김남훈 씨의 발언에는 아쉬움보다 확신이 담겨 있었다. 평일 저녁, 각자의 생업을 마치고 모인 라이더들로 채워진 회의실 분위기는 비장함보다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륜차의 자동차전용도로 통행 허용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5만1,669명의 동의를 얻어 성원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그러나 청원 성원 이후에도 국회와 정부가 뚜렷한 후속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이륜차 실사용자들이 직접 해법을 찾기 위해 나섰다.

이날 열린 ‘이륜차 실사용자 간담회’는 단순한 성토의 자리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정부의 침묵에 좌절하기보다는,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짚고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논의를 집중했다.

“열어달라”는 구호에서 ‘법’으로… 입법적 대안의 등장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요구 방식의 전환이다. 그동안 이륜차 운전자들의 목소리는 “자동차전용도로를 열어달라”는 구호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감정적 호소를 넘어, 구체적인 입법 대안이 제시됐다.

자문을 맡은 김성훈 변호사는 ‘이륜자동차 선진화법(가칭)’이라는 포괄적인 법·제도 개편안을 제안했다. 주요 내용은 △현실과 괴리된 이륜차 분류 기준의 개편 △자동차와 이륜차 면허 체계의 분리 및 경력·교육에 따른 단계적 이륜차 면허 도입 △이륜차를 포함한 교통안전·안전교육 체계 확립 △상업용과 레저용 이륜차의 명확한 구분 △자동차전용도로 통행의 단계적 허용 등이다.

이는 정부가 반복적으로 제기해 온 ‘안전 우려’를 제도적으로 해소하자는 제안이자, 수십 년간 방치돼 온 이륜차 제도 전반을 정상화하라는 요구다. 김 변호사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통행 허용 요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도 공백이 누적된 매우 복합적인 문제”라며 “국가가 이륜차 제도를 방치한 결과, 이륜차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가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전용도로였다면…” 유가족의 증언이 던진 질문
이날 간담회에서 가장 무거운 침묵을 만든 순간은 한 유가족의 발언이었다. 교차로 사고로 아들을 잃은 ‘푸른 꿈’이라는 닉네임의 한 어머니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아들은 지금 살아 있었을 겁니다.”

그녀는 아들의 사후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들이 남긴 글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아들은 생전 자동차전용도로 문제의 개선 필요성을 반복해서 지적해 왔다고 한다. “이 문제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이동권, 인권의 문제”라며 “모든 국민에게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술한 면허 제도, 구조적 위험을 키우다
현장에서는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운전면허 학원에서 기어 변속조차 제대로 배우지 않고, 한 바퀴 돌면 면허를 받는다”며 현행 면허 제도의 부실함을 꼬집었다. 충분한 교육과 검증 없이 도로로 내몰리는 구조가 사고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남훈 씨는 “고출력 이륜차를 다룰 수 있는 실력이 검증된 사람에게만 상위 면허를 부여하는 등 면허 체계의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 규제 완화가 아닌, 책임과 권한을 함께 설계하자는 주장이다.

소비자 권리 보호로 확장되는 ‘실사용자 협회’
이번 간담회에서 논의된 또 하나의 핵심은 ‘소비자 권리 보호’다. 참가자들은 메이커사의 일방적인 정책 변경, 무허가 정비업체의 난립, 중국산 부품의 국산 둔갑 문제 등을 거론하며, 이를 견제할 공식 창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향후 출범을 준비 중인 ‘대한이륜차실사용자협회(가칭)’는 단순한 친목 단체를 넘어, 소비자 감시와 권익 보호 기능까지 수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수입·제조사 중심이었던 이륜차 시장 구조에 실질적인 견제 세력이 등장함을 의미한다.

배달과 레저, 갈라진 라이더를 잇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배달 라이더(상용)와 레저 라이더 간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도 주목받았다. 그동안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배달 라이더의 난폭 운전이 전체 이미지를 훼손한다는 인식이 적지 않았지만, 이번 논의에서는 “배달 라이더 역시 이륜차 실사용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현직 배달 라이더이자 노조 활동가들은 영업용 번호판 구분, 공제조합 설립, 유상운송 보험료 현실화 등 구체적인 개선안을 제시했다. 협회 측은 라이더유니온 등 기존 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지정차로제 폐지 등 공통 과제를 함께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유리병’을 깨기 위한 첫 행동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유리병 속의 벼룩’에 비유했다. 충분히 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규제와 편견이라는 뚜껑에 가로막혀 낮게 뛰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는 자조다.

가칭 ‘대한이륜차실사용자협회’의 출범은 그 유리병을 깨기 위한 첫 번째 시도다. 5만 명의 서명이 보여준 숫자의 힘에 더해, 이제는 법리와 논리, 조직된 행동으로 국회와 정부, 산업계를 향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김성훈 변호사의 말처럼 “자동차가 자동차 도로를 다니는 것이 상식”이라면, 이들의 요구는 특혜가 아닌 상식의 회복에 가깝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이륜차 산업계가 더 이상 이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편, 이튿날인 29일에는 국민동의청원단 및 이륜차 운전자들은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인 맹성규 의원(더민주, 인천 남동갑) 사무실을 방문해 이륜차 자동차전용도로 통행 허용 국민 동의 청원과 이륜차 운전자들이 마련한 이륜차선진화법안를 설명하고, 이륜차 교통안전에 대한 법적 개선 필요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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