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산책] 이륜차의 꿈

M스토리 입력 2022.04.01 11:27 조회수 2,964 0 프린트
 
 
권혁수 시인
요즘 건망증이 부쩍 심해진 것 같다. 휴대폰을 켰는데 누구에게 전화하려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출근 준비하려고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왜 안방에 들어갔는지 몰라 서성거리다 거실로 나와 보니 안경을 찾으러 들어갔었다는 생각이 난 것이다.

어느 가을날, C시 외곽에 있는 S중학교 운동장에 대형이륜차가 한 대 나타났다. 이륜차에는 늘씬한 영국 청년이 타고 있었다. 그는 세계 일주 중인데 중학교가 보여서 잠시 들렀다고 했다. 당시에 그의 모습이 어찌나 멋지고 낭만적으로 보였던지 나도 언젠가 이륜차로 세계여행을 해봐야겠다고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 영국 청년만큼 키가 크질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대형이륜차를 구입할 수가 없어서 그런지 그 꿈은 아직도 꿈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최근에 나를 흥분시킨 청년들이 있어 희망의 끈을 당겨본다. <기자형제 신문 밖으로 떠나다:오토바이로 그린 3000km 新대동여지도>여행기의 형제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대형이륜차가 아닌 105cc 혼다 SCR110 알파와 125cc 스즈키 익사이트로 무려 3,794Km를 달려 전국을 샅샅이 누볐다는 것이다. 
비록 세계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다년간 근무했던 신문사를 사직하고 전국 곳곳의 명소를 돌아보며 지명에 얽힌 유래와 사람냄새 나는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300쪽 책자에 담아냈다.

그런가하면 최근엔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미국인들이 해외 토픽을 장식해 눈이 확 떠졌다. 그들은 4명으로 구성된 순수 민간인들로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X가 개발한 우주선 ‘크루드래건’을 타고 사흘 동안 음속의 22배로 지구 주위를 돌다 지난해 9월 23일, 플로리다 앞바다에 안착을 했다. 토픽에 따르면 그들이 구입한 4장의 우주여행 티켓 값은 무려 2천300억 원에 달한다, 한 사람당 575억 원 꼴이다. 그런 막대한 비용을 들여 그들은 지구 밖으로 나가 무엇을 보았을까? 그리고 어떤 글을 쓸까?

이륜차 여행이 되었든 우주선 여행이 되었든 여행은 선(禪)에서 말하는 행선(行禪) 곧 <움직이는 명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TV나 신문 등 각종 매체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매일 여행을 하고 있다. 따라서 여행을 통해 무엇인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분석 정리하며 각자의 삶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깨닫곤 한다.

나는 지금 당장은 기자형제들이나 우주여행객들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고액의 경비를 들여 여행을 떠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세속에 끄달려 깜빡 잊었던 나의 존재를 깨닫기 위해, 내가 왜 이 땅에 태어났고,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내 자리를 떠나보면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내가 안방에 왜 들어갔는지, 그 안방을 나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던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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