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멕시코 이륜차

M스토리 입력 2021.12.01 17:27 조회수 3,210 0 프린트
 
 
권혁수 시인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은근히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들이키던 추억이 생각난다. 닭발을 뜯으며 아무리 떠들어도 질리지 않던 말과 말. 그러나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 명언들. 그래도 어느 날 문뜩 기억나는 한 토막이 있어 포장마차가 우리들의 인생대학 3교시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 날, 누군가 수입이륜차가 비싸다는 말을 꺼냈다. 고급승용차 못지않게 ‘도로의 왕’이라 불리는 할리데이비슨은 3천만 원이 넘고 BMW이륜차는 4천만 원후반대, 일본의 야마하도 2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했다.

그의 말을 듣고 한 시인이 소주 한잔 걸치고 안주삼아 멕시코 이륜차에 얽힌 에피소드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멕시코 여인이 우아하게 은발머리를 휘날리며 이륜차를 몰고 미국 남부 멕시코국경에 나타났다. 그녀는 이륜차에 상자를 하나 싣고 있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수비대는 그 상자를 수색했으나 상자 속에는 멕시코 사막의 흰모래만 담겨있을 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미국엔 왜 가시는 거요?” 

국경수비대는 여행 목적을 물었다. 그러자 은발의 여인은 텍사스에 관광하러 간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국경을 통과한 여인은 며칠 후, 이번엔 미국 쪽에서 그 우아한 은발머리를 휘날리며 이륜차를 몰고 나타났다. 여전히 이륜차 뒤에는 상자를 하나 싣고 있었고 텍사스 사막의 흰모래가 담겨있었다. 양국의 국경수비대는 그 모래 속을 샅샅이 수색했다. 마약이나 귀금속 같은 수상한 것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의심스러워서였다. 그러나 텍사스 사막의 흰모래만 담겨있을 뿐 불법적인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이따금 그녀는 은발머리를 휘날리며 나타났다. 역시 이륜차 뒤에는 흰모래가 담긴 상자가 하나 실려 있었고 국경수비대는 아무것도 적발해내지 못했다. 국경수비대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은발의 여인은 상자에 흰모래만 가득 싣고 국경을 넘나드는 것일까? 이유가 뭘까? 아무리 수년간 국경을 지키며 밀수를 적발해온 베테랑들이었지만 그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고 아리송하기만 했다. 하여 수비대는 그녀가 나타날 때마다 모래를 싣고 여행하는 목적과 이유를 묻곤 했다. 그러나 여인은 우아하게 은발머리를 흔들며 미소만 지을 뿐 단 한 마디도 속 시원하게 해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여인은 그렇게 몇 년 동안 국경을 넘나들었다. 그때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수비대는 그녀가 왜 흰모래만 싣고 다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오늘도 과연 여인이 흰모래를 싣고 나타날 것인가, 아닌가? 자기들끼리 내기도 수없이 했다. 게다가 오늘은 어떤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기다리기까지 했다. 결국 양국의 국경수비대장들이 나서기로 했다.

“마담, 왜 그렇게 흰모래를 싣고 여행을 하는 거요?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오늘은 국경을 넘지 못할 거요. 하지만 말해 준다면 문제 삼지 않겠소.”

여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대장들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륜차를 타고 다니기엔 이제 자신이 너무 늙었다는 표정으로. 

“그동안 모두 고마웠어요.”

하고 은발의 여인은 국경수비대원들에게 윙크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륜차에 실린 상자를 열고 텍사스의 흰모래를 그들의 발 앞에 쏟아버렸다. 그 모래를 밟고 여인은 이륜차의 검은 가죽안장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려 보인 후 은발머리를 휘날리며 멕시코 사막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국경수비대가 모두 여인의 우아하고 긴 은발머리와 상자 속 흰모래에 신경을 쓰는 사이에 여인은 텍사스의 신형 이륜차를 한 대씩 멕시코로 옮겨갔던 것이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배출가스 및 소음인증절차도 거치지 않고.

“그 여인이 오늘날 우리 마누라야, 나는 수비대장이고. 은발머리 여인이여 영원 하라.”

시인은 껄껄 웃으며 다시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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