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 회장과 함께 떠나는 바이크 투어 -34-] 시애틀을 떠나 캐나다 최대의 서부 도시 밴쿠버로 입성

M스토리 입력 2026.06.16 16:33 조회수 1,849 0 프린트
 

시애틀의 아침, 설렘을 싣고 심장이 뛰기 시작하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투명하고 싱그러운 아침 공기, 그리고 곧 마주할 여정에 대한 터질 듯한 설렘이 나를 깨웠다. 이번 투어의 최고 라이딩 코스인 캐나다 밴쿠버행을 앞두고, 나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바이크 장비를 챙겼다. 재킷을 입고 지퍼를 올리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본격적인 캐나다 투어를 향해 출발하기전 나는 시애틀 외곽 마리즈빌(Marysville)에 위치한 할리데이비슨 딜러숍, ‘Sound Harley-Davidson’을 방문했다. 이곳은 이 지역 할리 문화의 심장이자, ‘North Cascade 101’과 ‘Puget Sound’라는 두 개의 핵심 H.O.G.(Harley Owners Group) 챕터를 모두 후원하는 곳이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매니저가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H.O.G. 멤버들만의 전용 휴식 공간인 기념 라운지에 들어섰다. 벽면은 온통 수십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과 기념품들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North Cascade H.O.G. Chapter’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37년 전인 198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의 HOG 챕터이다. "우리는 단순히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길 위에서 맺어진 또 다른 가족입니다.“라는 벽면에 걸린 슬로건처럼, 독자적인 할리 문화와 라이딩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서로를 가족처럼 끈끈하게 챙기는 유대감이 공간 전체에서 진하게 묻어났다. 스노호미시, 스카깃, 아일랜드 카운티 등 워싱턴주 전역은 물론이고, 국경을 넘어 타주와 캐나다 라이더들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멤버십을 자랑한다는 매니저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침 매장 한쪽에는 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녀석이 있었다. 육중한 스트리트글라이드 울트라 모델에 사이드카를 커스텀 튜닝한 할리데이비슨이었다. 우람하면서도 당당하고, 동시에 기막힌 안정감을 뽐내는 그 자태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언젠가 이 녀석을 타고 대륙을 횡단하면 어떤 기분일까?’ 기분 좋은 상상과 함께, 오늘 여정의 안전을 굳게 다짐했다. 할리맨들의 살아있는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고 든든한 미국식 아침 식사(Daily Breakfast)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마침내 대장정의 서막이 화려하게 올랐다는 실감이 났다.

거대한 하드웨어 스토어와 도로 위의 이색 풍경, ‘비키니 에스프레소’
 
시애틀 도심을 벗어나 북쪽으로 향하는 길, 바이크를 잠시 멈추고 정비할 겸 미국의 대표적인 홈 하드웨어 철물점인 ‘Lowe’s(로우즈)’에 들렀다. 북미 대륙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초대형 창고형 매장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홈디포(The Home Depot)’나 캐나다의 ‘로나(RONA)’ 같은 브랜드들이 있는데, Lowe’s와 홈디포는 북미에만 각각 2,200여 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다. 건축 자재부터 공구, 잡화, 원예용품까지 그야말로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만물상이다.

사실 이 거대한 창고형 매장은 나에게 단순한 철물점이 아니다. 과거 캐나다에 거주하며 인테리어 및 주택 건축 관련 사업을 하던 시절, 하루가 멀다고 찾던 추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 새벽, 작업 전에 들러 사 먹던 육즙 가득한 햄버거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라이더들에게는 이처럼 이국적이고 거대한 창고형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 자체가 투어가 주는 또 다른 쏠쏠한 묘미일 것이다.

볼트를 조이고 다시 도로 위로 나서 시애틀 켄트(Kent) 지역을 지날 때쯤이었다. 고즈넉한 순복음교회 건물을 지나며 마음의 평온을 얻던 찰나, 반대편 도로변에 독특한 키오스크 드라이브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간판에는 ‘비키니 에스프레소 레이디벅(Bikini Espresso Ladybug)’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곳은 미국 서부 오너 라이더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이색 카페인데 놀랍게도 바리스타들이 여름에는 아슬아슬한 초미니 비키니를, 겨울에는 아찔한 산타 레이디 복장을 입고 커피와 스낵들을 서빙한다. 시각적인 즐거움과 독특한 마케팅 덕분인지, 의외로 아침,저녁의 출 퇴근 길마다 커피를 사러 오는 단골 고객들이 많다. 문화적 충격과 신선한 재미를 안겨준 카페를 뒤로 한 채, 바이크 핸들바에 단단히 고정된 구글 맵 네비게이션의 화면 속 화살표는 시종일관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심장의 고동 소리에 맞춰 거침없이 화살표 방향으로 향했다. 
 
 
평화로운 국경의 공원과 피스 아치(Peace Arch)의 눈물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이 저 멀리 모습을 드러냈다.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삼엄하면서도 이국적인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 순간은 라이더에게 늘 묘한 긴장감과 짜릿한 쾌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웅장한 배기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캐나다 입국을 위한 통과 신고를 무사히 마쳤다. 검문소를 빠져나오자마자 눈앞에 거짓말처럼 광활하고 푸른 ‘피스 아치 공원(Peace Arch Park)’이 펼쳐졌다. 이곳은 1925년 조약에 의해 세워진 미국·캐나다 국경 표석이 있는 역사적인 장소다. 두 나라의 국경 한가운데에는 거대하고 순백의 ‘피스 아치 게이트’가 양국의 굳건한 우호를 상징하듯 당당하게 서 있었다. 아치의 하얀 벽면에는 “May These Gates Never Be Closed (이 문이 절대 닫히지 않기를)”라는 문구가 깊게 새겨져 있었다.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과 파괴, 갈등의 뉴스를 떠올리며, 나는 그 문구 앞에 서서 진정한 평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용히 되새겨보았다. 이곳은 신기하게도 물리적인 철조망이나 장벽이 없다. 피스 아치 게이트를 중심으로 좌우에 서있는 국경 표석들을 이은 가상의 중심선이 곧 국경선이 된다. 경계선은 존재하지만, 누구도 막아서지 않는 평화의 공간인 셈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평화의 공원에는 애틋한 슬픔도 공존한다. 시애틀에서 건축 사업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의 고교 동창 친구의 이야기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유학 중인 친구의 큰 딸을 가족 초청 미국이민 신청을 수차례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었는데, 이 때문에 가족들은 매년 한 두 번씩 바로 이 피스 아치 공원에서 상봉하여 눈물의 재회를 나누었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 땅으로 나뉘어 서로를 안아줄 수밖에 없는 애처로운 가족의 사연을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슬픈 사연을 품고 있긴 하지만, 이곳은 맛있는 레스토랑과 저렴한 주유소, 소박한 면세점들이 모여 있어 나 역시 북미를 오갈 때마다 종종 들러 쉬어가던 추억 가득한 아지트이기도 하다.

국경을 정원으로 만든 곳, 밴쿠버의 품으로 스며들다
피스 아치 공원의 내부는 알면 알수록 흥미롭다. 미국 영토와 캐나다 영토를 나누는 기준이 다름 아닌 화단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국기 모양과 상징적인 색깔의 꽃들로 화려하게 꾸며진 화단들을 보고 있으면, ‘국경’이라는 딱딱하고 삼엄한 물리적 경계를 이토록 아름다운 정원으로 승화시킨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얀 게이트 주변과 넓게 펼쳐진 잔디밭 위에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평화롭게 산책을 즐기거나, 서로의 행복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장벽 없는 국경에서 느껴지는 그 완벽한 평화로움이 내 마음속까지 따뜻하게 채워주는 듯했다. 이제부터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고속도로 99호선(BC Highway 99)이 힘차게 뻗어 나갔다. 이 공원 북쪽에서 캐나다 국경선을 따라 동서로 평행하게 달리는 국경 도로의 이름은 그 유명한 ‘0번 에비뉴(0 Avenue)’다. 북미의 도로 체계는 참 직관적인데, 동서로 뻗은 도로는 ‘에비뉴(Avenue)’, 남북으로 달리는 도로는 ‘스트리트(Street)’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시애틀이 역동적이고 세련된 도시의 활기를 뿜어냈다면, 이제 마주할 캐나다 서부 최고의 도시 밴쿠버는 대자연과 도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곧 할리데이비슨의 묵직한 배기음이 캐나다의 대지 위로 울려 퍼질 것이다. 이번 북미 라이딩은 단순히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주행이 아니다. 쿵쾅거리며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참된 의미를 찾으며, 신이 내린 대자연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소중한 구도의 길이라 생각한다. 지평선 너머로 펼쳐진 거대한 캐나다의 평화로운 대지의 품을 향해, 나는 밴쿠버의 도심 속으로 서서히, 그리고 깊숙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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