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명절이면 텅 빈 시내 도로를 즐기며 이곳저곳을 달리거나, 아예 날을 잡아 긴 여행을 떠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긴 추석 연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은 단 하루뿐이었다. 다음 날 출근을 앞두고 있었기에 순천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가는 길이 아름답고 평탄했으면 했다. 작년 추석엔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여수로 향했는데, 30분째 이어지던 차량 행렬에 완전히 질려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갈치조림도 훌륭했지만, 평소라면 40분이면 갈 거리를 두 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명절엔 유명 관광지는 피하는 게 좋겠다고 결심했다. 이번엔 목적지를 신중히 고르기로 했다. 그때 문득 선암사가 떠올랐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아마도 많은 사람이 가을을 고르지 않을까.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이 서서히 식고, 하늘이 높아지며 바람이 달콤해지는 때. 바이크를 타고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면 이렇게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평생 살아온 서울을 뒤로하고 무작정 소도시로 이사 온 일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이런 소소한 순간마다 그 선택이 옳았음을 느낀다.
조계산 등산로 중에서는 선암사에서 장군봉을 왕복하는 코스가 가장 짧다고 해서, 첫 등산인 나에게 딱 알맞은 난이도일 거라 생각하며 물병이 든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내려오는 길 역시 조심스러웠지만, 오를 때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순간, 정상에 섰을 때의 성취감과 하산길의 가벼움 때문이 아닐까. 하산 후 바이크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등산으로 흠뻑 젖은 옷을 시원한 바람이 말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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