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각선 횡단보도와 배달라이더의 선택

M스토리 입력 2025.09.16 14:44 조회수 65 0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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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길 바라셨고, 그 일환으로 해외여행도 자주 다녔다. 그 가운데 1990년대 중반 호주를 여행했을 때의 경험이 아직도 선명하다. 당시 도심의 풍경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지금 보면 대단할 것 없지만, 당시로서는 “아, 이것이 보행자 우선, 사람 우선의 정책이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된 장면이었다. 모든 횡단보도가 X자로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 X자 형태의 횡단보도는 스크램블 인터섹션(Scramble intersection), X-Crossing, Diagonal crossing 등으로 불리며 국내에서는 ‘대각선 횡단보도’로 통한다. 찾아보니 1940년대 말 미국과 캐나다에서 처음 시도되었으나, 차량 통행이 우선이던 시절이라 보급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국내 최초 설치는 1984년이며,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불과 10여 년 전부터다.

이 대각선 횡단보도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배달 산업이 급성장했고, 수많은 라이더들이 생업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함께 교통법규 위반 문제가 심각해졌고, 경찰의 단속과 계도도 잦아졌다. 그중 가장 위험한 위반 중 하나가 신호 위반이다.

그런데 얼마 전, 도로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보았다. 대각선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한 배달 라이더가 신호 대기 중 이륜차에서 내려 끌고 횡단보도를 건넌 뒤, 건너편에서 다시 올라타 좌회전에 성공한 것이다. 법을 어기지 않고도 목적지를 향해 유유히 떠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불법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유쾌했기 때문이다. 라이더가 법, 안전, 시간이라는 세 가지를 모두 잡은 듯 보였다.

하지만 도로교통법을 들여다보니 단순히 웃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도로교통법 제13조(차마의 통행) 제1항은 “차마의 운전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차도로 통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륜차는 분명 ‘차마’에 해당한다. 다만 제13조의2(자전거등의 통행방법의 특례) 제6항은 “자전거 등이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도로를 횡단할 때에는 내려서 끌거나 들고 보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이륜차를 끌고 보행한다면 일시적으로 ‘보행자’로 인정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내 개인적 의견이다. 다만 ‘끌고 간다’는 행위가 진정한 보행으로 인정받으려면 시동도 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법은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불법이 아니라고 해서 곧바로 합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례는 최소한 라이더들의 안전과 효율을 동시에 고민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라이더들도 결국 사람이다. 누구보다 안전을 원할 것이고, 동시에 시간은 곧 돈이기에 그 균형점을 찾고자 한다. 나는 위험한 신호 무시, 중앙선 침범, 횡단보도 질주 같은 행위를 결코 옹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라이더들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륜차는 신체가 노출된 상태로 주행하는 만큼, 스스로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본인의 건강과 생명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안전 역시 마찬가지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라이더들의 변화는 곧 안전문화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준법정신으로 무장한 라이더들이 도로 위를 당당히 달리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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