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길에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우연히 어느 여자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중년 여자가 먼저 어려보이는 여자에게 말을 건넨다.
“어머, 오늘 예뻐졌네.”
그러자 어려보이는 여자가 말을 받는다.
“머리만 한 건데요, 뭐.”
“너무 너무 잘 됐다, 얘… 어디서 했어?”
이렇듯 여자들은 만나면 ‘예뻐졌다’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 종일 예뻐지기 위한 정보를 교환한 후 ‘내일 다시 만나자’ 약속하고 헤어진다.
예뻐지기 위한 정보는 다양하다. 패션은 물론이고 헤어스타일과 피부 관리, 다이어트 비결, 탈모 예방 및 치료제 등 헤아릴 수가 없다.
반면에 남자들은 만나면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자 약속해놓고도 작금에 경기가 불황인 것은 경제정책이 문제라며 서로가 경제전문가인양 떠든다. 하지만 그게 다 무능한 정치인 아무개 때문이라고 거세게 비판을 하고 나서 타락한 종교도 사회적 문제라고 종교를 들먹인다. 그러다 서로 의견이 엇갈리면 대판 싸우기도 하고 스포츠나 군대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게 일반이다.
그렇다면 남녀가 만나면 어떤 대화를 나눌까?
지난주에 젊은 직원들에게 물어봤더니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대개 오늘의 핫뉴스와 여행 그리고 맛집이나 음악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반면에 부부의 경우엔 젊은 부부는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중년이나 노년의 부부들은 자녀문제나 부동산 동향에 대해서는 다소 대화를 나누는 편이지만 그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래 살다보면 눈치로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추측컨대 상대의 능력이나 정신세계를 이미 다 꿰뚫고 있어서 기대나 흥미가 없어졌고 그래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그나마 어쩌다 주변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서 귀를 기울여보면 여자가 주로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고 남자는 <소귀에 경 읽기> 식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벌컥 화를 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대화의 내용은 대개 남자노인의 옷매무새나 행동, 험한 말버릇 같은 불량한 생활습관을 여자노인이 지적하며 수정을 요청하는 것인데 남자노인은 이미 수십 년간 몸과 정신에 깊이 밴 것이라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의 경우는 어떤가!
아내를 만나던 젊은 시절에는 지금처럼 경제가 풍요롭지 않아 주로 독서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다방이나 술집에서 문학에 대해 토론도 가끔 했는데 아내가 말없이 내 말을 잘 들어주어서 나는 아내가 이해심 깊고 성정이 따스한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하여 어느 날 나는 메모지에 짧은 시(詩)를 한 편 써서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아내가 찬찬히 읽어보고 “다음에 만나서 얘기해요.” 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답을 듣기 위해 다음날 다시 만났고 또 다음날도 만났고, 다음날이 다음날로 이어지다 결국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마치 아내에게 대답을 듣기 위해 오늘도 계속 만나고 있는 것만 같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가 아내에게 무슨 시를 써줬고 또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혹시 <멋져요.>라는 대답을 듣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면 낯간지러운 숙맥 같은 시절이 아닐 수 없다.
요즘도 어쩌다 시정(詩情)이 동하면 한 편 씩 써서 아내에게 건네준다. 그러면 그때마다 아내는 “여전히 촌스러운 말뿐이네요! 새로운 단어 좀 찾을 수 없어요?”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러면 혹시 ‘지금 이 말이 그날 내게 들려주려던 말이었나!’ 낙심을 하게 되고 ‘이별을 해봐야 시를 쓸 수 있다.’는 누군가의 조언이 떠올라 ‘아내와 헤어져 봐야 하나!’ 하고 생각을 꼬누어보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예부터 회자되고 있는 절창의 시가 대부분 연인과 이별하고 그리워하는 시가 아니던가!
가령, 삼국시대의 <가시리>나 <황조가> 그리고 국민민요인 <아리랑>부터 김소월의 <진달래>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이별가가 그렇지 않은가?
하여 그 가운데『삼국사기』유리명왕편에 나오는 <황조가>를 다시 읽어보았다.
훨훨 나는 저 꾀꼬리 翩翩黃鳥 (편편황조)
암수 서로 노니는데 雌雄相依 (자웅상의)
외로울 사 이내 몸은 念我之獨 (염아지독)
뉘와 함께 돌아갈고 誰其與歸 (수기여귀)
읽으면 읽을수록 이 시를 썼다는 유리왕과 나는 같은 처지인 것만 같다. 나 역시 요즘 지방 Y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관계로 아내와 이별 아닌 이별을 하고 있기에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소절을 이렇게 다시 번역하고 싶다.
<누구와 함께하러 돌아갈고>로.
아울러 챗GPT에 <유보된 대답>이란 제목으로 시를 한 편 부탁해 보았다.
바람 속 속삭임 같아라
말해지지 않은 말들 속
진실은 숨어있고
시간은 답을 품으리
문뜩 직박구리 한 쌍이 사무실 울타리 옆 벚나무 가지에 날아와 앉아 다정히 지저귄다. 그 소리가 아릿하게 가슴을 쫀다. 마치 전령사(傳令使)처럼 내게 어떤 대답을 아내대신 전해주는 것만 같다.
오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