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석별 이후

M스토리 입력 2024.09.30 16:34 조회수 976 0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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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핸가, 추석 무렵에 장모님을 찾아뵈었을 때 장모님이 청포도를 소반에 담아 내오셨다. 며칠 전 장인어른의 여동생들인 고모님들이 다녀가시며 홀로 계신 올케언니 드시라고 가져 온 포도란다. 청포도는 여름철 과일이다. 그런데 이 가을에 청포도라니! 알고 보니 미국산 수입 청포도였다. 하여 풍미는 다소 반감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포도는 포도라 달고 향기로웠다.

청포도를 보면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가 생각난다.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중략)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중략)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두렴

이 시를 읊다보면 마치 기다리던 누군가 불쑥 나를 찾아올 것만 같다. 아니 내가 누군가의 손님이 되어 찾아가고 싶기도 하다.

언젠가 한 청년이 우리 집에 들렀다. 어머니가 그를 ‘무영’이라고 불렀다. 그는 어린 시절에 우리 동네에서 살다가 서울로 떠났는데 청년이 되어‘사람들이 보고 싶고 궁금해서 찾아왔노라’ 했다. 그가 누구를 보고 싶어 했는지 몰라도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들러서 어머니가 떠주신 물 한 그릇 마시고 떠나갔다. 아쉬운 듯 뒤돌아보며 짓던 그의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이라 했던가!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게 되는 게 우리네 일상(日常)이 아닌가 싶다.

지난해 가을에는 모처럼 학창시절 동네에서 어울려 지냈던 친구들을 Y시 B면 면사무소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났다.

IMF 사태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친구S가 25년 만에 귀국을 한 게 계기가 되어 만나게 된 것이다.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근무했던 후배A가 건강상 장거리여행을 할 수 없다하여 그가 사는 마을 면사무소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후배A 역시 IMF 때 잘 다니던 사무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두었던 약간의 돈으로 농토를 마련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또 한 친구K는 아내와 함께 동행을 했는데 C시에 위치한 YP화학회사에서 전무이사로 근무하고 있고 또 한 친구H는 광고사업뿐 아니라 부인의 유치원 운영을 돕느라 얼굴보기가 힘들었는데 마침 Y시 인근 D읍에 세컨하우스를 짓게 되어 틈을 내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각자가 바쁘게 살다보니 전화조차 하지 못하다가 친구S가 제비처럼 넓디넓은 태평양을 건너오게 되니 기폭제랄까, 반가움에 불원천리(不遠千里) 달려온 것이다.

만나서 악수하고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옛날식 시골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난 일들을 추억하며 서로 간직하고 있던 기억의 퍼즐을 맞춰보았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함께 가꾸어온 꽃밭에서 꽃을 한 송이 씩 따서 서로에게 안겨주는 것 같았다. 향기롭다. 내가 알지만 누구는 모르는 또 누구는 기억하지만 나는 까맣게 잊어버렸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모이고모여 스테인드글라스가 완성되기도 했다. 또 머리가 희끗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원형인 부모님을 회상하고 자녀들 앞날도 살피는 훈훈한 하루였다. 그리고 우리는 또 기약 없이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해가 지나고 장마와 열대야를 지나고 어느새 가을이 왔다. 추석도 가까워졌다.

아침출근길에 라디오 FM 진행자가 『마음이 쓸쓸한 거보니 가을이네요.』하고 어느 독자의 편지를 읽어주는 것을 듣고 가을을 실감했다. 가을이라 쓸쓸한 것인지, 쓸쓸해서 가을인 것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날 기약 없이 헤어졌던 우리는 전화로 추석 연휴 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마침 친구H가 당직 근무라 그날 그의 사무실 인근에서 만나기로 했다. 음식점이 대부분 문을 닫는 때니 각자 추석음식을 싸와서 나눠먹기로 하고 나니 어린 시절처럼 그날이 기다려진다.

그랬다. 우리 어린 시절엔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추석빔을 차려입고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친척 형제들을 만나 함께 극장구경도 가고 운동장에 모여 체육대회와 마당놀이도 즐기는 것이 풍습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풍습이 거의 없어지고 개인이나 가족단위 행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부류가 많아졌고 체육대회나 마당놀이보다 해외여행을 많이 떠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추석명절>을 <가을휴가절>로 이름을 바꿔야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의식과 문화가 바뀌었어도 변함없는 것이 있다.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롭게 즐거운 사람은 더 즐겁게 만드는 계절’이 가을이요 추석인 것이다. 만나야할 사람을 못 만나면 더 외로울 것이고 운명적으로 만나야할 사람을 기어코 만나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기에 말이다.

나는 여건상 어디 멀리 여행을 갈 형편이 못되고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고향도 찾아가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바람처럼 훌훌 여기저기 다녀오곤 한다. 고향마을과 뒷산, 어느 소녀가 살던 이웃동네 그리고 출렁이는 호수와 호숫가의 커피숍…

그리고 그곳을 함께 걷고 덧없이 떠들던 지인들을 마음으로나마 만난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나 전화번호를 몰라 연락조차 되지 않는 친구들도 다, 속절없이 헤어졌지만…

가야지 떠나야지/뒤를 보고 남는 마음//
철새는 가고 온다/서운해도 그리워도//
잊으려/잊으려는가
낙엽 지는 가을날 (1964.)

장인어르신(작고시인 이강준)이 30대 때 쓴 시 <석별(惜別)>전문이다.

가을 날,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철새처럼 가고 오는 인생의 지난한 여정을 돌아보고 반추하게 하는 절창이다. 누구나 각자 석별에 대한 감회는 다르겠지만 서운해도 그리워도 다 떨치고, 잊으려 해도 차마 잊을 수 없는, 미련이 남아 그리운 사람을 한 사람쯤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가을 문턱에 서서 그 누군가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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