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칼 가는 날

M스토리 입력 2023.03.16 10:45 조회수 2,120 0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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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노는 것을 보면 AI시대에도 영락없이 여자아이들은 인형놀이나 소꿉장난을 하고 남자아이들은 게임이나 총·칼 놀이를 즐겨한다. 아내나 나 역시 어린 시절엔 그랬을 것이다. 그래 그런지 아니면 본능적인 것인지 나는 칼만 보면 두려움이랄까 미묘한 긴장감이 든다. 다른 사람들 집에 다니러 가서도 과도를 보면 역시 사과라도 깎고 싶은 충동이 든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마치 지구의 중력처럼 칼에도 어떤 알 수 없는 인장력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다.  

<도검(刀劍)>을 순수한 우리말로 <칼>이라 한다. 양날의 칼은 검(劒)이라하고 외날은 도(刀)라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혼용하거나 칼집이 있는 칼을 <검>, 칼집이 없는 칼을 <도>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칼이든 아침 이슬을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새가 마시면 노래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듯이 그 쓰임새에 따라 칼의 명칭이 결정된다고 하겠다. 모두 알다시피 향기로운 과일을 깎으면 과도(果刀)요, 장군이 열병식에 사용하면 예도(禮刀)가 된다. 반면 소를 잡으면 우도(牛刀)가 되고 전시에 살상용으로 사용하면 총검(銃劍)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이따금 분리수거 통에 버려진 칼을 보게 된다. 일회용면도칼에서부터 사무용 커터, 과도나 식칼 등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 가운데 과도나 식칼은 아직 쓸만한 것 같은데 왜 버려진 것일까?
요즘은 각 가정 마다 칼질할 일이 많지 않아 그런가, 아니면 쓰다가 날 갈기 귀찮아서 그냥 버리는 것일까, 궁금하다.
하지만 우리 집은 버릴 칼이 없다. 몇 개 되지 않아 그렇기도 하지만 칼 마다 사연이 있기에 차마 버리고 새 칼을 구입하지 못한다.(면도칼은 제외) 어떤 과도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쓰시던 것이라 아이들 나이보다도 햇수가 더 오래된 것도 있다. 칼을 버리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매주 아내가 칼을 갈아 달라고 나에게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들이 육식을 좋아해서 고기 썰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느낌에 칼날 상태가 매우 양호해 그냥 써도 될 것 같은데 아내는 꼭 갈아달라고 요청한다.

『칼 갈아놓으세요.』
아내가 시장에 가기 전에 나에게 한 마디 툭 던진다. 푸줏간에 다녀오는 동안 갈아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내의 등 뒤에다 대고 
『지난주에 갈았는데 또 갈아?』하고 귀찮아한다. 그러면 아내는
『일주일 지났잖아요. 그 칼로는 무도 안 썰어져요.』한다.
「왜 아들 시키지. 고기 먹을 사람은 그 녀석인데.」라고 항의한다. 아내가 돌아다본다. 
『당신도 같이 먹잖아요. 그리고 당신은 시어머니 아들이고, 걔는 내 아들이니까.』

포정해우(庖丁解牛)란 고사성어가 있다. 『장자』에 나오는 소백정 포정의 칼은 쇠고기의 살과 뼈 사이에 난 틈과 빈 곳을 따라 칼을 다루어 19년간이나 칼을 갈지 않고 썼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에게 그런 고도의 고기 써는 기술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칼 가는 솜씨가 시원치는 않지만 주일 마다 한 차례씩 내가 갈아주면 되니까. 
고기를 많이 썰 일이 아니라면 사기사발 뒤 꺼칠한 굽에다 몇 번 문질러 날만 세워도 그만이건만 나는 아주 오래전에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동네철물점에서 구입한 숫돌에다 썩썩 칼을 간다. 우선 먼저 거친 숫돌에 초벌 갈고 고운 숫돌로 날을 세운다. 날을 다 세웠다싶으면 엄지손톱에 푸릇푸릇한 부분을 슬쩍 슬쩍 대본다. 손톱이 날카롭게 긁힌다. 다음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날을 살펴본 뒤 손가락 살에다가도 슬그머니 대본다. 은근히 두려운 느낌이 든다. 그러면 끝난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수돗물을 틀어놓고 날과 칼 전체를 검지와 엄지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문질러가며 깨끗이 세척한다. 이때 조심해야 한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칼을 떨구거나 손을 벨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정신을 집중하여 조심조심 세척을 한다. 마치 명상하는 기분으로.
마침내 아내에게 칼을 건네준다. 그러면 아내는 원활하게 한 주일 동안 한석봉 어머니가 떡을 썰 듯 고기를 썰 것이다. 

칼에는 생명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劒)이 있는가 하면 생명을 죽이는 살인검(殺人劒)도 있다. 또 번뇌·망상을 삭둑 잘라내는 취모검(吹毛劒)이란 칼도 있다.
검도에서 활인검은 정검(正劒)이요, 살인검은 사검(邪劒)이라 한다. 제멋대로 칼을 휘두르면 살인검이 되고 오로지 기본대로 수련하면 무심(無心)의 활인검이 된다고 하는데, 내가 숫돌에 간 주방용 식칼은 어디에 속할까 모르겠다. 산 토종닭이나 생선을 토막 내거나하여 우리가족을 모두 먹여 살리니 말이다.
취모검은 대단히 예리한 칼로 검 위에 머리카락을 가로로 놓고 입으로 훅 불면 머리카락이 싹둑 잘린다는 칼이다. 하지만 이 칼은 수행자가 마음공부(瞑想) 하는데 쓰는 상징적인 칼로 칼날이 없고 자루만 있는 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리한 칼날로 번뇌·망상을 베어내 정신을 맑게 하는 지혜의 칼이다. 

부처님의 제자 쭐라반따까가 부처님에게 하얀 걸레를 하사받아 <먼지를 닦자>하고 주문을 외며 수행도량을 말끔히 닦아나가다 마침내 도를 깨쳤듯이 매주 하루나마 나도 <칼을 갈자>주문을 외며 칼을 갈아본다. 혹시 깨달음의 기회가 주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미욱한 마음으로 어느 날은 수없이 떠오르는 번뇌·망상을 깨끗이 베어낸다는 심정으로 칼을 간다.(그런 생각이 망상인 줄도 모른 채)

이번 주에도 아내는 칼을 갈아달라고 요청을 할 것이다. 아내가 나에게 명상의 시간을 마련해주는 소중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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