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라이더의 가을

M스토리 입력 2022.10.18 14:23 조회수 2,581 0 프린트
 

라이더의 가을은 여름옷과 겨울옷 사이에서 고뇌하는 사이 지나가버린다. 조금이라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누구보다 빠르게 두꺼운 옷을 입는 라이더들은 입추가 지난 시점부터 이미 패딩을 꺼내들었다. 나만 해도 이미 9월 첫주에 가죽자켓을 꺼내입었다. 오토바이를 한 번도 안 타본 사람은 9월 초에 가죽자켓이라니 대체 무슨 패션인가, 아니면 계절을 앞서가는 패셔니스타인가 싶겠지만 한 번이라도 타본 사람은 안다. 10시부터 4시 사이가 아니면 얇은 겉옷 한장으론 버틸 수 없다는것을. 출퇴근 시간에 바이크를 타려면 최소한 기모가 들어있는 방풍자켓이나 두꺼운 맨투맨, 바람막이 등의 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한 여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쏟아붓는 햇살 아래에서의 추억이 먼저 생각나는 바람에 얼마나 더웠는지를 순간 잊게 되는 것 처럼 가을하면 생각나는 단풍과 선선한 바람 때문에 가을이 보기보다 꽤 춥다는 것을 종종 잊곤한다. 하지만 각오해야한다. 아주 잠깐 사이에 갑자기 추워지는 요상한 대한민국의 간절기를 얕보면 헬멧 안으로 이를 딱딱 부딛히며 라이딩하게 될 것이다. 반바지에 후드집업 하나만으로는 그냥 집에 돌아가기를 포기할까 잠시 고민하게 되므로 아무리 한낮에는 덥다고 하더라도 여름옷은 얌전히 옷장안에 넣어 두는게 좋겠다. 인정하자. 이제 여름은 끝났다(지난 주의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추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다. 9월에서 10월 초 까지, 덥지도 아주 춥지도 않은 짧은 기간 동안은 매일매일 라이딩을 하지 않는게 인생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날씨가 계속된다. 애국가에 나오듯 높은 하늘과 흐르는 구름들, 스치는 바람과 햇살이 자꾸 밖으로 나오라고 말을 거는 듯 하다. 이 모든 것들의 시너지 때문에 가을은 다른 어떤 계절보다 투어의 계절로 느껴진다. 주섬주섬 라이딩 자켓을 껴입고 헬멧과 장갑을 착용하고 나서도 덥지 않은 날씨라니! 아무리 내리쬐는 햇볕을 사랑한다고 해도 약간 서늘하다 싶은 바람을 싫어할 수 있을까. 

불어오는 바람 만으로도 충분히 엔진열을 식힐 수 있게 되었을 때 떠나는 투어는 즐거움이 넘친다. 별일 없이, 그저 옆으로 드문드문 건물이 몇개 있는 한적한 국도를 달리다보면 없던 애국심도 생길 지경이다. 봄처럼 벚꽃이 흐드러지는 날씨도 아니고, 여름처럼 바다가 목적지가 아님에도 달리는 것 자체가 즐거운 날씨, 가을. 작열하는 태양에도 차분히 짙어만 지던 초록잎들이 점점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왜인지 몰라도 국도를 달리다보면 꼭 성격이 급한 나무 몇이 먼저 잎을 떨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주변 나무들은 아직 푸른 초록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노랗게 빨갛게 갈색으로 잎을 털어내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난다. 누가 성격 급한 한국나무 아니랄까봐. 

어쩐지 조바심이 나는 것은 라이더도 마찬가지다. 더 추워지면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껴입지 않으면 안장 위에 오를 수 없어지기 때문에 겨울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단 5분만이라도 더 타야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추워서 바이크는 안중에도 없고 외출하기 마저도 조금 겁나는 겨울이 오기 전에 재빨리 지금의 행복을 즐겨야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가을에 투어를 떠난 기억이 많다. 모닥불을 피워도 더이상 덥지 않은 날씨이기에 캠핑을 핑계로 불놀이를 떠난 적도 많다. 캠핑장이 위치한 동네의 특산물을 파는 로컬마켓에서 고구마나 호박, 밤 등 가을의 제철음식을 사서 바로 구워먹는 즐거움이란. 데운 청주를 호호 불어 마시며 별구경을 할 수 있는 날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계절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당장 즐겨야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을 빼서 캠핑장을 예약하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봄이나 여름에 바이크를 타기 시작해 추운 날씨를 체험해본적이 없는 초보 라이더들은 하루빨리 두꺼운 바람막이를 옷장에서 꺼내길 바란다. 아직 기온이 20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아 유난이라고 생각해 입는 기모후드, 스웨터 등은 소용없다. 가을부터의 라이딩은 방풍과의 싸움이니까. 라이더의 계절은 다른 사람들의 계절보다 반계절정도 빠르고, 동시에 늦다. 겨울은 누구보다 빨리, 봄은 누구보다 늦게 느껴지니까. 경험상 10월 둘쨋주쯤 부터는 핸들의 열선그립을 켜도 덥지 않을 것이다. 온종일 바이크를 타는 배달노동자 분들은 9월 중순붜 패딩과 방풍바지를 겸비하고 있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선구자들이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추울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옷장 깊숙히 있는 겨울 옷을 꺼내기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간절기용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 오들오들 떨고있다보면 패딩을 입은 라이더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여하튼 우리 모두 목토시와 방풍 장갑, 토시 등을 다급히 구매하지 말고 지금부터 겨울을 대비해 도토리를 묻어두는 다람쥐의 마음으로 조금씩 준비해두길 바란다. 겨울엔 생각만 해도 추워서 바이크를 어떻게 타냐는 말을 종종 듣지만,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라이딩의 즐거움이 또 있으니 시즌오프는 조금 잊어보자. 다가오는 겨울의 라이딩을 기다리며 가을의 모든 순간을 즐겨보자!                                              
 by 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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