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간한 ‘2025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던진 한 가지 질문이 국내 이륜차 산업계에 묵직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보고서에 담긴 질문 예시 중 하나로 “실외이동로봇의 도입이 택배 및 소화물 운송 분야에 빠르게 확산될 경우, 기존 이륜차 배송기사 등 종사자들의 생계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은 있는가?”라고 물음이 등장했다. 이 물음은 배달 라이더의 생계를 우려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히 배달 라이더의 생계 문제를 넘어, 국내 이륜차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
법적 기반 마련, 성큼 다가온 로봇 배송 시대
배달 로봇의 도입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24년 1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이륜차 외에 드론 및 실외이동로봇이 소화물 배송의 공식적인 운송 수단으로 포함됐다. 법적,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주요 플랫폼 기업들은 서비스 지역을 공격적으로 넓히며 기술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아파트 단지나 대학 캠퍼스, 도심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로봇이 음식을 배달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업계는 인건비 절감, 24시간 운영 가능, 교통사고 위험 감소 등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기술 개발과 서비스 범위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당장 배달 로봇이 배달 라이더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변화 속도는 미래로 갈 수록 점점 빨라질 전망이다.
상용 시장에 절대 의존하는 국내 이륜차 시장… 배달 로봇 확산 시 산업 생태계 붕괴 우려
문제는 국내 이륜차 시장의 독특한 구조에 있다. 국내 이륜차 시장의 90% 이상은 배달과 퀵서비스 등 상업적 용도로 사용되는 상용 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지금껏 이륜차 제조사와 수입사, 대리점, 부품 및 정비 업체 등 산업 생태계 전체가 이 거대한 상용 시장을 기반으로 유지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배달 로봇이 단거리 배달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기적으로는 배달용 스쿠터 수요가 급감하고,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질문은 배달 종사자의 생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이륜차 판매량 감소, 관련 일자리 소멸 등 더욱 심각한 산업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탈것’이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산업 생태계 전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산업의 체질 개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이제는 정부와 산업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배달 로봇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금물이다.
정부는 단기적인 배달 종사자 고용 지원책을 넘어, 이륜차 산업 자체의 체질 개선과 전환을 유도하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레저 및 개인 이동 수단으로서의 이륜차 문화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등 다각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산업계 역시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시급하다. 언제까지고 배달 시장에만 기댈 수는 없다. 이제는 상용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레저 및 취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안전한 라이딩 교육과 문화를 보급하며, 이륜차가 단순한 ‘배달 수단’이 아닌 ‘즐거운 이동 경험’을 제공하는 레저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질문은 정부를 향한 것이었지만, 그 답은 우리 산업계 모두가 함께 찾아야 한다. 배달 로봇의 등장은 위기이자 곧 기회다. 다가올 미래를 직시하고 선제적으로 변화를 준비하는 자만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