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는 거들 뿐] 흐르는 물처럼, 오래 달리는 사람

M스토리 입력 2026.10.16 14:49 조회수 3,449 0 프린트

오토바이는 거들 뿐. 16 김정명

 

클래식 바이크 라이더 김정명 씨는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클래식 바이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사람을 모으고, 행사를 만들고, 동호회를 키우며 국내 이륜차 문화의 한 장면을 직접 만들어왔다. DGR(Distinguished Gentleman’s Ride) 한국 행사를 이끌고, 2016년부터 ‘모즈 앤 락커즈’를 시작했으며, 트라이엄프 오너스 클럽(TOC)까지 직접 창단했다.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오토바이만이 아니다. 15년째 토목설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도 20년 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카페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고, 언젠가는 작은 위스키 바를 열겠다는 또 다른 꿈도 품고 있다.
그가 TOC에서 강조하는 말은 ‘Gently Go Fast’다. 빨리 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 결국 더 멀리 가는 것. 그의 삶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문장은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 빠르게 앞서가기보다 자신의 속도로 오래 달리는 것. 그리고 혼자 달리는 것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김정명이 생각하는 오토바이와 삶은 어쩌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 편집자 주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토목설계 엔지니어이자 클래식 오토바이를 즐겨 타는 김정명입니다. 

15년차 토목 설계 엔지니어잖아요.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보시는데요. 사실 저는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거든요. 다음 단계로 옮기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이유예요. 애사심이 엄청나다기보다는 지금 회사 대우나 여건이 생각보다 다닐 만해서, 이직에 대한 대안이 딱히 없기도 하고요.

토목 설계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해프닝이나 무용담도 있을까요?
네덜란드 출장에 갔을 때 일입니다. 발주처와 현지 업체 그리고 저희 회사가 모여서 실증 모델을 검증하고 최종 합의를 해야 하는 자리였어요. 당시 제 직급이 '대리'였는데 혼자 출장을 갔거든요. 그런데 현지에서 저희 측 요구안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발주처 이익에 따라 상황이 흘러가는 거예요. 심지어 저희가 고용한 협력업체마저 제 편을 안 들어줘서 7 대 1로 싸우는 구도가 됐어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서, '나는 절대 사인 못 한다. 우리의 제시안을 받아들이면 그때 사인하겠다'라고 과감하게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다행히 회사에서는 오히려 저를 칭찬해 줬어요. 이후 다시 네덜란드로 건너가 재협상을 진행했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죠. 연차가 낮을 때 혼자 위기를 맞이하고 임기응변을 발휘했던 일이라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입니다.
 
 
인터뷰 하는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재작년에 친구들과 함께 오픈한 카페 라이피(LIFEE) 입니다. 대학교 다닐 때부터 마음 한구석에 '나중에 꼭 카페를 차려보고 싶다'라는 버킷리스트가 있었거든요. 무려 20년 동안 간직해 온 꿈이죠. 사실 저 혼자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마침 시기와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그 깊숙한 서랍 속에 모셔뒀던 꿈을 펼치게 됐습니다.

직접 경험해 보니 정명 님이 생각하는 '카페라는 공간'의 진짜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요즘은 커피 맛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어서 맛없는 집을 찾기가 힘들 정도잖아요. 이제는 커피라는 음료보다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편안함'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카페에 오는 분들이 분위기 속에 편안히 머물다 가실 수 있도록 신경 쏟고 있어요.
 
 
오토바이는 처음에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군대에 다녀와서 복학 전, 잠깐 뮤지컬 무대 제작 팀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때 조감독으로 일하던 형님이 있었는데, '로얄엔필드 불릿 500: 밀리터리 블랙' 버전을 타고 다녔거든요. 양쪽에 탄통 두 개가 달려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아, 이거다! 내가 그동안 찾아 헤매던 드림 룩이 바로 이거였구나!' 하고 온몸으로 깨달았어요.

그때 엄청난 영향을 받았나 봐요. 현재 클래식 오토바이 씬에서 중요한 행사를 두 개나 맡고 있잖아요.
DGR 한국 행사는 기존 운영을 이어서, 2023년부터 총괄로 진행하고 있고, '모즈 앤 락커즈(Mods & rockers) 2016년에 친한 동생과 함께 시작한 행사입니다. 그저 클래식 오토바이를 타고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달리고 싶은 거였거든요. 그런데 국내에는 그런 문화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수익 모델이 전혀 없는 100% 비영리 활동이다 보니 제 시간과 사비를 쏟아부어야 하고, 매번 주변 지인들과 협력업체 분들의 손해와 도움을 받아서 힘들게 이끌고 있어요. 만약, 순수한 열정을 가진 젊은 친구들이 이어가고 싶다고 한다면 기꺼이 서포터로 물러나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생각도 있습니다.
 
 
라이더 동호회인 'TOC(트라이엄프 오너스 클럽)'도 직접 창단했죠?
국내에 트라이엄프 정식 수입원이 없던 2017년. 트라이엄프 오토바이가 전국에 몇 대 없었어요. 트라이엄프를 메인으로 운영되는 동호회도 찾을 수 없었죠. 그래서 제가 직접 만들게 됐습니다. 한두 명씩 모이다 보니 단톡방이 생겼고, 2018년 말에 '트라이엄프 코리아'가 한국에 정식으로 상륙하면서, 유저수 폭발과 함께 대형 클럽으로 성장하게 됐죠.

TOC를 이끌면서 가장 강조하는 운영 철학이나 슬로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Gently Go Fast'입니다. 언뜻 보면 앞뒤가 안 맞는 말 같지만, 그룹 라이딩을 해보면 이 뜻을 알게 됩니다. 소위 '토끼'처럼 빨리 달리면, 금방 지쳐서 휴게소에서 오랫동안 쉬어야 해요. 반대로 '거북이'처럼 느긋하게 달리면, 달리는 과정 자체가 휴식이기 때문에 쉬지 않고 꾸준히 달려서 결국 목적지에 더 먼저, 피로 없이 도착합니다. 속도 경쟁보다는 안전과 문화가 우선이라는 뜻이죠.

그리고 오토바이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깨기 위해 회칙부터 엄격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브랜드나 취미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결국 풍성한 문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거든요. 그 문화적 토대를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앞으로 계획중인 새로운 목표가 있을까요?
소소하게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비중이 작은 역할이라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퇴직 후, 작은 위스키 바를 운영하고 싶어요.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니라 노년에 여유를 즐기는 아지트 같은 공간으로요.

취미 영역에서는 '한국형 대형 DGR 기부 행사'를 직접 구축하는 것입니다. 장르나 브랜드를 불문하고 모든 라이더들이 모이는 전국 단위 대규모 기부 라이딩 행사로써요. 청재킷이나 청바지 같은 '청(Blue)'을 드레스 코드로 정해서, 수많은 라이더들이 도로 위를 달릴 때 마치 '푸른 물결'이 장관을 이루며 집결하는 그림을 상상해보세요.

라이더들이 오토바이만 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지방 도시도 살리고, 억 대의 기부금을 모아 사회에 환원하며 '이륜차 문화도 이렇게 멋지고 선하다'라는 걸 세상에 크게 보여주고 싶어요. 이미 트라이엄프 코리아 대표님께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적극 돕겠다'는 확답을 받아둔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정명이라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나눠주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 -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입니다. 인생이라는 게 남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기보다는,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주변과 어우러져 사는 삶이 훨씬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믿어요. 물론 각박한 현실에 지쳐 이 마음을 지키기가 쉽지는 않지만, 누구와도 언쟁하지 않고 친절하며 물 흐르듯 삶을 대하는 사람들을 롤모델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M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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