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는 거들 뿐] 욕심을 내려놓으니 운동도, 라이딩도 즐거워졌다

M스토리 입력 2026.09.16 15:17 조회수 10,631 0 프린트

크로스핏 코치 강경택이 말하는 오래 즐기는 힘

 

30년 동안 몸을 움직여 온 사람에게 운동은 더 이상 ‘잘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한때는 대회 우승을 목표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을 몰아붙였고, 그 과정에서 부상과 좌절도 겪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다시 찾은 것은 기록이나 순위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는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크로스핏 체육관 ‘힘(HIM)’을 운영하는 강경택 코치의 삶에는 운동과 오토바이라는 두 개의 바퀴가 있다. 하나는 몸을 단련하는 도구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반경을 넓히는 이동 수단이지만 그가 두 바퀴에서 발견한 것은 의외로 닮아있다.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오래 즐기는 것.

오토바이 역시 한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놓아야 했지만, 다시 돌아온 그는 배기량과 브랜드의 경계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슈퍼커브를 타고 있다.30년의 운동 경력과 수많은 라이딩 경험 끝에 그가 건네는 이야기는 의외로 단순하다. 더 높이, 더 빠르게가 아니라 오래 함께하는 것. 그리고 서로를 나누지 않는 것이다.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양에서 크로스핏 체육관 '힘(HIM)'을 운영하고 있는 코치 강경택입니다.

올해로 운동을 시작하신 지 30년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 영향이 가장 컸죠.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운동하시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고 자랐거든요. 학창 시절에 《머슬&피트니스》라는 월간 잡지를 사서 정말 열심히 읽었던 기억도 나네요.

본격적으로 운동에 몰입하게 된 계기는 언제인가요?
군대 후임으로 사회에서 보디빌딩을 하던 친구가 들어왔어요. 그 친구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배우면서 체계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어요. 점점 운동이 재미있어지면서 '제대 후에도 평생 운동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확실한 결심을 갖고 서울에 왔죠.

이후 대한보디빌딩협회에서 운영하는 코치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숙식을 제공해 주는 주유소에서 일하며 밤낮으로 고생했어요. 코치아카데미에서 운동에 대한 기초 이론과 실기를 깊이 있게 배웠고, 이후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본격적인 트레이너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코치아카데미 시절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화가 있을까요?
당시에 국가대표 보디빌더분들과 조를 이루어 실기 운동을 하곤 했는데요. 첫 시합을 준비하던 때라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당시 까마득한 선배였던 강경원 선수가 저를 보시더니 "야, 너 등이 되게 좋다. 강씨는 운동 열심히 해야 돼!"라고 따뜻하게 격려를 해주셨어요. 그 한마디가 어린 저에게는 엄청난 용기와 자부심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보디빌더, 피트니스 트레이너에서, 크로스핏으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11년. 제가 피트니스 센터 팀장으로 있던 건물 지하에 크로스핏 체육관이 새로 오픈했어요. 호기심에 내려가봤는데 저에게는 신세계였어요. 거울을 보며 혼자 운동을 하는 보디빌딩과 달리,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서 소통하고 파이팅을 외치며 운동하는 방식이 제 성향에 더 잘 맞더라고요. 

다만 의욕이 너무 앞섰던 게 문제였어요.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초반에 무리를 하다가 팔을 크게 다치게 됐죠. 결국 깁스를 한 채로 크로스핏 트레이너 자격증 코스에 참석했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크로스핏의 진정한 매력을 깨달았죠. 한쪽 팔을 다쳤더라도 그 부위를 대체하거나 제외하고 할 수 있는 운동 방법(스케일링)이 무궁무진하더라고요. 팔 부상이 오히려 크로스핏의 포용성과 디테일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해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제가 딱 마흔 살이 되던 2015년에 현재의 크로스핏 '힘(HIM)'을 개업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태국에서 16개국 선수가 참가하는 크로스핏 대회가 열렸어요. 온라인 예선에 재미 삼아 응시했는데 덜컥 본선 진출권을 따냈죠. 하지만 개업 초기라 일주일 간 체육관을 비우는 게 부담스러워 포기하려 했는데 오히려 저희 회원분들이 "코치님, 이건 무조건 나가셔야 합니다!"라며 한목소리로 적극 응원해 주셨어요.

회원들 응원에 힘입어 태국으로 떠났고, 놀랍게도 40대 이상 마스터즈 부문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태어나서 제 인생 처음으로 1등이라는 걸 해본 순간이었어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되는구나'라는 걸 마흔의 나이에 몸소 깨달았죠. 그때의 자신감을 발판 삼아 이후 로잉 대회, 생활체육 대회 등 여러 오프라인 대회에 연달아 도전하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태국 대회 우승 이후, 하와이나 일본 등 해외 대회도 계속 출전했네요.
첫 우승 이후 제 머릿속엔 '다음 대회, 더 좋은 성적'밖에 없었어요. 어느새 순수한 즐거움은 사라지고 입상에 대한 압박감과 욕심만 남았죠. 성적이 조금만 안 나와도 자책하고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tvN 예능 《더 스트롱맨》 시즌 1에 출전했다가 상완 이두근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어요.

이후 한동안 대회를 멀리하다가 마음가짐을 완전히 고쳐먹고 다시 무대에 섰습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그저 사람들과 같이 땀 흘리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서요. 그 마음으로 떠난 하와이와 일본 대회는 제게 큰 동기부여를 주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대의 선수들이 순수하게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저들과 함께 끝까지 건강하게 땀 흘리고 싶다'는 건강한 에너지로 바뀌었죠.

체육관 운영과 수업 구성에 있어 본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전에 직접 수행해 보지 않은 와드(WOD: Workout Of the Day)는 절대로 회원들에게 시키지 않는다.' 이것이 제 절대적인 코칭 철학입니다. 예전에 한번은 제가 직접 수행해 보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계산해서 수업 프로그램을 짜서 가르쳐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서 회원분들을 지나치게 혹사시키게 되더라고요. 텍스트로 볼 때 어려워 보이는 운동이 막상 해보면 할 만하고, 쉬워 보이는 운동이 실제로 수행하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기나 장염으로 누워있지 않는 이상, 와드를 직접 완벽하게 수행한 뒤 수업에 들어갑니다. 오늘 인터뷰 오기 전 오전에도 내일 회원들과 할 운동을 미리 수행하고 왔습니다.
 
 
운동만큼 라이딩 경력도 오래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오토바이는 처음에 어떻게 접하게 되셨나요?
아버지께서 생전에 오토바이를 타셨어요. 어릴 때 아버지 뒤에 타고 달렸던 기분 좋은 기억이 남아있죠. 20대 초반 서울로 올라와 트레이너 생활을 할 때 출퇴근용으로 노란색 마그마125를 중고로 산 게 제 첫 오토바이였고요. 이후 산악 라이딩에 빠져서 매주 산에 들어가 10시간 넘게 오프로드를 즐기기도 했죠. 그때는 자려고 누워도 흙길만 떠오를 정도였어요.

그런데 오프로드 모임 안에서 오해가 생겼고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어요. 지금 같았으면 담담하게 해명하고 풀었을 텐데, 그때는 조용히 모임을 나오고 오토바이도 팔아버렸습니다. 한동안 사람도, 오토바이도 멀리하며 마음을 닫았었죠.

시간이 흘러 다시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하면서, 배기량 상관없이 궁금한 기종은 전부 사서 타봤어요. 수많은 기종을 거쳐 지금은 가장 클래식하고 실용적인 '슈퍼커브'를 타는데, 운전도 마음도 제일 편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내의 동료 라이더분들과 오토바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라이더분들께는 '절대 서로 편가르지 말자'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배기량이 크든 작든, 브랜드가 무엇이든 간에 취향과 형편에 맞춰 즐기는 방식이 다를 뿐, 우리는 모두 두 바퀴를 타는 라이더잖아요. 라이더와 비라이더 모두가 서로 미워하거나 편가르지 않고, 안전하게 땀 흘리고 응원해 주는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안전운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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