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줄이자 비로소 보이는 것들
엔진의 고동과 함께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익숙한 나다. 하지만 이번 하노이 여정에서는 잠시 바이크 키를 내려놓았다. 가죽 재킷 대신 편안하고 단출한 복장으로 헬멧 대신 카메라를 둘러멨다. 바이크와 함께 달릴 때는 놓쳤던 하노이의 숨결을 시속 4km의 걸음으로 천천히 들이마시기 위해서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찾는 이들에게 혹은 잠시 쉬어가고픈 라이더들에게 나는 주저 없이 이 세 곳을 권한다.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이 잠든 ‘바딘 광장’, 천 년의 기도를 품은 ‘쩐꾸옥 사원’ 그리고 아슬아슬한 삶과 낭만이 교차하는 ‘기찻길 카페 로드’다.
베트남의 심장… 고요한 울림이 있는 바딘 광장
이곳에는 1969년 서거한 베트남의 영웅 호찌민 주석의 시신이 생전 모습 그대로 안치되어 있다. 참배객들의 긴 행렬에 섞여 들어서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서늘한 침묵이 흐른다. 단, 매년 하반기(보통 9월~11월 사이)에는 시신 방부 처리를 위한 러시아 전문가들의 유지 보수 작업으로 인해 관람이 제한되니 방문 전 일정을 꼭 확인해야 한다.
베트남인들에게는 숭고한 장소인 만큼 예의는 필수다. 민소매, 짧은 치마, 슬리퍼 차림은 입장이 불가능하며 보안 검색도 철저하다.
서호에 핀 붉은 연꽃… 쩐꾸옥
사원 안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보리수나무가 가장 먼저 나그네를 맞이한다. 이 나무는 1959년 인도의 라젠드라 프라사드 대통령이 호찌민 주석에게 선물한 묘목이 자란 것으로 부처가 득도한 장소로 알려진 인도 부다가야의 성스러운 보리수에서 가져온 것이다. 반세기를 넘어 울창하게 뻗은 가지는 베트남과 인도의 우정 그리고 불심(佛心)을 증명하듯 방문객들에게 자비로운 그늘을 내어준다.
기찻길 카페 로드… 1미터의 스릴, 커피 향 짙은 낭만
철로와 집 사이의 간격은 불과 1미터 남짓. 평소에는 카페 앞 의자에 앉아 ‘쓰어다(연유 커피)’를 마시며 새장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즐길 수 있는 평화로운 골목이다. 하지만 기적 소리가 들리면 풍경은 순식간에 바뀐다.
최근에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어 예전처럼 자유로운 출입은 어렵지만, 여전히 그 좁은 철길 위에는 하노이 서민들의 삶과 여행자들의 낭만이 위태롭고도 아름답게 공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