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의 장엄한 모습.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좋은 날씨에 보기 어려운 곳이다.
라이더에게 대륙을 달린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오랜 로망이자 심장을 깨우는 도전이다. 2026년 6월 중순, 붉은악마라이더스클럽 김종성 회장과 할리데이비슨 부산 HOG 챕터 멤버들을 중심으로 15명의 라이더들이 가슴벅찬 백두산 등정을 가슴에 품고 중국 동북부의 심양시의 광활한 대지 위로 나아갔다. 심양에서 출발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천지를 거쳐, 압록강변을 따라 고구려의 숨결이 깃든 집안까지 이어진 대장정. 그 뜨거웠던 여정의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심양 북릉공원과 청조의 기운을 시작으로
심양 북릉공원에 있는 청 태종(홍 타이지) 동상. 심양은 청나라의 발원지이자 성경으로 불린 만주족의 중심지다.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대륙의 바람이 라이더들의 얼굴을 스쳤다. 투어의 첫 공식 집결지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 15명의 한국 참가팀 일행은 심양 국제공항에 도착 후 바로 대여버스를 타고 요녕성 심양시 도심에 위치한 ‘북릉공원(베이링공원)’에 도착했다. 청나라 제2대 황제 태종 홍타이지와 그의 황후가 잠든 소릉을 중심으로 조성된 이곳은, 입구에서부터 거대하고 붉은 중국 전통 양식의 문이 라이더들을 압도했다. 본격적인 출발을 앞두고 고풍스러운 건축물 앞에 선 멤버들의 표정에는 설렘과 팽팽한 긴장감이 교차했다.
공원 내부로 들어서자 웅장하게 서 있는 홍타이지의 거대한 청동 동상이 라이더들을 맞이했다. 동상 좌우로 황금빛 용 조각상이 하늘을 향해 요동치는 모습은 대륙의 기상을 그대로 뿜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번 대장정의 공식 슬로건인 ‘오토바이 타고 백두산·압록강 라이딩 투어’가 적힌 현수막을 넓게 펼쳐 들었다. "레츠 고(Let's go)!"라는 힘찬 구호와 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고, 부산 챕터의 자부심을 가슴에 품은 채 거대한 대륙 정복의 첫발을 내디뎠다.
옛 만주벌판을 가르며 심양에서 백두산으로
중국 고속도로를 주행 중인 모습.
우리는 곧바로 심양의 바이크 렌탈 샵으로 이동했다. 배기량과 모델별로 다양하게 준비된 센터 앞마당에는 투어에 나설 애마들이 한 줄로 장쾌하게 늘어섰다. 할리데이비슨 뿐만 아니라 중후한 미들급의 바이크들이 엔진을 예열하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현지 센터 관계자들의 환송을 받으며 전열을 정비한 라이더들은 일제히 스로틀을 감아쥐었다.
도심을 벗어나 백두산으로 향하는 고속화 도로에 접어들자, 대륙의 광활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붉은색 헬멧과 가죽 베스트를 착용한 라이더가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뒤편으로는 푸른 신록으로 뒤덮인 나지막한 능선들이 겹겹이 이어졌고, 잘 정비된 도로는 라이더들에게 최상의 주행감을 선사했다. 한 몸이 된 듯 갑자기 쏟아지는 비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순간, 일상의 모든 잡념은 날아가고 오직 엔진의 진동과 질주의 쾌감만이 온몸을 지배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에 서다
백두산 정상으로 가는 입구에 조성된 기념비.
여정은 이번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백두산(장백산) 천지로 향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관문이자 입구에 마련된 대형 기념비 앞은 세계지질공원 지정을 알리는 안내판과 함께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1440여 개의 가파른 계단 산책로가 구름 속으로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라이더들은 다시 한번 단체 사진을 남겼다. 긴 주행으로 피로가 쌓일 법도 했지만, 영산의 초입에 섰다는 감격에 모두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쳐났다.
마침내 도달한 백두산 천지 정상. 날씨가 시시각각 변해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가 거대하고 투명한 거울처럼 눈앞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그대로 투영된 천지의 장엄한 전경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만들었다. 아직 채 녹지 않은 백색의 잔설이 산등성이 곳곳에 남아 신비로움을 더했다. 부산 HOG 챕터 멤버들은 천지를 배경으로 ‘BUSAN CHAPTER KOREA’가 선명히 박힌 HOG 깃발을 힘차게 펼쳤다. 거친 바이크를 타고 대륙을 건너 이 신성한 국경의 정점에 섰다는 승리감과 벅찬 감동이 멤버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압록강의 풍경과 고구려의 숨결
압록강변의 G331국도 전망대. G331국도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끼고 백두산 인근을 지나는 도로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경도로로 불린다.
감동적인 백두산 하산을 마친 다음날 우리들은 국경을 따라 흐르는 압록강변의 ‘G331 국도’로 기수를 돌렸다. 북한 땅이 왼쪽 강 너머로 가깝게 바라보이는 압록강변 전망대에는 ‘장백비경 길선331(长白秘境 吉线331)’이라는 주황색과 빨간색의 거대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라이더들은 강바람을 맞으며 잠시 바이크를 세우고 주황색 프레임 벤치에 나란히 앉아 휴식을 취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가까운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북한땅에서 전해오는 묘한 긴장감과 애잔함이 동시에 교차했다.
통화시 기타 문화광장
이어 길림성 집안시(지안시)에 도착해 ‘통화시 기타 문화광장’을 찾았다. 탁 트인 광장 너머로 북한의 산과 마을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서 라이더들은 다시 한번 대형 현수막을 들고 굳건한 우정을 다졌다. 국경의 삼엄함보다는 대자연의 아늑함이 느껴지는 광장에서 멤버들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전라이딩의 여정을 기원했다.
이번 라이딩 투어의 종착지를 향해가던 라이더들은 고구려의 옛 도읍지였던 집안시에 보존된 ‘장수왕릉(장군총)’ 앞에 멈춰 섰다.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화강암 석조 무덤은 수 천년 세월을 견뎌온 고구려의 정교한 건축 기술과 웅장한 기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라이더들은 바이크에서 내려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의 거대한 발자취를 돌아보았다.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 기상이, 오늘날 거친 바이크를 타고 대륙을 누빈 부산 HOG 챕터 라이더들의 열정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이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무덤인 장군총.
심양의 청조 유적지에서 출발해 백두산 천지의 장엄함을 눈에 담고, 압록강 국경과 고구려의 역사적 대지까지 이어졌던 이번 라이딩 투어는 단순한 장거리 주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와 자연, 그리고 라이더 고유의 자유 정신이 한데 어우러진 일생일대의 대장정이었다. 매 순간 거친 엔진 소리로 대륙의 침묵을 깨우며 연대감을 다진 부산 HOG 챕터 멤버들. 그들이 타이어 자국으로 새겨 넣은 뜨거운 에피소드는 대지 위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자유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