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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를 흔히 지천명(知天命)이라 일컫는다. 50대의 나이에는 비로소 하늘의 뜻을 알고 개인의 고집보다는 하늘의 뜻에 순종하며 순리대로 살아가야 하는 시기로 말한다. 사회생활의 한 고비를 넘기고, 자녀들도 자신의 길을 찾아가지만, 몸은 한창때 보다는 민첩하지 않다고 느끼는 때이다. 그러나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평생 기계의 움직임과 구조를 탐구해 온 나에게는 이 시기가 오히려 또 하나의 기회를 의미했다. 공학도로서의 호기심과 삶을 다시 설계하고자 하는 열망이 만난 지점. 그때 내 앞에 들어온 것이 바로 바이크였다.
바이크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공학의 모든 분야가 집약된 구조물이다. 엔진의 폭발 압력을 효율적으로 동력으로 전환하는 열역학, 섀시를 지탱하는 고강도 경량 소재의 재료역학, 강성과 동시에 탄성을 추구하는 구조역학 및 코너링을 결정짓는 동역학, 바람을 가르며 다리는 유체역학 등 라이더의 감각을 기계와 연결하는 제어공학 등이 어우러진 총합 공학의 결정체이다.
50대의 후반에 처음 바이크를 입문하며 느낀 것은 ‘이 기계는 물리 법칙의 예술적 조합’이라는 점이었다. 학생 시절 배웠던 설계 공식과 설계 이론들이 실제로 구현된 형태를 만나는 경험은 언제나 짜릿하다. 특히 기준 중량 변화에 따른 무게중심의 이동, 프레임 강성 변화에 따른 핸들링 감각 차이, 서스펜션 세팅에 의한 피로도 변화 등은 공학도에게는 실험실을 벗어난 생생한 실험과도 같았다.
젊은 시절이라면 바이크의 속도감을 ‘짜릿하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50대에 경험한 속도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빠른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명확한 반응, 기계적 신뢰성,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는 깔끔한 조작감이다. 속도를 즐기기보다, ‘제어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안정된 움직임’을 즐긴다. 이는 공학자가 평생 추구해 온 가치를 닮아 있다. 기계는 설계 당시의 안전율을 고려하여 설계하고 제작한다. 기계는 신뢰를 줄 때 비로소 아름답다. 바이크도 그렇다.
바이크는 “직선주행보다 코너주행에서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는 말이 있다. 코너링은 단순히 핸들을 돌리는 행동이 아니다. 가속과 감속의 균형을 위한 적절한 스로틀(Throttle)의 조작, 시선의 방향, 신체의 무게 이동, 마음의 여유 등 그야말로 사람과 기계의 완벽한 조화만이 멋진 코너링의 결실로 이어지며 라이더의 안전 라이딩을 보장한다.
50대 후반의 라이딩은 인생의 코너링과도 닮아 있다.
삶도 직선으로 달리기만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풀 스로틀(Full Throttle)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상황에서는 감속해야 하고, 너무 빠르거나 늦으면 쓰러지기도 한다. 적절한 시선 처리가 방향을 결정하고, 불필요한 힘을 빼고 바이크의 성능을 믿고 자신을 믿는 여유로운 코너링만이 코너를 부드럽게 돌아 나갈 수 있다.
젊을 때는 몰랐던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나의 능력보다 하늘의 순리를 깨닫는 지천명(知天命)의 순간 인것이다.
공학자로서 바이크를 분석할 때 가장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제동 시스템이다. 그런데 50대에 들어서 라이딩을 시작하며 깨달은 것은 ‘브레이크는 생존 도구이자 인생 철학’이라는 사실이다.
젊을 때는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능력이 모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언제 멈춰야 할지 아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바이크에서 브레이크는 속도를 줄이는 장치가 아니다. 진행 방향을 다시 설정하기 위해 필수적인 시스템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때로 멈추고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다음 여정을 가능하게 한다.
빠르게 질주하는 중에는 속도에 비례하여 좁아지는 시야로 인해 정면만을 주시하고 지나지만, 여유로운 주행 속도에서는 상대적으로 넓은 시야가 확보되어 주변의 경관과 스쳐지나가는 라이더들의 엄지척 인사에도 여유롭게 답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평생 기계를 이성과 논리로만 접근해 왔다. 그러나 바이크와 함께한 시간은 기계에 대한 새로운 감성을 깨우는 과정이었다.
엔진의 진동이 전해주는 살아 있는 느낌과 핸들과 시트를 타고 전해지는 노면의 요철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조작의 감촉을 통하여 기계와 인간이 하나의 시스템이 되는 순간.
이 모든 것은 교과서로 배울 수 없는 영역이었다. 50대에 처음 경험한 그 느낌은 늦게 만났지만 더 깊게 스며드는 감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