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보다 먼저 이륜차 주차 환경부터 개선해야...

M스토리 입력 2026.08.14 14:08 조회수 1,303 0 프린트
 

이륜차 주정차 문제를 둘러싼 정책 논의가 단속 강화에서 주차 인프라 구축과 현실적인 집행 기준 마련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회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정부·지자체·업계·라이더 단체는 불법 주정차를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륜차가 주차할 공간과 이용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단속부터 강화할 경우 현장의 혼란만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이륜차 주정차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간담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이강일·김남근·민병덕·박정현·박주민·염태영 의원이 공동 주최한 이번 간담회에는 경찰청과 국토교통부, 경기도, 한국교통안전공단을 비롯한 관련 기관과 대한이륜자동차실사용자협회(이하 이실협), 라이더유니온, 자영업자 단체 등이 참석했다.

문제는 단속보다 어디에 세우느냐
이번 논의의 핵심은 불법 주정차를 단속할 필요가 있느냐가 아니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통행을 방해하는 불법 주정차는 개선해야 한다. 문제는 단속에 앞서 이륜차 운전자가 마음 놓고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하승우 수석위원은 현장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이륜차 주차 시스템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하 주차장과 생활권 주차 공간에서 이륜차 주차 구획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는 것은 물론, 주차요금을 내고 싶어도 이륜차를 고려한 결제·관리 시스템이 없다는 설명이다.

해외 사례도 소개됐다. 일본은 배기량 등에 따라 이륜차 주차 구획을 마련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일정 시간 무료 주차를 제공한다. 프랑스와 대만 역시 도심의 이륜차 이용 특성을 고려한 별도 주차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하 수석위원은 특히 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짧은 정차와 장시간 주차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배달원이 음식을 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수십 초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 만큼, 일정 시간의 업무 정차를 허용하면서 주차 구역을 함께 확대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도 공영주차장 5,900곳에 이륜차 주차면 32면
열악한 이륜차 주차 인프라의 현실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경기도 정찬웅 택시교통과장은 2025년 말 기준 경기도 공영주차장 약 5,900곳 가운데 이륜차 전용 주차면이 설치된 곳은 9개소, 총 32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륜차 주차면만 들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상당수 주차장 차단기는 자동차 전면 번호판 인식을 전제로 만들어져 후면 번호판을 사용하는 이륜차는 자동 인식이 어렵다. 이륜차가 주차장을 이용하려면 운영 시스템 개선도 필요한 셈이다.

경기도는 전용 주차구역 설치와 후면 번호판 인식 시스템 개선, 단속 인력 확충 등이 선행돼야 한다며 시행 시기를 충분히 유예해 달라고 건의했다.

경찰도 단속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인정
경찰청은 이번 시행령 개정이 새로운 주정차 의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주정차 금지 규정을 이륜차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과태료 집행 기준을 명확히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생계형 라이더의 경제적 부담은 주요 우려 사항으로 꼽았다. 안전신문고 등을 통한 주민 신고가 가능해지면 배달 라이더가 반복적으로 단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청은 택배 차량의 조업 주차와 유사하게 이륜차의 일시적인 업무 정차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횡단보도·교차로·보도 등 절대적인 주정차 금지구역을 제외하고 일부 황색선 구간에서 일정 시간 정차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공영주차장을 중심으로 이륜차 전용 정차 구역을 마련하고 주차장의 이륜차 이용 거부를 막기 위한 지침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경찰은 시행령 개정 직후 일괄 단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인프라 개선 기간과 충분한 유예 기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 번의 음식 배달에 두 번의 정차가 필요해
배달 산업의 특성 역시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국토부 홍일산 생활물류정책팀장은 배달 음식이 이미 국민 생활에 정착한 만큼 주정차 규제가 현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건의 배달에는 음식점 픽업과 고객 전달이라는 두 번의 정차가 발생한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상점이 주정차 금지구역에 밀집한 현실에서 라이더에게 먼 주차장에 세운 뒤 걸어오라고 요구하는 방식은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리 지연이나 아파트 출입 제한처럼 라이더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도 있는 만큼 단순히 ‘3분’이나 ‘5분’이라는 획일적인 유예 시간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륜차 주차장 확대와 함께 배달용 이륜차를 구분할 수 있는 별도 번호판도 제안했다. 다만 국토부는 영업용 이륜차 번호판 도입은 교육·자격·관리 등 제도 전반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필요한 것은 ‘단속 유예’가 아닌 명확한 기준
업계가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단속 면제가 아니다. 이실협 전창욱 회장은 교통질서와 시민 안전을 위한 단속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먼저 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륜차가 법적으로 주차가 가능한 자동차임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주차장 이용을 거부당하거나 거주자 우선 주차 등록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불법 주정차를 단순히 라이더의 문제로 규정해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합법적으로 주차할 공간이 부족하면 이용자는 결국 도로와 보행 공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해법은 단계적 접근
이번 간담회에서 제시된 해법을 종합하면 절대적 금지구역과 업무상 일시 정차를 구분하고, 동시에 합법적인 주차 공간을 확대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횡단보도와 교차로, 보도 등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공간은 이륜차 역시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반면 생활권 곳곳에는 공영주차장 일부 공간이나 상업지역 유휴 공간 등을 활용한 소규모 이륜차 파킹존을 촘촘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배달업을 위한 픽업존과 상하차 구역도 검토할 수 있다. 단순히 단속을 피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합법적인 업무 정차 구역으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방식이다.

주차장 시스템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후면 번호판을 인식할 수 있는 차단기와 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이륜차의 주차장 이용을 막는 관행 역시 개선해야 한다.

이륜차 주정차 정책의 시험대
이번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주차 문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륜차를 도시 교통의 한 축으로 인정하면서도 안전과 질서를 확보할 수 있는 정책 모델을 만드는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경찰은 보행 안전을 위해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라이더와 지자체는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 단속을 강화하면 생계와 행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양측의 주장에는 공통점도 있다. 불법 주정차는 줄여야 하지만, 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선언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 몇 면의 주차장을 만들고, 어떤 도로에서 얼마 동안 업무 정차를 허용하며, 누가 관리하고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이다.

이륜차는 이미 도시의 생활물류와 이동을 담당하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제도 역시 그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 단속을 강화하기 전에 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드는 것. 그것이 이륜차와 자동차, 보행자가 공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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