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의의 얼굴에 매겨진 가격표

M스토리 입력 2026.03.03 16:02 조회수 1,159 0 프린트

스티븐 잘리안 감독의 <시빌 액션(A Civil Action)>

 

이 영화는 통쾌한 법정 승부극이 아니다. 오히려 패배와 타협, 그리고 그 이후에 남는 불편한 질문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작품이다. 보스턴에서 승승장구하던 인신상해 전문 변호사 잰 쉴리크만은 처음부터 '정의'보다 '확률'을 말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성소가 아니라, 손해배상액을 극대화하는 시장에 가깝다. 전신마비 환자의 휠체어를 밀고 배심원 앞에 서는 장면은 미국 민사소송이 감정과 동정심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소비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매사추세츠주 우번에서 벌어진 어린이 집단 백혈병 사건은 잰을 계산의 세계에서 감정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원인 규명과 사과라는 점에서, 기존의 인신상해 소송과 결이 다르다. 문제는 법이 그 요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데 있다. 환경오염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높은 개연성 이상의 과학적 입증을 요구받고, 그 비용과 시간은 개인 변호사나 소규모 로펌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영화의 핵심 긴장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정의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자본이 오히려 정의를 가로막는 역설이다. 대기업은 지연과 절차를 무기로 삼고, 원고 측은 끝없는 비용 앞에서 서서히 붕괴된다. 하버드 출신의 피고 측 변호사 패처는 전형적인 악당이라기보다 체제 그 자체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민사소송이 진실 발견의 제도가 아니라, ‘진실처럼 보이는 것’만으로도 승패가 갈리는 게임임을 냉정하게 말한다. 잔인하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결국 잰은 패배한다. 파산하고, 명성을 잃으며, 사건은 미완으로 남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책임 추궁은 법정 밖에서 시작된다. 정부가 환경보호법을 근거로 기업에 거액의 정화 비용을 부과하면서, 이 사건은 개인의 패배를 넘어 사회적 정의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개인은 졌지만, 시스템은 뒤늦게 반응한 셈이다.

이 영화는 환경소송에서 일반 민사소송과 정부 주도의 법집행 소송이 어떻게 본질적으로 다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자가 대등한 당사자 간의 다툼 속에서 인과관계와 귀책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싸움이라면, 후자는 정부가 원고가 되어 환경오염자에게 정화 책임을 직접 부과할 수 있는 구조다. 이 차이는 환경·제조물책임 소송에서 변호사가 왜 반쯤 과학자이자 의학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잰 쉴리크만은 법정에서는 패배했지만, 그의 분투는 결국 사회를 움직였다. 그리고 영화는 묻는다. 정의는 언제나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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