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시계가 밤 9시30분을 넘고 있다. 꽃샘추위라 모자를 눌러쓰고 코로나 이후 습관처럼 마스크를 착용한다.
9시 40분. 마당으로 나가 차를 몰고 정문을 나선다. 라디오를 켠다. 가곡이 흘러나온다. ‘정다운 가곡’시간이다. 은은한 음률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불렀던 노래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누나의 모습이 생각나 정겹고 반갑다.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곧 이 우주 안에 그 누군가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왠지 쓸쓸하다. 홀로 음악을 들어서인가, 아니면 봄이라 그런가?
그런가보다! ‘봄을 탄다’는 말처럼 요즘 들어 부쩍 개꿈을 꾸고 망상이 수없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봄이 확실하다. 그런데 왜 개꿈과 망상은 봄에 유독 많은 것일까?
그 가운데 이런 망상도 있다. 지구는 일 년 365일 중 단 하루도 거꾸로 돌거나 괘도를 이탈하지 않는데 왜 ‘나는 자주 길을 거꾸로 걷거나 옆길로 새는 것일까?’
간혹 어딘가를 가다가 ‘이 길이 아닌가벼?’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느 날은 길을 덧들어 가파른 산길이나 어두운 골목길을 걷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걷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 바로 ‘교통사고’라는 악마의 길이다. 특히 음주운전에 의한 사고는 ‘막장’으로 가는 길이다.
음주운전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음주운전들을 하는 것일까?
최근에 인기가수 K씨가 음주운전 사고로 전 언론을 뒤흔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유명 연예인과 지도층 인사들도 수없이 음주운전으로 볼썽사납게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술을 마시고 우리를 실망스럽게 하는 것일까?
최근 5년간 발생한 우리나라 교통사고 8만2289건 가운데 6천419건(7.8%, 하루 3.5건)이 음주운전에 의한 사고란다. 특히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나 금요일 밤에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마치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듯이…
2018년 11월29일 국민청원으로 <윤창호법>이 국회를 통과해 ‘최고 무기징역’으로 처벌이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음주운전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심지어 대낮에도 수두룩하게 음주운전을 한다니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할 우리의 도로와 거리가 그야말로 걷기가 두려운 지뢰밭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다.
한문철 변호사가 ‘한블리 스페셜’ 방송을 통해 아무리 올바른 준법운전을 강조하고 있어도 음주운전 사고는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음주운전사고는 대부분 양심불량 뺑소니 사고다보니 일분일초가 급한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라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십분간>이란 골든타임 드라마가 그랬다. 도용심(정혜선 분)여사가 홀로 택시를 타고 한 시절 남편 김호철(이순재 분)과 행복하게 살았던 추억의 고장 춘천으로 나들이를 가다 그만 음주트럭에 추돌을 당한다. 심장이 멎으면 10분 이내에 응급처치를 받아야하건만 그 골든타임 10분을 놓쳐 도여사는 결국 타개하고 만다. 끝까지 분노와 안타까운 심정으로 드라마를 시청했다.
사실 나도 아주 오래 전에 음주운전을 할 뻔했던 적이 있었다.
운전면허를 따고 초보 시절, 중고승용차를 구입하여 자랑스럽게 고향친구들을 만나던 날이었다. 시장 인근 공터에 차를 세워놓고 포장마차에서 친구들과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마냥 즐거웠다. 그런데 거나해질 무렵, 친구 S가 불쑥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야, 차키 좀 줘봐.” “왜?” “재밌게 내기 한 번 하자.”
하여 나는 S에게 차키를 건네주었다. 그는 내 차키를 허공에 흔들어 보이며
“오늘 자리를 뜰 때 1분 안에 네가 이 키를 달라고 하면 네가 술값을 내는 거고, 키를 달라고 하지 않으면 내가 낸다, 어때.”
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친구들은 박수를 쳤고 나 역시 자신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좋아. 오늘 공술 한번 실컷 마셔보자.”
그러나 결과는 나의 참패였다. 술자리를 파하고 포장마차를 떠나려는 순간, 내가 S를 향해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야, 내 차키 줘-.”
그날 나는 술값을 내야했고 걸어서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집으로 가야했다.
한때 직장생활을 함께했던 선배 J는 회식이 있는 날이면 번번이 음주운전을 고집했다.
우리는 그런 그를 극구 만류했다. 그러면 그는 “다 비결이 있지. 눈을 크게 뜨고 노란 줄(중앙선 )만 따라가면 돼.”한다. 그러면 우리는 또
“선배는 눈이 건빵 눈이라 뜨나 마나고, 누군가 반대방향에서 똑 같이 술 취해서 달려오면 어쩔 거야.”하고 강력하게 조언을 하곤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올 초에 음주운전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는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불러 인기가 많았고 사업 수완도 좋아 직장을 떠나서 서민갑부로 성공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음주운전으로 그동안 쌓아올린 인기와 사업을 몽땅 다 날려버렸다.
음주운전자는 살인을 저지르려고 돌아다니는 불량배나 다름없다. 또한 도로의 시한폭탄이며 테러리스트다. 아니 타인과 그 가족들까지도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악마’라 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파트주차장에다 차를 주차했다. 오늘은 다행히 악마(음주운전자)를 만나지 않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방에 들어가자 안심이 된다. 하여 비로소 S시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휴대폰 버튼을 누르려다 그만둔다. 늦은 밤이라 혹시 심장이 약한 아내가 휴대폰 벨소리에 놀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하트무늬 이모티콘만 한 컷 띄워 보낸다. 나 잘 ‘도착’했다고 그러니 ‘안심’하라고, ‘꿈’ 잘 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