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북서부의 거대한 자연과 도시의 세련됨이 공존하는 곳, 워싱턴주 시애틀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이번 투어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현지 라이더들과의 라이딩이였다. 육중한 엔진음을 내뿜으며 집결지에 속속 도착한 시애틀 HOG(Harley Owners Group) 챕터 회원들은 우리를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나는 이들과 함께 본격적인 라이딩에 나섰다. 십여 대의 할리 데이비슨이 줄을 지어 도로를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언어와 문화는 달랐지만, 두 바퀴와 V-트윈 엔진의 고동을 사랑하는 라이더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우리는 완벽히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그들의 등 뒤로 펼쳐진 시애틀의 푸른 하늘은 유난히도 맑았다.

도시에 울려 퍼지는 애국심… 대형 성조기와 시애틀 시내
시애틀 시내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풍경이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펄럭이며 다가오는 대형 성조기였다. 커다란 깃대를 차량 뒤편에 단단히 고정하고 당당하게 시내를 가로지르는 모습에서 미국인 특유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엿볼 수 있었다.
거대한 성조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자유와 개척을 존중하는 이 도시의 분위기와 묘하게 어우러졌다. 빌딩 숲 사이를 달리는 성조기 차량과 그 뒤를 따르는 우리 라이더들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 속 장면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시애틀을 벗어나 남쪽의 타코마(Tacoma)로 향하는 길.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을 벗어나자 눈앞에 시원한 도로가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 보니 문득 이 순간을 온전히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도로변 안전한 곳에 잠시 바이크를 세웠다. 헬멧을 벗자 상쾌한 공기가 뺨을 스쳤다.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과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 모금의 물은 꿀맛 같았다. "잠시 쉬어간다"라는 것의 미학을, 이 광활한 미국의 도로 위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바이크의 열을 식히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새로운 설렘으로 가득 찼다

늦은 오후 무렵 다운타운행 버스에 올랐다. 깨끗하고 편안한 굴절버스 안에는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 맞은편 좌석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아이들은 물론이고 아버지까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화답해 주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낯선 이방인을 경계 없이 맞아주는 그들의 따뜻한 눈빛에서 시애틀이라는 도시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이런 소소한 인연들이야말로 해외 투어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이번 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바로 워싱턴주 곳곳에 위치한 전설적인 할리 데이비슨 매장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이스트사이드 HD은 세련되고 깔끔한 도시 벨뷔(Bellevue)에 있는 HD 매장으로 현대적인 시설과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세련된 매장 인테리어와 다양한 커스텀 바이크들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에메랄드시티 HD (린우드) 매장은 '에메랄드 시티'라는 시애틀의 별칭답게 보석처럼 빛나는 매장이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그레이트 노스웨스트 HOG(Great Northwest HOG)' 멤버들의 열정적인 활동상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사운드 할리 데이비슨 (메리스빌)매장은 워싱턴주 메리스빌(Marysville)에 위치한 매장으로 특유의 고즈넉하고 클래식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매장 곳곳에 묻어나는 할리의 역사와 전통은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린우드 매장에서는 '퓨젯 HOG(Puget HOG)'의 점장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멀리 한국에서 온 나를 극진히 환대해 주었고, 우리는 매장 앞에서 잊지 못할 기념 촬영을 하며 우정을 다졌다.

시애틀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유서 깊은 도로, 오로라 애비뉴(Aurora Avenue)의 역사적인 길을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달리는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회색빛 아스팔트 위로 할리 엔진의 웅장한 배기음이 도시의 빌딩 숲 사이로 공명했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로라 애비뉴를 달리는 순간만큼은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이었다.
시애틀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들을 뒤로하고, 며칠 후면 나는 이제 다음 목적지인 캐나다 밴쿠버를 향해 출발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은 종단 고속도로와 국도는 서로 연결되어있어 쉽게 국경을 통과 할 수 있다. 다만 국경을 통과하는 순간 도로명은 바뀐다.

고요함이 주는 위로… 켄트 마을의 저녁 풍경
길고 길었던 하루의 라이딩을 마치고 여장을 푼 곳은 워싱턴주의 조용한 마을 켄트(Kent)였다. 대도시의 화려함은 없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정취가 묻어나는 곳이며 오래전 고교 동창이 거주했던 작은 시골 도시로 내가 밴쿠버에 거주할 때 자주 와서 함께 건축 사업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마주한 켄트 마을의 노을은 이번 투어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였다. 붉고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낮게 자리 잡은 집들의 창문마다 하나둘 따뜻한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낮 동안의 거친 엔진 소리는 잦아들고, 평화로운 정적만이 마을을 감싸 안았다. 하루 동안 쌓인 라이더의 피로를 말없이 어루만져 주는 듯한 켄트의 저녁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내일 또다시 이어질 위대한 여정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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