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는 거들 뿐] 강단을 내려와 오토바이 핸들을 잡다, 경계를 허무는 아바드(Abad)의 영성

관리자 입력 2026.02.13 12:23 조회수 55 0 프린트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안준호 목사는 설교 단상 대신 카페의 에스프레소 머신 앞과 오토바이 핸들 위에서 그 답을 찾았다. 그에게 목회란 헌금을 걷는 일이 아니라, 100명을 고용해 생계를 책임지는 회사를 일구는 일이다. 목수였던 예수처럼 '노동자의 언어'로 세상과 대화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경계 너머로 나아가는 그의 파격적인 행보를 통해 현대 종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묻는다.
-편집자 주-

처음 뵙겠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참포도나무교회 담임 목사, (주)달려라커피 대표. 안준호입니다. 

목사라는 직업을 떠올리면, 설교하는 모습만 떠오르는데요. 커피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교회를 개척하며 제 모든 걸 걸었는데, 아무도 교회에 오지 않더라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제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어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라는 종교나 신앙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제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커피 마을>이라는 작은 카페를 열었어요. 역사적으로 절이나 교회, 성당이 마을 사람들이 교류하는 장소로써 역할을 해왔는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것만이 목회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단순히 목회를 설교하는 것, 교회를 설교 듣는 곳으로 축소시켰어요. 오늘처럼 저를 만나러 오는 분과 대화를 나누고 창업 상담도 하면서, 함께 고민하는 것이 경계 너머의 사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경계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교회와 사회가 정한 틀, 집단의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허무는 역할로써 목회를 하고 싶어요. 다중직 목회가 단순히 돈을 버는 역할이 아니라는 거죠. 제가 목사로 있는 교회의 교인이 100명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제 사업체가 100명을 고용할 수 있는 회사가 되길 바라요. 100개의 가정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거죠. 교인에게 헌금을 걷는 게 아니라 회사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가깝게는 직원과 가정, 크게는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제 목회 비전이에요.

자기소개에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목공소도 운영하셨잖아요.

카페 때문에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비용 문제로 셀프 인테리어를 해야만 했거든요(웃음). '이걸 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목공을 하다 보면 그런 걱정마저 잊게 돼요. 엄청 집중하거든요.

우리 삶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렵잖아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운동 30분씩 하기 등등요. 그런데 목공은 눈에 보이는 것에 즉각적인 변화를 줄 수 있어요. 가장 쉽고 명확하게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목수가 예수님일 텐데요. 기독교 신앙과 목공에서 공통점을 찾기도 했나요?
목공은 노동자의 언어예요. 예수님도 목수, 노동자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직관적인 언어를 사용했어요. 당시 선생들과는 달랐죠. 추상적이거나 어렵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현대인의 문제가 수작업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거라고 보거든요. 도시,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손재주를 키울 필요도 없고요. 손으로 하는 노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신학도 노동이 필요하고요. 사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노동이죠. 예배도 마찬가지고요. 예배의 어원도 '일하다, 노동하다, 섬기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바드.(Abad)에서 유래됐으니까요. 저는 노동의 재발견이 이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오토바이는 어떻게 타게 됐나요?
지금은 쿠팡 같은 배송 서비스로 집에서 편하게 식자재를 주문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마트나 시장에 직접 가야 했잖아요. 차로 가면 주차도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오토바이로 다녀오면 편하겠다.'라는 생각에 2016년에 처음 구매했죠.

목사와 오토바이.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은데요. 다른 이들의 시선은 어땠나요? 특히 다른 목사님들이 어떻게 바라봤는지 궁금하네요.

한국에서 목사나 교수라고 하면 권위적인 느낌을 주는데 반해,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그런지 학생들은 저를 친근하게 생각했어요. 다른 목사님이나 교수님들은 아마 당연히(?) 안 좋게 봤을 테고요(웃음). 신학교 강의 갈 때는 일부러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어요.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요?
네 바퀴에 의존하는 삶은 지루하잖아요.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그냥 굴러가는 거예요. 그런데 두 바퀴는 달라요. 운전할 때 항상 집중해고 주변 반응에 예민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삶을 더 가깝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거죠. 가끔 운전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도 하고요. 대부분 사람들은 네 바퀴처럼 인생을 철부지처럼 살아가요. 저는 오토바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재에 적응하고 수긍하는 게 더 위험하죠.

오토바이처럼 모험과 열망이 있는 삶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오토바이가 위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것을 감수하고 타는 거죠. 그렇지만 오토바이를 탈 때만큼은 누군가의 남편이나 목사로서가 아니라, 인간 안준호가 되니까요.

본인에게 오토바이란? 
오토바이는 저에게 행복이죠. 2025년 2월에 커브로 첫 전국일주를 했어요. 삶에 도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새로운 도전을 한 거죠. 경기가 힘들 때는 배달도 해봤어요. 어려운 시기에 오토바이가 저한테 되게 많이 도움이 됐어요. 코로나로 모든 행사가 취소되니까 커피차가 갈 곳이 없더라고요. 힘들어서 포기하려고도 했는데, 그 모든 과정에서 오토바이는 항상 제 옆에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오토바이 라이더 수는 늘어난 데에 비해, 사회적 인프라는 아직인 것 같습니다. 차도 위에서 당하는 대우만 봐도 알 수 있죠. 아직은 이륜차를 배려하는 문화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이 먼저 교통질서를 잘 지켜야겠지만요. 오토바이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하루빨리 갖춰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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