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평화공원
지난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지난 10월말에 제주도를 다녀왔다. 이번엔 할리데이비슨이 아니라 트라이엄프 스크램블러 400X를 가지고 다녀왔고 그 느낌은 사뭇 할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제주도를 바이크로 다녀오신 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제주도는 순환도로만을 타서는 그 느낌을 온전히 알기 어렵다. 해안의 샛길들을 돌면서 새로운 제주를 보게 되고, 중산간 지역을 돌면서는 제주의 또 다른 진면목을 보게 된다. 나도 이번에 알았다.
이번 투어는 당초 계획하기는 4박5일 일정으로 다녀오려고 했는데, 복귀 중에 폭우를 만나는 바람에 5박6일 일정이 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제주도에서의 일정은 비 한 방울 없는 화창한 날들이었다.

그동안 제주투어를 함께 한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는 지금 전체적인 예방정비 중이기도 하고, 이번 투어에서는 400cc 바이크의 큰 장점 중에 하나인 저렴한 선적비용(가장 싼 승객비용보다도 싸다)의 이점과 나름 비포장을 부담 없이 달릴 수 있는 스크램블러 장르의 장점을 활용해 제주의 진면목을 느껴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내 여행기를 쭉 구독하신 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사업차 얼떨결에 마련된(?) 아지트가 목포에 있다. 그래서 굳이 판교에서 새벽부터 무리해서 목포나 완도까지 한번에 주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추운 새벽시간(요즘 새벽시간은 한겨울이다)을 피해서 10시쯤 느긋하게 목포로 출발. 배기량의 차이가 상당해서 피로도가 누적될 수 있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400cc도 우리나라 정도의 땅덩이에서는 충분한 배기량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첫날의 일정은 판교에서 목포까지 440km로 마무리. 저녁은 목포의 맛집들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2일차의 일정을 위해서 휴식.
2일차의 일정은 완도에서 오전9시반에 출발하는 골드스텔라호에 바이크를 싣기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완도로 출발(출발 최소 1시간반 전에는 선적해야 한다). 편도 선적비용은 할리의 거의 5분의 1수준인 2만5,000원(400cc까지는 생활바이크로 분류하는 듯 400cc가 넘는 순간 편도 5만원으로 훌쩍 뛴다). 지금까지 여러 번 제주를 바이크로 다녀왔지만 항상 의자석을 예약했었는데 이번엔 매진으로 2등실(마루형)을 잡았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대부분의 승객이 객실에 머무르지 않고 홀의 공용 소파 등에 자리를 잡기 때문에 마루방을 4명 정도가 넓게 굴러다니며 쓰니 좋았다.

완도에서 출발하는 배편을 내가 선호하는 이유는 비용이 목포출발 보다 저렴하기도 하지만 운항시간이 거의 절반인 2시간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점은 아침부터 완도까지 1시간반을 넘게 100km를 달려야 한다. 그래도 바다 위를 달리는 것보다 바이크가 빠르기 때문에 시간이 절약된다.
9시반에 출항하면 대략 12시를 살짝 지나서 제주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우선 점심을 해결해야 느긋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이번엔 애월을 지나 한림해안도로 인근에 있는 쌀국수집을 들렸는데 음식은 괜찮았지만 주인장의 스타일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식사 후에 들른 첫 코스는 금능리의 해안가 비포장길이었는데 진입은 비단길이었지만 풍력발전기가 가까워지면서 점점 현무암 자갈의 크기가 커지더니 나중엔 도저히 내 실력으로는 주파가 어려운 수박사이즈 돌길이 나오길래 후퇴. 제주의 자갈길은 그 느낌이 매우 다르기에 좀 덜 험한 코스를 찾아보기로 하고 해안도로의 구석구석을 찾아 들어갔다. 400kg을 넘는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로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이지만 스크램블러400X는 안되면 들고 나온다는 생각으로 포장, 비포장, 좁은 길을 가리지 않고 들이밀어 볼 만 했다.
이번 제주투어의 본 목적은 중산간의 이국적인 비포장 오솔길을 찾아 다니는 것이었는데 멋지게 보이는 곳들의 대부분은 입구에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이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궁하면 통하는 법. 인스타에서 내 동향을 보고 이곳 저곳 쑤시고 다니는 내가 불쌍했는지 제주의 로컬도로를 잘 아는 인친이 가 볼 만한 임도를 추천해 주어 3일차에는 임도를 중심으로 다니기로 했다. 3일차부터는 다음 편에서 나누기로 하고 이번에 스크램블러400X로 제주를 다녀오면서 다시 느낀 점을 나누어 보면…
첫째, 바이크는 각자 쓰임과 가치를 가지며 비싸다고 좋은 건 아니다.

할리 로드글라이드는 스크램블러400X의 거의 7배에 달하는 가격을 가지고 있지만 제주도에서는 스크램블러가 더 실용적이다. 저렴한 선적비용을 제외하더라도 400cc 바이크는 가볍기 때문에 좁고 험로와 멋진 임도가 많은 제주도에서 어디든 쉽게 들어가 보는데 두려움이 없다. 할리는 잘못하면 오도가도 못한다.
둘째, 400cc는 결코 작은 배기량이 아니다.
나는 할리데이비슨 포티에잇으로 입문을 해서 스크램블러400X의 배기량이 장거리 투어에는 아쉽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물론 고속 장거리 투어라면 대배기량이 압도적으로 유리하지만 목적지까지만 고속주행이고 나머지는 중저속 오솔길로 이루어진 투어는 5일간 1,700Km를 넘게 달려도 크게 피곤하지 않았다.
셋째, 바이크 라이프는 언제나 새로운 길이 있다. 내가 보지 못할 뿐.
제주는 찾을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타고 오는 바이크에 따라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혼자 타는 솔로투어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하는 그룹투어도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지금까지 포장도로만을 타왔던 라이더라면 험한 임도는 아니라도 가벼운 비포장길을 한번쯤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내가 찾던 길일 수 있다. 나는 그랬다.

마지막으로는, 그동안 20만Km를 달리며 고생한(?) 내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의 정비관련 소식을 전한다. 트랜스미션과 클러치의 상태가 너무 좋았다는 점은 지난 편에서 언급했고, 이번엔 드라이브 풀리/체인의 상태도 매우 좋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혹시 몰라 교체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예방정비. 로드글라이드는 이번에 꼼꼼한 예방정비를 마치면 적어도 35만km까지는 큰 정비가 필요 없을 정도로 손 볼 생각이다.
독자들께서 이 글을 읽을 즈음엔 한겨울이 코앞이겠지만, 독자 라이더 여러분들도 추운 겨울에 가끔씩 찾아오는 포근한 날씨를 기대하며 즐겁고, 안전한 바이크 라이프를 즐기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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