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이라는 기억은 특별하다. 처음 바이크를 사기로 결심했을 때는 아무래도 신차를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중고 바이크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20대 초반인 나의 나이 때문에 보험비가 100만 원에 육박했다. 애초에 낮았던 예산에서 보험비를 빼고 나니 막상 바이크를 살 수 있는데 쓸 수 있는 돈은 한 줌뿐이었다. 게다가 보험료는 배기량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기 때문에 보험비를 조금이라도 더 낮추려면 100cc 이하인 바이크를 선택해야 했다. 고르거나 고민할 것도 없이 조건에 들어맞는 바이크는 시티백뿐이었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강제로 선택된 바이크였으나 그런데도 시티백은 그 자체로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바이크이다. 단종된 지 여러 해 지났기에 중고 매물을 잘 골라야 하지만, 그 예선만 무난하게 통과한다면, 이보다 극강의 가성비는 없을 것이다. ‘시티백은 기름 냄새만 맡아도 간다’는 농담이 생길 정도로 좋은 연비, 단종된 지 여러 해 지났음에도 넘쳐나는 부품, 전국의 어느 센터를 가도 쉽게 수리가 가능한 탁월한 정비성에, 커스텀도 용이하다. 언더본이라는 장르 특성상 운전의 재미도 있고, 본래의 용도가 그러했기에 짐을 싣기에 용이하다. 그래도 일행을 뒷좌석에 태우는 탠덤도 수월하고, 무거운 짐을 싣고 모토 캠핑을 하러 가기에도 손색없다. 시티백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웹툰 100cc가 잘 보여준다. 바이크를 막 타기 시작한 그때도 그랬지만, 어째서인지 지금도 소배기량 바이크로 떠나는 전국 일주에는 가슴이 뛴다.

바이크 사고로 인한 반년간의 병원 생활 동안 꾸준히 재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바이크를 다시 타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온 친구들이 ‘이제 바이크 그만 탈거지?’하고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그 중 함께 바이크를 타던 친구 A가 큰 목소리로 ‘다시 타야죠!’라고 말할 때 나는 활짝 웃었지만,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찡하고 울렸다. 이런 끔찍한 고통을 얻게 된 원인을 바이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물론 내가 바이크가 아닌 사륜차를 타고 있었다면 덜 다쳤었을 수도 있지만, 끔찍한 사고란 어디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잘못은 불법 좌회전을 하고 멀쩡히 파란불에서 잘 달리고 있는 나를 치고 간 버스 운전사에게 있지 나에게 있지 않다. 바이크를, 그리고 바이크를 타기로 선택한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나는 이 말을 병상에 있는 스스로에게 수십번 주문처럼 되뇌었다.
휠체어에 올라타는 걸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게 익숙해졌을 때쯤부터 나는 퇴원하면 살 바이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삼륜 바이크인 자이로Z가 눈을 사로잡았다.
후륜 타이어가 2개인 자이로Z는 무척 안정적으로 보였고, 50cc라는 작은 배기량도 다시 바이크를 시작하는 나에게 적당할 것 같았다. 시트고도 높지 않아 주행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사실 무엇보다도 레고처럼 네모나게 각진 귀여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퇴원 하자마자 한 달도 되지 않아 나는 예정대로 자이로Z를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한쪽 손에 목발을 낀 채 매물을 보러 가는 길은 머쓱하고 자신 없었지만, 좋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두 번의 매물헌팅 끝에 나는 마음에 드는 자이로X를 손에 넣었다. 뽈뽈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내 자이로X는 1992년식 2T로, 재활 중인 나에게 딱 맞았던 점은 아니라 바이크를 주차하는 방법이 스탠드가 아니라 파킹 브레이크방식이라는 점이었다. 당시 살던 곳이 오르막이 많은 곳이라 오르막에 주차할 일이 많았는데 가파른 오르막에도 안정적으로 주차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사실 바이크를 좋아하는 것 치고 관련된 지식이 많지 않은 나는 2행정과 4행정의 차이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2T 바이크를 타보니 엔진오일을 갈러 매번 센터에 갈 필요 없어서 오히려 편하기도 했다.
혼다 Gold wing
첫 바이크가 시티백이었다면, 나의 마지막 바이크는 골드윙이었으면 한다. 바이크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결심했다. 할머니가 되면 골드윙을 타야지. 거창한 스토리나 이유는 없다. 그냥 예쁘고 멋진 바이크니까. 미래나 노년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늙어서 가성비 같은 걸 따지지 않아도 되는 노인이 된다면 좀 더 멋이나 기분을 위해 소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디자인만 따지자면 90년대에 출시된 골드윙이 더 취향이지만 DCT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탑재한 오늘의 골드윙도 제법 멋져 보인다.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미래의 업그레이드 된 골드윙은 자율주행 기능도 탑재될지 모른다.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