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 길고도 무덥던 여름이 지나갔다. 한여름은 아무리 더워도 피할 방법이 없는 라이더들에게는 정말
힘든 시기라 한여름 동안 바이크를 봉인한 라이더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여름이 너무 오랜 시간 지속되는 바람에 가뜩이나 길지 않은 가을이 줄어들어 겨울이 코앞에 다가 온 것이 아침저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일주일 동안에 날씨가 급변했다.
이럴 땐 얼른 장비를 챙겨 바이크와 함께 떠나야 한다. 바이크를 타기에 가장 좋은 황금 같은 가을 날씨는 몇 주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 사진들을 보니 9월말 즈음이면 가죽자켓을 입고 있더라.
아무튼 한여름에서 갑작스레 늦가을로 탈바꿈한 날씨를 기념(?)해서 내가 선택한 투어코스는 최애 코스 중 하나인 인제 내린천 일대 코스다. 내린천은 한겨울에는 춥기도 하지만 습도가 있어서 노면이 미끄러운 곳이라 추워지기 전에 열심히 다녀오는 것이 좋기도 하고, 태백산맥을 넘기 전이라 그렇게 일교차가 크지 않아서 쌀쌀한 날씨를 대비하기 위한 두툼한 옷도 필요 없이 홀가분하게 다녀오기 좋기 때문이다. 내린천을 도는 코스는 다양하지만 올해 첫 가을(?) 투어인 만큼 중장거리 투어코스로 구성했다. 오늘의 코스는 내린천에 들어선 이후로는 차량도 많지 않고 굳이 빠른 속도로 달릴 필요가 없이 느긋하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 있는 코스로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익숙한 코스다.
중간 경로들은 네이버지도 기준으로 내린천래프팅-고향집식당-미산계곡-광원2리마을회관-소구니계곡을 찍고 혹시 선호하는 목적지가 있는 경우 가감하면 된다. 내 경우는 이렇게 할 때 400km 정도의 거리가 나오며, 순수 라이딩 시간은 대략 7시간 내외가 소요되지만 이 좋은 가을날에 서두를 이유는 없으니 일찌감치 집에서 나와 피톤치드 넘치는 인제 산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오늘의 점심메뉴는 두부요리 전문점인 고향집 식당이다. 개인적으로는 두부요리로는 다섯손가락 안에 꼽는 식당으로 두부구이와 전골, 녹두전 모두 수준급이다. 바이크만 아니라면 더덕동동주와 모주에도 관심이 가지만 금주는 라이더의 숙명. 든든하게 먹고 푸른 나무들로 둘러싸인 강원도 산길을 달리면 피로가 쌓이지 않는다.
할리데이비슨 바이크들은 이런 도로에 정말 최적화되어 있다. 시야가 좋고, 시트가 편안하며, 엔진의 특성이 디젤자동차와 비슷해서 낮은 엔진회전수에도 높은 토크로 묵직하게 달리기 때문에 저중속에서의 안정감이 매우 좋아 달리는 주변의 경치를 즐기기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이다. 배기음과 고동감이 섞인 진동, 그리고 피톤치드 섞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몇 시간을 달려보시라. 다만, 이 코스는 코너가 많고 코스길이가 제법 되기 때문에 피로도가 높을 수 있으니 완전 초급 라이더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나는 오전 8시쯤 느긋하게 출발해서 고향집에서 좀 이른 점심을 먹고 코스를 돌았지만, 혹시 더 일찍 출발하는 라이더라면 이 코스를 반대로 돌아도 좋다. 반대로 도는 경우에는 고향집에서 식사한 후에 산더미 빙수를 내어 주시는 카페자작에서 빙수 한그릇으로 개운하게 입가심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이 코스가 메뉴(?)구성을 하기엔 더 좋지만, 이젠 너무 이른 아침엔 추우니 잘 판단하시라).
할리데이비슨과 같은 덩치 큰 클래식 혹은 배거 형상의 바이크들은 자유로운 복장선택의 장점이 있는 편이라 출발은 가볍게 반팔셔츠에 케블러 바지 정도로 출발했지만, 인제를 들어서면서 기온이 내려가서 중간에는 가을자켓을 꺼내 입었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시는 10월초에는 기온이 좀 더 내려갈테니 방풍이 되는 자켓을 하나 여분으로 챙겨 가시기를 추천한다. 불과 지난 주까지는 너무 더워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불과 일주일만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준비물이 늘었다.
다음 호에는 그 동안 뜸했던 남쪽으로의 여행을 다녀오려고 한다. 손가락을 다쳤던 포항 친구도 이제 웬만큼 나았다고 하고, 목포의 아지트도 잘 있는지 한번 다녀와야 할 때가 되기도 했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산뜻하게 떠날 수 있는 가을 황금기의 투어를 당일치기만 하기는 아쉽기 때문이다.
라이더 여러분들도 이 좋은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안전하고 즐거운 투어를 즐기시기를 바란다.
오가는 길에 들리기 좋은 맛집
고향집(강원 인제군 기린면 현리 196)
인제에 있는 내공 있는 두부전문점이다. 콩비지 백반도 맛있고, 전골도 좋지만 이 식당의 시그니처는 들기름 두부구이다. 꼭 한번은 드셔 보기를 권한다. 두부도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식당이다.
카페 자작(강원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240-3)
내린천에서 자작나무숲으로 가는 갈림길 초입에 있어서 내린천 코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들를 수 있는 카페다. 커피도 나쁘지 않지만 나는 이 카페의 시그니처는 눈꽃빙수라고 생각한다. 토핑에 따라 몇 종류가 있지만 나는 오레오 눈꽃빙수가 가장 좋았다. 오늘의 코스를 반대로 돈다면 고향집에서 식사 후에 들르기 좋고(고향집과 대략 30분 거리다), 오늘 코스 그대로에서 메뉴를 막국수로 한다면 남북면옥에서 식사 후에 들르기 좋다 (남북면옥과는 대략 20분 거리다).
남북면옥(강원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 265-1)
워낙 자주 언급해서이제는 굳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수육과 감자전, 막국수 모두 훌륭하며 가성비까지 갖춘 현지인 맛집이다.